"민족 멸망, 문명 파괴"... 73년 전의 '무서운' 교훈

[박도 칼럼] 인류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소고

등록 2018.04.12 13:27수정 2018.04.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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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하 후 일본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오른쪽) 상공에 피어오른 버섯구름 ⓒ NARA / 눈빛출판사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

일찍이 심훈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라고 절규하듯 읊으면서 우리 겨레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날 정오 라디오에서는 일왕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라는 방송을 했다. 이 방송에 대부분 한국인은 일순간 멍해졌다.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 (함석헌)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이하였다." (박헌영)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200년은 갈 줄 알았다." (서정주)

이와 같이 대부분 한국인들은 일본이 그렇게 갑자기 항복할 줄 몰랐다. 그 까닭은 일제 대본영의 보도 관제로 일반인들은 태평양전쟁의 전황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무렵 일본이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게 밀리는 줄 몰랐다. 왜냐하면 대본영의 발표만을 곧이 곧대로 앵무새처럼 받아 적어 보도했던 당시 신문, 라디오 방송만을 보거나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인사는 미국 단파방송이나 풍문을 통해 전선에서 일본이 밀리는 줄은 알았지만, 그분들도 일본이 어느 날 갑자기 무조건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왕의 항복 방송에 귀를 의심할 정도로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그날 늦은 오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상범들이 출옥한 것은 본 뒤나, 이튿날에야 비로소 광복의 기쁨에 젖었다는 회고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까닭인즉, 일본 군인들은 전세가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투항할 줄 모른 채, 스스로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고 스스로 자결하는 옥쇄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런 악독한 일분군 앞에 미군은 대단히 고전한 게 사실이었다. 일본군은 무섭고도, 악랄한 군인 정신을 가졌다. 그런 일본군을 조선인들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일본이 맥없이 하루아침에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본은 왜 갑자기 연합국에게 항복했을까? 그것은 바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Fat man), 두 개 원자폭탄 때문이었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에서 그날 하루 즉사한 사망자는 약 7만 명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다. 그해 연말까지 사망자는 9만 명에서 16만6000명으로 추정된다. 이후 1950년까지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20만 명으로 집계됐으며, 사망자는 해마다 늘었다(사망자 추정, 추산 이유: 당시 관공서 서류가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사망자를 알 수 없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일, 4만 명에서 7만5000명이 즉사했으며, 1945년 연말까지 8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도시에서 살아남은 피폭자는 오늘날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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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 ⓒ U.S Army / 눈빛출판사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

전쟁터에서 항복할 줄 모르는 악독·악랄한 일본이었지만, 그제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전대미문의 원자탄 두 방을 맞자 그들은 아찔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일본 민족의 멸망이 눈앞에 어른거렸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연합국에게 죽음보다 더 한 치욕인 항복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방송 중 원자폭탄에 관한 대목을 옮겨본다.  

"(중략) … 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인한 폭탄으로 죄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죽이니, 그 참혹함은 참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리하여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는 일은,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 또한 부수어버릴 것이다. 이리 되면 짐은 어찌 수많은 백성들을 지키고, 황실과 조상의 신령께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이것이, 짐이 제국 정부에게 하여금 공동 선언에 응하도록 명한 연유이다. 짐은, 제국과 함께 끝까지 동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모든 맹우(盟友)들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 (후략)"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군사전문가에 따르면 전 세계 핵무기 보유국은 9개라고 한다.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과 성공으로 핵무장을 선언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등 5개국으로 모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이들 외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도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이들 나라 가운데는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한 나라도 있다고 한다.

현재 이들 핵무기 보유국이 가진 핵폭탄과 핵탄두는 약 1만5000개로 추정하고 있는 바, 그들이 보유한 핵무기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핵폭탄보다 1000배가량의 위력이라고 한다. 오늘날 만일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파괴력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만큼 무시무시하다고 군사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한 자료들을 들춰보고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마도 현대인들은 누구나 이런 핵무기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핵화에 대한 해법은 없을 것인가.  

북한이 핵개발을 한 이후 남북간, 북미간의 북한 비핵화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내가 2005년 남북작가대회로 북한에 갔을 때, 나의 안내인은 "우리는 남쪽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할 때면 신발도 벗지 못하고 지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현지에서 본 바, 북한은 거대한 군사대국 미국과 맞서고 있기에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했고, 그 결과 인민들의 생활은 조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동안 자기네들이 살아남고자 핵무기 개발에 매진했을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네도 그것을 가지려고 따가운 국제의 감시와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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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하 후 삽시간에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 시가지 ⓒ U.S Army / 눈빛출판사


북핵문제의 근본 해결방안

이 시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문제 해결은 난제 중에 난제일 테지만,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항구적 방법은 현재 핵보유국들이 인류 평화와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위해 다 같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일일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기존의 나라들이 '나는 가져도 되지만, 너는 가져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약소국에게 핵무기 개발을 못하게 압박한다면 이는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는 핵무기 미 소유국을 항구적으로 설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은밀히 자행하는 핵개발을 저지시킬 수 없을 것이다. 개인 사이에서도, 스포츠에서도 똑같은 룰(규정)을 따르는 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이요 공존공생의 길 아니던가.

역사적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즈음, 강원도 산골의 한 무지렁이 훈장이 잠꼬대 같은 망상을 지껄여 본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위해 남과 북은 평화조약을 조속히 체결하며, 우리 두 나라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항구적으로 선언한다." (문재인·김정은)

"우리 미국은 세계 평화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앞장서서 핵보유국과 협의하여 핵무기들을 전량 폐기시키는 일에 앞장설 테다. 북한 너희 나라도 개발 중이거나 이미 개발한 핵무기는 모두 폐기하라." (트럼프)

"감사하다. 그 방안을 미국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면, 우리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함은 물론, 즉각 그 조치에 따르겠다." (김정은)

"1953년 체결한 북미간 정전협정을 앞으로 평화 협정으로 바꾸자." (트럼프)

"불감청 고소원이다." (문재인 · 김정은)

내가 꿈꾸는 가상의 대화 현장이다. 세 사람이 회담장에서 남북 북미 평화 협정문과 비핵화 선언문에 사인을 한 다음, 서로 손을 잡고 취재기자를 향해 높이 치켜든다면? 이 순간을 숨죽이면서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은 그제야 축포를 터트릴 것이다.
#원자폭탄 #핵무기 #비핵화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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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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