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큰 변화, 활용해야...
정의용·서훈, 왜 미중에 일러까지 갈까"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대북특사단 방북 결과 분석과 전망

등록 2018.03.08 11:13수정 2018.03.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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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특사와 반갑게 악수하는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5일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배석했다. 왼쪽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 연합뉴스


"김정은으로서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한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북특사단에게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으며 이에 대해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우리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던 그가 비핵화로 방향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정 전 장관은 북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의 실제 내용이 '주한미군 철수'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대화 테이블에 올려놨는데, 미국과 수교하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것도 선대의 유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이 요구하는 것은 미국과의 수교, 평화협정이라고 말했다.

"북과의 사전교감 아래 6자회담 복원 추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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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진은 지난 2016년 1월 19일 남북관계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정 전 장관은 이후 상황 전개와 관련해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이 미국에 다녀온 뒤 중국과 러시아(정의용), 일본(서훈)을 방문하는 것을 두고 "북한과의 사전 교감 아래 6자회담을 복원시켜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반도 역학 구조상 북한과 논의내용을 미국과 중국에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외교부가 아닌 고위급 특사 당사자들이 러시아와 일본까지 방문하는 상황에 주목한 것이다.

다음은 7일 정세현 전 장관과 나눈 문답 전문.


- 대북특사단 평양 출발 전날인 지난 4일 인터뷰에서 (정 전 장관이) "1박 2일로 짧게 가도 성과를 낼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것 같다"라고 했는데. 그렇게 된 것 같다.
"맞췄네(웃음). 사전 조율이 많이 됐다고 생각했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방남해서 우리 정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또 북의 대남통인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평창에 상주하고 있지 않았나. 거기서도 많은 대화가 있었을 거다."

- 이번에 특사단 만찬에 김정은 위원장 부인도 함께하고 김정은 위원장 내외가 특사단이 차 타고 떠나는 데까지 와서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선노동당 청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의도된 것이다. 정상 국가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과 코드를 맞출 수 있다, 대등한 상대로 대접해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북은 '악마' '안갯속'이고, 예측불가능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를 깨려했고, 상당 부분 성공했다고 본다. 미국과의 정상회담까지 의식하고, 트럼프 대통령 부인인 멜라니아와 리설주가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부터 부인이 함께 나왔다. 전임 후진타오까지도 그런 일이 없었다.

노동당 청사를 공개한 것도 이전에는 생각 못했던 일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을 공개한 적이 없고, 외부 주요인사도 백화원초대소로 가서 만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모습을 답습하지 않고 있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는 한편으로 대외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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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단 배웅하는 김정은-리설주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과 면담·만찬한 약 10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만찬이 끝난 뒤 북측이 마련한 차량에 탑승한 특사단을 배웅하는 장면. 왼쪽부터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정은 당 위원장,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 연합뉴스


- 특사단 발표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우선 남북정상회담을 판문점 남측인 평화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절묘하다. 평양으로 안 가고 우리 쪽에서 하면서도, 경호 문제도 해결된다. 판문점에서 개성 자남산 여관도 가깝기 때문에 필요하면 출퇴근도 가능하다.

1차 정상회담때 답방 약속을 했던 북한이 2차 정상회담 때 장소 때문에 고심을 많이 했다. 결국 북은 '우리는 다 통제가 되는데, 남측은 그게 안되지 않느냐, 우리는 장군님(김정일)에게 서울로 가시라는 말씀을 못 드린다'고 했다. 그때 판문점 아이디어가 나와서 실행이 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동서독 최초 정상회담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브란트 수상이 1970년 3월에 슈토프 동독 수상과 정상회담을 할 때, 당시 서독 수도였던 본에서 동독으로 가는 첫 기차역인 에어푸르트역 역사에서 정상회담을 했고, 그 다음에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는 첫 기차역인 카셀역이 정상회담 장소가 됐다. 판문점처럼 국경 지대에서 첫정상회담을 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양쪽 수도인 본과 동베를린이 정상회담 무대가 됐다."

-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유훈'이라면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과 비핵화 문제에 대해 대화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직접 이를 확인했다는 게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줘서 미북대화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6자회담을 복원시켜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내용(3항)까지 담은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같다."

- 북이 6자회담 복원을 구상하고 있다?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이 함께 미국에 간다. 그 뒤에 정 실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훈 원장은 일본에 간다. 왜 그럴까. 남북과 미·중·일·러, 6자 회담국 아닌가. 이같은 방문 행보는 북한과도 사전에 교감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북으로서는 미국과 대화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돈을 안 쓰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 북한 신포에 경수로를 지을 때 우리가 70%, 일본이 20%를 부담하게 했고, 나머지 10%도 EU에게 넘겨버렸다. 그리고 중유 제공도 중간에 흐지부지해버렸다.

서훈 원장이 정의용 실장과 함께 미국에 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북의 화법과 북의 속내를 정확히 아는 서훈 원장이 트럼프에게 직접 설명해야 효과가 클 것이다."

