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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단골 소재였던 '천안함 사건'... 언제까지 '폭침' 주장만?

[리뷰] KBS<추적60분> '천안함 편'... 더이상 보수의 '십자가 밟기' 되어선 안돼

18.04.01 15:45최종업데이트18.04.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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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천안함 ⓒ KBS


지난 28일 KBS <추적60분>은 2010년 3월 26일에 있었던 천안함 침몰과 관련하여 '8년 만의 공개, 천안함 보고서의 진실편'을 방송했다.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부의 공식입장에 대해서 다시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추적60분>은 프로그램 서두에 또다시 천안함이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훈풍이 불고 있는 남북한 관계에서 천안함이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올림픽 폐막식에 맞춰서 방남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지 않았던가.

정치인들의 광기 

사실 그동안 천안함 사건은 보수 세력의 전형적인 '십자가 밟기' 소재였다. 일본인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십자가 밟기'를 통해 기독교인들을 물색하거나 특정한 신념을 강요한 것처럼, 보수 세력은 틈만 나면 천안함 사건을 들이밀며 주요 공직자 후보나 정치인들에게 사상검증을 해왔다. 아직도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채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것이다.

이런 광기 앞에 당시 야권 정치인들은 침묵했다. 정부의 발표를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의심스럽다고 이야기한들 MB정권이나 박근혜 정부 하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오히려 그것을 빌미삼아 보수 세력들은 빨갱이 타령을 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자리를 빨리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인정할 수밖에.

<조선일보>의 반박 ⓒ 조선일보


보수언론들은 이를 역이용했다. 그들은 진보적인 정치인들의 천안함에 대한 태도를 상세히 보도함으로써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천안함 침몰을 기정사실화해왔다.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 의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철저하게 무시했으며, 천안함의 '천'자만 언급해도 그 사람을 음모론자 혹은 친북좌파로 규정했다. 천안함 사건 자체를 시대의 금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천안함은 보수 세력들이 가장 활용하기 좋은 소재가 되었다. 며칠 전 구속당한 MB는 구속당한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천안함을 운운하며 보수 세력들의 결집을 촉구하였으며, 이번 <추적60분> 천안함편이 방영되자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국민이 낸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가 추적60분에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고 괴담 유포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다음 날 '팩트는 없이… '천안함 괴담' 재탕한 KBS'이란 기사를 통해 국방부의 반박과 KBS 내부의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보냈다. 어차피 8년 전과 똑같은 의혹 수준이라며 방송을 음모론으로 폄훼하고 천안함 사건이 재조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했다.

추적 60분이 제기한 의혹들은 8년 전부터 인터넷 등에서 떠돌던 내용이다. 방송은 "선박 밑 스크래치(긁힌 자국)가 있다"면서 좌초설을 제기했는데, 8년 전에도 같은 의혹이 나왔었다.

<추적60분> 방영 다음날 포털 검색어 ⓒ 이희동


<추적60분>의 의혹 제기

사실 <조선일보> 주장대로 예전부터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번 <추적60분>은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방송이 내보낸 다양한 의혹들은 8년 전 천안함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대개가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좌초설, 제3의 부표, 1번 어뢰의 조작 등등.

<추적60분>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방송 최초로 천안함 인양업체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폭발이 아닐 가능성을 언급했고, 국방부가 제시한 천안함 선내 CCTV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비록 잠수함 이야기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TOD 영상을 통해 다시금 제3의 부표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알루미늄 수화물에 대한 녹취록 공개를 통해 1번 어뢰가 조작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추적60분>은 관련자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들은 대부분 천안함을 다시 묻는 <추적60분>의 질문을 피해 다녔는데, 시청자들은 그것만으로도 다시금 천안함에 대해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JTBC의 태블릿PC처럼 정부의 발표를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없었다. 천안함 사건은 지난 MB정권과 박근혜 정권 8년을 관통하는, 현재 보수 세력이 딛고 있는 가장 굳건한 토대인데, <추적60분>의 내용은 그것에 균열을 내기에 한참 모자랐다. 시대의 금기를 깨기 위해서는 더 센 충격이 필요해 보였다.

▲ 통일대교 봉쇄한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김무성, 나경원 의원등이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할 예정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임) 방남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재조사를 향해서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추적60분>의 시도는 쓸데없는 재탕이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다. MB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의혹들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심지어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까지 유포되는 상황에서도 그 모든 것을 한낱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고 오로지 '빨갱이 타령'만 해왔다. 오히려 정부의 미온적이고 의심쩍은 대응이 천안함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부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재조사다. 과거 정권처럼 천안함에 대한 의혹제기를 원천봉쇄할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 보수 세력들은 쓸데없는 국고낭비라고 반대하겠지만, 제대로 된 조사 없이는 끊임없는 분란만 계속될 뿐이다. 또한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의 지뢰 아니던가.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추적60분>을 보는 도중 눈에 띄는 것은 방송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자막이었다. 내용인즉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새로운 증인을 찾는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이번 방송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사회적 금기로 언급할 수도 없었던 천안함 사건을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이것이 진실을 찾는 첫 번째 조건 아니던가. 어쩌면 <추적60분> 제작진이 다음 편 제작을 위해 가장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MB의 천안함 정치 ⓒ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다행히 <추적60분> 방송 이후 천안함에 대한 이야기가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다음날 포털 검색어에는 '천안함'이 계속 떠 있었으며, 정치권에서도 천안함 재조사가 조금씩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천안함 사건이 베트남전의 '통킹만 사건'이 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 다만 보수-진보 이념분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46명의 전사자들을 위해서라도, 국가의 발표를 제대로 신뢰할 수 없는 다수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점차 호전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천안함 재조사에 착수해주기를 바란다.


천안함 북한 이명박 박근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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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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