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캐는 소성리 주민들 말리지 마소

[SO-SO 한 이야기21]

등록 2018.04.05 16:05수정 2018.04.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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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사드기지 ⓒ 손소희


봄이 오면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둘러메고, 배낭가방에 곡괭이 연장 하나 챙겨서 롯데골프장을 가로질러 오른다. 달마산 언저리인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면 지천에 깔린 것이 봄나물이고 약초들이었다. 고사리, 취나물, 쑥이며, 둥글레며 다래순, 재수가 좋으면  기관지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돌배를 만날 수도 있었다.


소성리의 롯데골프장 부지가 국방부로 공여되기 전까지 그 길은 롯데골프장의 '사유지'라 해서 닫혀 있지 않았다. 마을주민들이 산나물을 채취하고, 약초를 캐러 다닐 때면 언제든 지름길로 이용할 수 있었고, 매년 새해가 밝을 때 일출을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신나는 놀이터였고, 삶의 터전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전부를 보낸 곳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어릴 적 남자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고나면 외양간에 소고삐를 쥐고 동네뒷산으로 올라서 소를 풀어놓았다. 지천에 깔린 풀을 뜯어먹는 소를 돌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이들끼리 하루종일 뜀박질하면 간식거리를 채취해 나눠먹는 재미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뛰어놀기 좋았던 놀이터였다.

아침과 밤에는 여전히 난로에 불을 피워야 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따뜻하고, 벚꽃이 만개했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가 어느새 여름의 더위로 변신할 거 같다. 마을 뒷산에는 새순이 오르는 봄나물과 약초가 그득할 거다.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씨와 마을 주민 태환씨는 둥글레를 캐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진밭교에서 평화계곡을 지나 김천의 경계 지점에 있는 동영마을에서 출발했다. 과수원을 가로질러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생강꽃도 망울망울 꽃술이 피어올랐다. 둥글레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서 한참으로 올랐다.

새순이 올라오는 산길은 다행히 풀이 우거지지 않아서 걷기에는 수월했다. 누군가가 오르내린 흔적이 역력한 길은 잘 닦여 있어서 걷기 좋은 길이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철조망을 만났다. 가시가 돋힌 철조망도 있고, 칼날이 촘촘히 박힌 철조망도 있었다. 철조망 안에는 허름하게 지은 간이시설이 보였고, 철모를 쓴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사드를 운영하는 미군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감시경계초소였다.


둥글레를 캐러 올라온 마을주민과 마주친 경계초소의 군인 장병이 무전을 쳤다. 멀리서 몇몇의 군인들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마을주민에게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묻고, 소성리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대위와 장병이 따라나선다.

철조망은 롯데골프장만 둘러싼 것이 아니었다. 산 전체를 둘렀다. 모두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고 한다. 8919부대라고 한다. 8919부대는 민간인들이 걸어다니는 길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철조망으로 둘러싸 말해주고 있었다.

철조망 바깥은 길도 없이 가파른 경사에 부드러운 흙길에 미끄러져가면서 한참을 걸었다. 둥글레 집단서식지가 있는 위치를 찾아가는 길은 예전같지 않게 험난했다. 결국 군부대 철조망은 커다란 바위절벽 앞에서 통행을 금지시키도록 길을 막아버렸다. 더 이상 지나갈 수 없도록 해놓은 거다.

마을주민을 따라나선 대위는 다시 되돌아가거나, 바위절벽을 넘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마을주민에게 설명했다. 철조망을 조금만 걷어주면 아래로 조금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군부대시설물이라 철조망을 걷을 수 없다고 했다. 군부대를 가로질러 내려갈 수 있게 해달라는 마을주민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다.

모든 지름길을 군부대가 차지하는 바람에 빙빙 둘러 산길을 걷느라 지칠대로 지친 마을주민은 바위절벽을 넘다가 추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철조망을 걷어주거나, 군부대 안 지름길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했다.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다며 지쳐서 드러누웠다. 실제로 바위절벽은 건강한 사람도 타넘기가 무서울 정도로 아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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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벽 아래 ⓒ 손소희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대위는 자신에게 권한이 없다는 말을 반복해 결국 '평화회의 소성리종합상황실'로 연락을 취했다.

"여기 오른편에는 노곡리가 보이고, 왼편에 사드가 배치된 군부대인데요. 한참을 돌아서 올라와 다리에 힘도 없고, 지쳤는데 여기서 바위절벽을 넘어가라고 하니까 이건 도무지 아닌거 같아요. 상황실장님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세요.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누워있을 거예요. 철조망 안 열어주면 저 바위는 우리도 못 넘어요."

마을주민이 산중에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평화회의 소성리종합상황실'은 국방부로 연락을 취해서 마을주민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한 모양이다. 대위가 누군가와 한참 동안을 통화하고 나더니 그제서야 철조망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대위와 장병은 철조망을 살짝 걷어내고, 걷어지지 않으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안이 군부대를 통과하는 길은 아니었다. 단지 바위절벽을 넘지 않고, 계곡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워낙 가파른 길이라서 젊은 군인들조차도 중심을 잃고 몇 번이나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하물며 환갑을 지낸 마을 주민은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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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벽 ⓒ 손소희


둥굴레를 캐러 갔다가 만난 군부대시설 경계 철조망 덕분에 너무 많이 헤맨 마을주민은 지쳐 있었다. 터덜터덜 또다시 군부대경계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군부대 안에는 군인장병들이 길다란 총을 옆구리에 끼고 걷고 있다. 총부리가 마을 주민을 향할 때 순간 움찔해지기도 했다.

걷다보니 롯데골프장의 모습은 예전같지 않았다. 사드발사대가 3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마주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사드발사대가 바로 군부대시설경계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바로 코앞에 있었다. 저 발사대가 소성리마을을 지나가기 위해서 8000명의 경찰병력이 전시작전을 치르듯이 새벽의 어둠을 틈타 마을을 진압해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마을주민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지친 발걸음에도 둥글레를 캐겠다고 가는 곳마다 곡괭이로 흙을 파보지만, 대위와 장병은 되돌아갈 줄 모른다. 마을주민의 안전을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바위절벽 앞에서 그들의 태도가 말해주듯,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지 않는다.

사드가 운영되는 미군기지에 한국군인은 출입할 수 없다. 한국군인은 한국부대에서 미군기지시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군부대시설 뿐 아니라 산 일대를 뺑 둘러 경계철조망을 설치하고 야간조명을 밝혀 경비를 서주고 있는거다.

군사보호시설이라 민간인들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해석이 불가능했던 의문이 풀렸다. 미국의 군대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민들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바위절벽 앞에서 통곡했다.

결국 둥글레는 한움큼 겨우 캤다. 한 시간이면 걸어서 갈 길을 네 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찾았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 피로했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줬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헝클어지고 엉켰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릴까 노심초사하게 한다.

또다시 봄나물을 뜯으러 산에 오를 거고, 약초를 캐러 샅샅이 이산, 저산을 다닐 거다. 우리의 일상은 그누구도 함부러 빼앗아서는 안 되니까. 일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저항은 멈출 수 없을테니까.

2018년4월3일 제주43항쟁 70년을 맞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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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기지의 한국군대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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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기지 ⓒ 손소희


#소성리 #사드발사대 #평화 #전쟁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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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담대한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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