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들은 <빨간 맛>, 북한서 누가 잡혀가겠나"

북, '남조선 날라리풍' 문화는 개방할까... "문화 다양성 계기" vs. "과한 해석"

등록 2018.04.06 08:10수정 2018.04.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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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평양의 출근길 3일 오전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 앞에서 평양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2011년 탈북한 최성국씨는 평양에서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을 팔았다. 드라마는 1회당 북한 돈 1000원, 쌀 400~500g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중국에서 중고 컴퓨터를 들여오면 채 정리되지 않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한국 노래가 가득했다. 최씨는 조선 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만화 만드는 일을 했다. 덕분에 컴퓨터를 사용하고 북한 내 인트라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2010년까지 함경북도에 살다가 탈북, 2011년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김은지씨는 한국노래를 부른 기억이 생생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숨 죽여 부른 게 아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떠들썩하게 불렀다. 한국노래를 부른다고 잡혀간 사람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졸업하고 입대하는 남학생들에게 불러준 이 노래가 한국노래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최성국씨와 김은지씨, 두 탈북자는 지난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내 한국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돼 왔는지 알려줬다.

"<총 맞은 것처럼> 즐겨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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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공연에서 열창하는 백지영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백지영이 열창하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김씨가 살았던 함경북도 장마당에서는 한국노래가 담긴 CD를 공공연하게 팔았다. 한국노래만 들어있으면 문제가 되니, 중국노래, 한국노래, 북한노래가 뒤섞여 있었다. 꼭 CD가 아니어도 한국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퍼졌다. 탈북 전, 그가 좋아했던 노래 역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었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영화, 노래가 인기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드래곤부터 백지영, 김광석까지. 탈북한 젊은이들은 북한에서 "한국노래를 즐겨 불렀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북한에서 한국 문화를 즐길 경우 처벌이 있다는 건 탈북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최씨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안다"라며 "한국 드라마, 영화를 갖고 있기만 해도 잡혀간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옆집이나 주민들이 '저 집이 한국드라마를 본다'라고 신고하면, 보위부에서 잡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도 "내 주변에서는 서로서로 (한국 드라마·노래를) 보고, 듣기에 신고한 경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정은도 공식적으로 <빨간 맛>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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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여 평양 관객앞에서 공연하는 레드벨벳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레드벨벳이 공연하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일과 3일, 남측 예술단이 평양공연을 마쳤다. 1일 남측 단독 공연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등장했다. 손뼉을 치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이후 출연진을 불러 일일이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과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관련 기사를 크게 실었다.

이후 이 공연이 북한 내 문화 개방을 알리는 청신호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레 나왔다. 밀수를 통해 알음알음 퍼지던 이른바 '남조선 날라리풍'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겠냐는 거였다. 북한 내 한류의 금기는 깨질 수 있을까?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당연히 바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공연으로 북한 내 한류가 공식화됐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영도자가 같이 들었던 문화인데, 빨간 맛 부른다고 누가 잡아갈 수 있겠나"라며 반문했다. 남측 예술단의 공연과 김 위원장의 관람이 북한 내 한국문화의 '해금 기능'을 했다는 뜻이다.

그는 지난 2일 치 <로동신문> 1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단독 공연 후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교수는 "이 사진을 보면 청바지를 입은 한국 관계자가 있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예전에 방북할 때 중요한 지침 중 하나가 청바지를 입지 말라는 것이었다"라며 "최고 지도자가 청바지 입은 사람과 사진을 찍은 건 아마 처음일 텐데, 이 정도면 북한이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움직임 아니겠냐"라고 강조했다.

"남조선 노래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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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감정 북받치는 북측 관객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출연진이 함께 '우리의 소원'을 부르자 북측 관객들이 감정이 북받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월 삼지연관현악단이 서울, 강릉 공연을 마치고 북한에 돌아가 귀환공연을 한 것이 문화 개방의 신호라는 의견도 나왔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기반정책연구실장은 "2월에 삼지연관혁안단이 평양에서 귀환공연을 했다, 이 자리에 많은 예술가를 불렀다고 알고 있다"라며 "이 공연은 많은 의미가 있다, 방남 공연을 단순히 치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측 노래를 다시 부르고 흐름을 보여주며 배우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문화 수용성을 보여준 자리였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지난 2월 17일 치 <로동신문>은 '삼지연관혁악단 귀환공연 진행'을 보도했다. 신문은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중앙위원회 간부, 예술부문 일군들, 창작가, 예술인들이 공연을 관람했다"라며 "남조선 노래들도 무대에 올렸다"라고 썼다.

그는 또 3일 남북합동공연이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것의 의미를 짚었다. 박 실장은 "문화수용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다면 굳이 1만 명이 넘는 곳에서 공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 환영의 크기를 보여주는 장소"였다고 강조했다. 북측이 이미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상상 이상의 획기적인 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라고 조심스레 관측했다. <조선중앙티비>가 관련 보도를 할 때 무음 처리하며 제대로 방송 안 했다는 지적을 두고는 "공연의 의미를 축소 시킨 것이 아니라 보도 방식이 다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조선중앙티비>의 보도에는 화면을 무음 처리하거나 정지 화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심지어 화면이 없을 때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대중문화가 북한에? 그게 가능할까"

반면, 북한에서 평양공연의 목적은 '보여주기 쇼'라는 주장도 있다. 공연의 핵심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것이다. 강동완 동아대 하나센터장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지금 상황을 헤쳐나가자는 게 공연의 목적"이라며 "한국 대중문화에 개방할 생각이 있었다면 남북합동공연에서 계몽가요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레드벨벳은 이번에 남한에 관심 없는 북한 사람이 봐도 자본주의 날라리풍의 섹시 콘셉트가 아니다"라며 "모란봉이 추는 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공연을 보고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것까지 생각하는 건 과한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레드벨벳 #김정은 #평양 #빨간맛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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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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