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명박' 만들지 않으려면...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오체투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록 2018.03.28 07:25수정 2018.03.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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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구속되기 직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이명박 페이스북


첫 문장이 거짓이면, 그 글은 통째로 거짓이다. 사실의 조각이나 진솔한 감정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건 거짓의 도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구속되기 직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

그는 다음 문장부터 자책감의 실체를 적어야 했지만, "기업에 있을 때나 서울시장, 대통령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내 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의 책임을 검찰의 '보복수사' 탓으로 돌렸다.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위의 마지막 문장도 거짓이다. 자기가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기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게 아니라 다스 실소유자 문제를 비롯해 재임 시절에 받은 뇌물을 실토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게 자기 '참모습을 되찾는' 길이며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자성과 저항] 또 다른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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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서 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가 동·서·남·북을 향해 오체투지로 절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 글을 보면서 10년 전에 만난 또 다른 첫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품에 안기고자 합니다."

당시 화계사 주지이자,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였던 수경 스님이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의 첫 문장이다. 2008년 9월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계룡산 신원사에 이르기까지 3달간 200km 구간을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와 함께 오체투지로 순례하기 직전에 보낸 글이다.

이 전 대통령은 '남 탓'을 은연중에 드러냈지만, 그와 대척점에 섰던 수경 스님은 대놓고 죽비 소리를 날렸다. 그는 이 글에서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 방식이 민주주의와 생태, 인권의 위기는 물론 종교 간 대립까지 부추겨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다"면서 한반도대운하와 4대강 사업, 광우병 사태, 용산참사 때 보여준 '불통 대통령'을 성토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책감을 느낀다"면서도 11개의 전체 문장을 통해 자기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를 적지 않았다. 하지만 수경 스님은 탐욕스러운 최고 권력자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내 안의 이명박' '우리 안의 이명박'에 대한 참회의 뜻을 밝혔다.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속은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나의 오체투지는 참회와 기도입니다.(중략) 나는 나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할 따름입니다."

수경 스님은 이 글을 보낸 뒤 지렁이와 자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었다. 온몸으로 쓴 참회의 글이었다.

[오체투지] 수경 스님, 자벌레처럼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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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가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서 서로 마주보며 절을 하고 있다. ⓒ 권우성


2008년 10월 17일, 오마이TV는 충남 논산을 지나는 오체투지 행렬을 생중계했다. 언론들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종교인의 묵언수행을 알린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카메라만 들이대는 게 죄송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행렬 뒤쪽에서 반나절 동안 함께 기었다.

합장한 상태에서 대여섯 발짝을 뗀 뒤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풀고 바닥을 짚은 뒤 팔꿈치를 땅에 댔다. 엎드린 상태에서 이마까지 땅에 내려놓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죽비소리가 울리면 3초 뒤에 일어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더운물을 끼얹듯 검은 아스팔트 열기가 얼굴을 감쌌다. 누군가가 흘린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점 앞에선 구정물 위에 몸을 얹었다.

속도를 늦췄더니 아스팔트 위의 삶과 죽음이 보였다. 자벌레가 오체투지로 기어갔다. 타이어에 수천 번 깔렸을 뱀의 주검을 피해 몸을 눕혔다. 아스팔트 갈라진 틈에서 푸른 씨앗이 움텄다. 땀방울이 그 위로 떨어졌다. 반나절을 기었는데 2km도 나아가지 못했다. 자동차와 덤프트럭은 매연을 뿜으며 시속 70~80km로 달렸다. 그 속도는 내 온몸을 뒤흔들었다.

나는 잠깐이었지만, 종교인들은 100일이 넘도록 고행의 순례를 이어갔다. 이보다 앞선 그해 2월에도 수경 스님은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면서 100일 동안 4대강을 도보로 순례를 했다. 수경 스님은 '생명의 강을 위한 연합 방생 법회 및 수륙제'에서 발표한 법문을 통해 당시 순례에 나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법 절차도, 국민 여론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를 상대로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참회와 기도와 통곡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법회는 통곡입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잃어버린 죽음의 시대에 바치는 조사입니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양심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항] "돈이 말을 하면 정의가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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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서 오체투지한 뒤 일어서는 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 이마에 작은 돌들이 붙어 있다. ⓒ 권우성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정권 초기였다. 수경 스님은 이에 맞서서 도보 순례 중에도 한반도대운하 사업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탐욕을 향해 사정없이 죽비소리를 날렸다. 그는 그해 3월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대운하는 돈의 노예가 된 우리 사회에 유포된 거짓 복음의 결정판입니다. 5년 정권을 위해서 국토의 근간을 허물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희망을 탕진하는 반경제적 도박입니다. 대운하는 경제를 빌미로 국민의 복종을 강요하는 신개발 독재적 발상입니다.(중략)

돈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정의가 설 자리를 잃는다 했습니다. '삶의 질'을 내팽개친 천박한 자본 논리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동력까지 탕진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서는 돈이 말을 했다. 그의 구속영장에 오른 100억 원대의 뇌물이 징표이다. 돈이 불법을 지시했다. 이에 반기를 든 인사를 사찰하면서 민주주의 시스템도 훼손했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의 이름을 4대강 사업으로 바꿔 공사를 강행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뇌물 혐의는 5억 원에 불과했지만, 아직 돈이 말을 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경 스님은 당시 법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지만, 순례자의 고언을 저버린 그는 결국 10년 뒤에 구속됐다.