"군사위협해소·체제보장이 주한미군 철수?... 김일성·김정일도 주둔 용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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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과 기념 촬영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을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미국과의 수교 그리고 평화협정이다. 둘은 표리관계다. 평화협정을 맺어야 수교가 가능하다. 정전상태에서는 수교할 수 없지 않나."

- 실제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은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대화 테이블에 올려놨는데, 미국과 수교하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것도 선대의 유훈이다. 김일성은 1992년에 김용순 국제비서를 아놀트 캔터 미 국무부 차관에게 보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우리와 수교하자, 통일 뒤에 주한미군 위상·역할 바뀌면 남아 있어도 좋다'고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동유럽이 다 망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붕괴할 거라고 보고 이를 거부했고, 북은 더 핵에 매달리게 된 거다.

그때도 북은 미국의 위협이 사라지고 체제안전 보장되면 핵을 포기 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14일에 김정일 위원장도 평양에 간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 정의용 실장은 "공개는 못하지만, 미국에 전달할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별도로 갖고 있다"라고도 했다.
"추정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게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 별도 전달할 김정은 메시지?... "주한미군 주둔 용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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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6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특사단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접견하고 만찬을 함께한 모습. ⓒ 청와대제공


- 김 위원장은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게 '핵보유국으로서의 대우'를 말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 갖다 붙이면 안 된다. 그러면 비핵화라는 의사 표시와는 어긋난다. 대우해달라는 말에서는 사실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 미국에서 그를 '로켓맨' '스마트 쿠키보이' '김정은 만나면 햄버거는 함께 먹겠다'고 했는데, 이건 김정은을 애 취급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무시에 대한 열등의식의 솔직한 발현일 수도 있다."

- 북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에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를 갖고 문 대통령과 통화할 때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이라고 한 것과 짝이 되는 얘기다."

- 그런데 이 대목에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음"이라고 붙어 있는 대목은 조금 뜬금없어 보인다.
"나쁘게 보면 '지가 뭔데 이런 소리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최근에 '북의 핵은 적화통일용'이는 얘기들이 나오니까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대미 협상용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핵 적화통일'론은 북이 왜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지 모르고 하는 얘기다. 그런 용도라면 왜 장거리 미사일을 만드나. 개성에서 서울은 200km밖에 안 된다."

'핵·재래식 무기 남측에 사용 않겠다'... "'핵 적화통일론' 반박 의미일 것"

- <조선일보> 칼럼에는 이 대목을 북이 남에게 "길잡이를 잘하면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썼더라.
"영화 <강철비>에서 북측 엄철우가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의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고 한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 트럼프 대통령은 특사단 발표 뒤에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트위터에 썼다. 미국도 북한과의 공식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즉흥적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게 아닐 거다. 우리 정부로부터 사전에 들은 얘기가 있을 거고, 그리고 미 국방부가 특사단이 북과 논의한 내용이 발표되기 이전에 (우리 시각으로 6일 이른 새벽에) 이미 '우리는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김정은이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 경제 제재나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옵션 거론 등에 압박을 받았다는 시각이 많은데.
"군사행동은 어차피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고, 경제제재는 영향을 줬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미국 제재에 동참하면서 실제 중국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물자가 크게 줄었다는 것 아닌가."

- 그럼 '더 제재하면 완전히 손 들고 나올 것 아닌가'라는 논리가 가능하지 않나.
"제재가 아프고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그걸로 굴복까지 시킬 수는 없다. 북은 다시 고난의행군을 감수할 거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의 기질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절의 그 혹독한 경험, 그리고 강대국 밑에서 시달리면서 생긴 DNA가 남쪽은 경제발전 쪽으로, 북은 군사 쪽으로 간 거다. 이걸 돈과 바꾸는 게 낫지 그 돈을 아까워하다가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수 있다. 북은 이번에 미국이 무시할 경우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며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게 될 거다."

"김정은, 올 신년사 이후 방향 바꾸기엔 너무 멀리 와... 이대로 대미대화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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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단 귀환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이 6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정의용 실장 발표문 중에 혹 찜찜하다던가, 걱정된다던가 하는 대목이 있다면.
"김정은이 트럼프 못지 않게 불가측성이 크기는 하지만 올해 1월 1일 신년사 이후 두 달 조금 넘는 모습을 볼 때, 방향을 바꾸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온 거 같다. 미국으로 가겠다는 행보를 돌리기에는 멀리 왔다. 북은 독재 전제정치국가지만 그 나름으로 여론이라는 게 있다. 미국이 빌미만 제공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은 지금 방향으로 가야만 국내정치적인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다.

- 남북관계사에서 이번 특사단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보인 행보는 어떻게 기록될까.
"김정은이 과감한 양보를 한 것이고, 이는 민주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다. 그는 지난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는데 이번에 비핵화로 입장을 바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저렇게 하면 지지세력부터 이탈하겠지만, 북한은 '수령은 무오류'인 사회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걸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문재인 #김정은 #정세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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