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바라보는 이효리, 나도 저렇게 웃고 싶다

[비혼일기] 모든 게 서럽고 아쉬운 40대, 이효리처럼 나이 들었으면

등록 2018.03.19 11:58수정 2018.03.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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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이효리처럼 나이들고 싶다.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는 든 생각이다. <효리네 민박>은 실제 이효리네 집에 일반인 민박객을 맞아서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주인이고 지난 시즌 1 때는 가수 아이유가 민박 스태프였다.

프로그램이 중반쯤 지났을 무렵, 이효리와 아이유가 길에서 우연히 한 소녀 팬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아이유의 열성팬이었던 소녀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고, 아이유는 그런 팬을 다독이며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는 이효리. 그때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어쩐지 쓸쓸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유에게 진심을 말한다.


"나는 어딜 가나 주인공이었어. 그런데 최근에 동수씨(민박집 손님)의 시선과 마음에 너만 있는 걸 보게 됐어. 왜냐하면 동수씨는 너를 좋아한 세대니까. 이제 내가 그걸 받아들이게 되고, 너를 아끼는 마음이 있으니 그런 모습도 흐뭇하더라. 이제 내가 앨범을 내는데 후배들보다 뒤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연습하게 된 것 같아. 그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이 섰던 자리에 선 후배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것. 내려갈 때를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 잘 나이 들고 익어가는 모습을 본 것 같아 흐뭇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생각났다.

후배의 성장, '질투'라는 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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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효리처럼 나이들고 싶다 ⓒ JTBC 화면캡처


내가 마흔한 살에 공채시험을 거쳐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었을 때, 공채 동기로 한 팀에서 일하게 된 열 살 아래 동생이 있었다. 공채 출신 작가들에 대해 경계심이 있었던 기존 작가들 틈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마음이 맞아서 금세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 방송과 편집 쪽에 경험이 있었던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의 사수 역할을 했다.

희곡을 쓰다 와서 방송 일에 백지 상태인 그녀는 취재원을 찾는 것부터 어려워했는데, PD들과 그녀가 내게 SOS를 보내기도 했고, 나도 그녀가 좋았던 터라 기꺼이 도왔다. 워낙 감각이 좋아서인지 그녀는 금세 적응하면서 갈수록 좋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녀의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이런 무한한 호의는 그녀가 나를 앞지르지 않는 선에서만 발휘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준비한 아이템과 프로그램이 자꾸 그녀의 것보다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이 꽂히면 만루 홈런급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기복은 없어도 늘 70~80점에 머무는 나는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감각이었다. PD들은 호평 일색이었고, 급기야 특집 때는 그녀가 에이스로 부각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마음의 전쟁. '질투'라는 활화산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재능이 부러울수록, 내가 밀릴수록 활동은 더 극성스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에게나 지기 싫어하는 질투 대마왕은 아니다. 어렵게 잡은 직업, 하고 싶었던 일, 나이 많은 작가를 뽑은 사람들의 기대감.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과다해진 의욕이 부른 참사였다. 

그녀와 나의 우정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와중에 엎친 데 덮치는 사건이 터졌다. 개편 때 우리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을 때였다. 경력에 비해 나이가 많았던 우리와 일하겠다는 PD가 없었다. 그때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PD가 그녀의 손을 잡고 기회를 주었다. 콕 집어서 그녀만.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사실 그 PD와 먼저 친해진 것도 나였고, 낯을 가리는 그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나였기 때문이다.

친하다고 해서 꼭 챙겨줘야 하는 법도 없고, 둘 중에 나부터 선택해야 하는 차례가 정해진 것도 아니기에, 내가 느끼는 배신감은 얼토당토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삐뚤어진 마음은 근거 없는 의심으로 상대를 내 멋대로 단죄하고,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나한테 접근한 게 애초부터 그 후배를 염두에 둔 거였나?'

친해지기 어려운 그녀와 접촉하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일 이후로 그 PD와는 연락이 끊겼기에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작가를 선택하는 것은 PD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고 나 혼자만의 해석을 했을 뿐.

나는 나를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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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 JTBC 화면캡처


그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난감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내 마음속에서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버린 그녀. 다행히도 내 질투심보다 그녀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와의 우정을 망가뜨리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다.

질투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고,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새벽기도에 나가서 신의 도움도 구했다. 일과 별개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다가도 마음이 어려울 땐, 그 친구는 눈치채지 못할 거리를 혼자 조절했다. 내 질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의 불을 끄기 위해 얼마나 혼자 분주했던지.

그런 노력은 얼마간 효력을 발휘했고, 다행히 내가 다른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는 자연스럽게 질투심은 약해졌다. 처음에는 그런 나에 대해 대견하다 했지만 돌아보면 그녀가 워낙 우직하고 품 넓은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녀도 분명 내 팔팔 끓는 열기를 느꼈을 텐데 말이다.

결국 나는 방송국을 떠났고 그녀는 방송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내 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성공이 기쁘다. 시간이 감정을 희석해 준 덕이리라. 다만 내 바닥을 안 보이려고 성숙한 여성 코스프레를 하려다가 삐끗거리며 심통 부렸던 내 분열적 태도들이 떠오를 때면,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더 이상 센터를 차지하는 주인공일 수 없는 나이, 젊음이 떠나고 부담이 되는 나이, 기대만큼 성장하지도, 다시 시작할 열정도 없는 나이, 가장 애매하고 힘든 나이, 그래서 모든 게 아쉽고 서럽다는 40대.

이 시간을 지나는 것이 불편하고 서운하고 아쉽지만 나는 지금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 다음에는 다른 풍경이 열리고 다른 역할이 주어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또 그때는 부디 이효리처럼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40대 싱글 #잘 내려가는 법 #질투 #이효리 #효리네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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