[오체투지] 문규현 신부 "몸짓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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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자며 오체투지를 했다. ⓒ 오마이뉴스


오체투지가 지향한 것은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이었다. 수경 스님과 함께 문규현 신부도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가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유를 적은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문 신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문 신부는 오체투지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합니다. 저들이 숭배하는 경쟁과 실용으로 보자면 극단적으로 바보스럽고 누추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돈과 일등놀이에 몰두하는 사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음을, 성공 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은 사회는 죽은 공동체임을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천지간에 불통이고 사방이 '명박산성'입니다. 정권 스스로 무법탈법이요 공권력을 앞세우지 않고선 그 무슨 일도 행하질 못하는 지경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20년 전 30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그만가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걸었다. 문 신부는 당시 잦아든 광우병 촛불이 언젠가는 횃불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촛불은 조용히 불씨요 홀씨가 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들불이 되고 횃불이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문 신부의 경고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불씨가 되살아났다. 들불처럼 번졌고 횃불로 커졌다. 박근혜 탄핵 촛불은 계속 타올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삼켰다. 탐욕에 눈이 멀어 사적 이득을 취한 그를 속박하는 것이 문 신부가 말한 진리이고 정의였다.

[기도] 죽음의 길을 통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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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가 오마이뉴스 4대강 다큐 제작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4대강 다큐 제작팀


지난 12일 밤, 천주교 전주교구 서신동 성당에서 문 신부를 만났다.

"오체투지는 기도였지요. 생명의 길, 사람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수행이었습니다. 당시 화두는 소통이었어요. 소통의 부재로 나타난 대표적 현상이 한반도대운하였고 광우병 파동이었지요. '명박 산성'으로 상징되는 정권의 폭력적 진압은 용산에서 무고한 사람들 목숨도 앗아갔어요. 물은 흘러야 하고 생명은 서로의 공감과 배려 속에서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거지요.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떠난 길입니다. 누구를 탓해서만 해결될 일은 아니었지요. 우리 안에 공범자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었단 말이죠. 사람의 길이 무엇인가,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성찰만이 우리의 미래를 점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 신부는 아스팔트 위에서 수많은 로드킬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의 악몽을 떠올렸다고 했다. 문 신부는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갈 생명들은 우리의 죽음이고 사회적 죽음"이라고 동일시하면서 오체투지 순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아스팔트의 틈에서도 생명이 움트고 있더라고요. 나의 땀방울 하나로 생기를 얻는 작은 미물들을 보았습니다. 내 고통이 무가치한 게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약동케 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수행과 고통을 통해서 큰 힘을 얻은 거지요. 고통을 통해서 탐욕과 분노, 무지에 대한 성찰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문 신부가 말한 성찰의 전제는 자성과 함께 진실 규명이다. 그는 "4대강 토목공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탐욕은 죄를 낳고 죄는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어느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의 죽음이지요. 이명박의 비리를 조사해 책임을 묻고, 나아가 돈을 환수하는 것은 사회적 증오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사회적 무관심을 넘어 공감과 배려의 사회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이 죽음의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오체투지] '내 안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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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구속집행되는 이명박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동부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6일 오전, 이 글을 정리하는데 핸드폰 진동 벨이 울렸다. 연합뉴스 속보 알림이었다.

"MB '공정한 수사 기대 어려워' 옥중 조사 거부"

수인 번호 '716'은 구속된 지 며칠 만에 내 탓이라고 자책한 글이 거짓임을 온몸으로 시인한 셈이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글은 100여 일간의 고행으로 진실성이 강화됐지만, 이 전 대통령의 거짓된 글은 행동으로 증명했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그는 마땅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두 전직 대통령을 동시에 감옥에 가둔 탄핵 촛불의 뜻이고 정의이다.

10년 전에 이런 일을 예견한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는 지렁이처럼 땅바닥을 기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갔다. '내 안의 이명박'을 지우기 위한 성찰이었다. 속도를 잠시 늦추고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탐욕의 상징인 '제2의 이명박'이 다시 출현할 지도 모른다.

'이명박 4대강' 다룬 첫 영화 만든다


오마이TV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많은 독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이명박의 4대강'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 오마이뉴스, 감독 : 안정호 안민식, 투자/배급 : 스톰픽쳐스코리아)로 제작합니다. 지난 1월부터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이라는 제목의 미니다큐 4편을 만들었고, 4월초에 5편을 마무리한 뒤에 본격적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합니다.

'이명박 4대강'을 다룬 첫 영화는 오는 10월경에 개봉합니다. 단순한 고발 영화는 아닙니다. 지난 10년 동안 오체투지 순례단처럼 4대강 사업을 고발하면서 강과 함께 아파했던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의 고행과 자연에 대한 휴먼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오마이뉴스와 4대강 독립군들이 지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4대강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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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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