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영석 아빠, 1000번째 전태일의 친구가 되다

전태일 재단 회원이 된 세월호 가족들

등록 2018.04.09 14:56수정 2018.04.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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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재단에서 998번째 회원이 된 김미현, 100번째 회원 오병환 새월호 유가족, 이수호 이사장, 전태일의 친구들 ⓒ 전태일 재단


전태일 재단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세월호 유가족 오병환씨, 김미현씨가 그들이다. 전태일 재단 이수호 이사장이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자며 만든 자리다. 세월호 유가족 김미현(성빈 엄마)씨는 998번째, 오병환씨는 전태일 재단의 천 번째 CMS 회원이 됐다. 전태일의 친구가 된 것이다.

천 번째 CMS 주인공이 된 오병환씨는 4.16재단 설립 국민 발기인 모집에 가장 먼저 참여한 곳이 전태일 재단이었기에 전태일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진작 했어야 하는데 경황에 없었다'며 천 번째 회원이 된 것을 민망해 했다.

전태일재단은 2015년부터 정성이 담긴 후원금을 바탕으로 "풀빵 나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학사업은 전태일의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삼동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최종인 청우회 회장이, 10년 간 적금을 들어 모은 1억 원의 기탁금을 마중물로 시작됐는데, 올해까지 3년 동안 65명에게 98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이 전태일 장학금은 지금도 봉재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우회 회원의 자녀를 비롯하여, 사회활동가 본인이나 자녀, 이주노동자 본인이나 자녀 등 어려운 삶 속에서도 스스로 공부해보려고 애쓰는 분들을 찾아서 자립의지를 키워주는 일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수호 이사장 글.




내가 영석 아빠(오병환)를 처음 본 것은 2014년 7월 광화문 김영오(김유민 아빠) 딘식 천막 앞이다. 그는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막으며 단식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다짜고짜 천막 안으로 들어서거나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동을 저지하며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당신 누구요? 세월호 가족이요? 난 세월호 유가족이요."

광화문 천막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상처가 깊었을 것이다. 일베가 단식 현장에서 하던 폭식과 조롱, 경찰 방패 앞에 선 유가족들, 심지어 빨갱이, 시체팔이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보고 들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 땅의 성실한 노동자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로 소박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이다. 세월호로 외동아들을 잃기 전까진 말이다. 늘 화가 난 것처럼 보였던 그는 사실 따뜻한 사람이다. 2014년 그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던 자원봉사자들과 난롯가에 있던 그가 말했다.

"영석이는 내가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한 자원봉사자가 그 라면 맛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진짜 자원봉사자들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자원봉사자들 목이 메게 만들던 손수 끓인 라면, 손수 바느질한 나비 브로치를 자원봉사자 한명 한명에게 선물하던 시간들이 스쳐간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해 말까지 단 한 번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 방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고 아들 방을 보면 분노로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세월호 4년은 세월호 가족 삶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촛불은 전진하고 있는가?

2017년 우리는 1700만 촛불로 탄핵과 파면 박근혜 구속을 이뤄냈다. 우리는 알고 있다. 2017년 촛불 탄핵 집회의 동력은 세월호 304명의 희생과 세월호 유가족의 3년에 걸친 눈물과 희생과 투쟁에 있었음을. 탄핵과 촛불 정부를 이끌어 낸 불씨는 세월호 희생자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촛불은 전진하고 있는가?
전태일이 묻는다.'



전태일 분신 항거 현장 평화 시장 분신 항거 현장에 동판이 새겨져 있다. ⓒ 이명옥


2018년 전태일 재단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이후 수많은 노동자 농민 학생,  민중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항쟁을 이어왔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유언대로 그의 항거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불쏘시개가 되어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불을 붙여 5.18 광주 민주화 항쟁, 6.10민주화 항쟁을 끌어냈다. 그러나 노동자와 민중은 기륭, 용산, 쌍용차, 밀양, 강정에서 힘겨운 싸음을 이어왔다. 마침내 2017년 1700만 촛불로 타올라 탄핵과 파면, 박근혜 이명박 구속을 이뤄냈다. 그러니 촛불은 전진해야 한다. 아직 쌍차 해고노동자는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람이 존중받는 사람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이 세월호 유가족인 오병환, 김미현씨에게 분신항거 상황을 설명을 하고 있다. ⓒ 이명옥


1970년대 전태일의 정신과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의 바람은 다른 것일까. 전태일의 정신은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외치는 세월호 유가족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존중받는 삶과 안전 사회를 위해 전태일 재단과 4.16 재단은 손을 잡고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사람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기점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이제 세월호 가족과 국민이 발기인으로 4·16재단을 설립해 공익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태일재단은 4·16재단 발기인으로 함께하고 있으며 전태일의 친구 4명과 이수호 이사장 등 5명은 '전태일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또 4·16재단 발기인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는 5월 12일 창립총회를 연다.
#세월호 4. 16 재단 #전태일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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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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