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말했다 "내가 왜 노동자야? 회사원이지"

하종강 지음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등록 2018.04.02 15:34수정 2018.04.02 15:34
0
원고료로 응원
"너도 이제 노동자가 됐구나. 축하해."
"내가 왜 노동자야? 회사원이지."

노동 강의를 들었던 지인이 직장 초년생이 된 딸과 나눈 대화다. 우리는  흔히 '노동'은  힘든 육체 일이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만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노동'과 '노동자'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국어사전 풀이는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되어 있다. '생산 수단을 가졌는지 아닌지가 노동자와 자본가를 가르는 기준'이란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사람은 다 '노동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회사원, 판사, 의사, 교사 모두 노동자지만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들고 나와 길거리서 파는 할머니나 포장마차 주인은 노동자가 아니다.

a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하종강의 어린이를 위한 노동 백과 ⓒ 철수와 영희


노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동교육 운동 외길을 걸어온 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교수가 어린이를 위한 노동백과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철수와 영희)를 냈다. 어린이를 위한 노동 백과지만 노동이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청소년과 성인 모두 읽어야 할 노동 관련 책이다. 책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노동'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는 '노동'과 '노동자'의 의미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인 근로기준법, 노동 기본권, 노동절,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풀어 준다. 노동자가 고용되어 일하다가 일터나 일의 연장선에서 재해를 당하면 산업재해다. 하지만 현실에선 산업재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중 독한 화학 약품을 다루던 노동자들이 백혈병 같은 혈액 암에 걸려 생명을 잃었다. 사측은 그것을 산업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가족이 힘을 모아 오랫동안 어렵게 싸워 산업재해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노동기본권은 노동권과 노동 삼권인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말한다. 노동법으로 보자면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 삼권을 위해 만드는 노동조합은 합법이다. 하지만 노조를 인정하지 않거나 노조 파괴를 위해 여러 가지 방해를 하는 회사도 많다.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 행동권도 노동 삼권 중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안다면 파업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측과 단체 교섭하는 과정에서 최후 방법으로 선택하는 단체 행동 중 하나가 파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노동 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15년 동안 해 온 일은 '근로 기준법대로 하자'는 주장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가 그동안 했던 활동은 단지 인간 선언이었을 뿐입니다." - 유동우 최후 진술 중. 107쪽

*유동우는1980년 대 초 <어느 돌맹이의 외침>을 쓴 노동자로 '전민노련'사건으로 징역 15년을 구형 받았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힘든 싸움을 거쳐 조금씩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노동절 파업을 주도하다 목숨을 잃은 스파이스의 진술은 노동자들 가슴에 불꽃으로 살아 노동자의 정체성을 지켜가게 한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 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숨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는, 그러면서도 해방되기를 애타게 원하는 수천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그대는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대 앞에서, 뒤에서, 사방팔방에서 노동 운동의 불꽃은 끊임없이 들불처럼 타오른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그대라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을 것이다." - 스파이스. 114쪽

지금도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이들이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인 김득중 지부장은 회사가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전원 복직' 약속을 지키라며 2월 28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이다 4월 1일 중단했다.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 노동자, 회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노동자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간다.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도 이제 초등학교부터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야만 한다.

어떤 일을 하든 노동자로 사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안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글 하종강. 그림 김규정/철수와영희/ 12,000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 어린이를 위한 하종강의 노동 백과

하종강 지음,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8


#노동 기본권 #근로기준법 #노동자 # 노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