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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공개된 영상... '통제불능' 상태의 짐 캐리

[리뷰] 영화 <짐 앤 앤디> 진짜 '나'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울림 주는 작품

18.03.07 16:08최종업데이트18.03.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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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짐과 앤디> 포스터. ⓒ Vice Films


배우의 인터뷰에는 연기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자신을 잠시 지우고 철저히 캐릭터가 되는 방법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반영해 해당 캐릭터를 '자기화'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배우의 역할이 끝난 뒤에도 본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는데, 특히 자신을 지우고 캐릭터 자체가 됐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큰 후유증을 겪는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이런 직업적인 특성과 고충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 스미스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짐 앤 앤디>(JIM & ANDY)다. 이 작품은 지난 1998년 배우 짐 캐리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맨 온 더 문>(Man On The Moon)을 찍을 때 경험했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당시 제작사가 보도자료 용도로 찍었던 촬영현장 영상을 중심으로 현재 시점에서 이를 돌아보는 캐리의 인터뷰와 관련 영상 자료 등을 엮어 만들었다.

앤디 카우프만을 연기한 짐 캐리, 당시 호평 받았지만

<맨 온 더 문>은 미국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1983년,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한 카우프만은 1970년대 초반부터 코미디 전문 클럽 및 극장 무대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드라마 <택시(Taxi)>, 토크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등 TV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캐리는 카우프만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익살스러운 말투와 구부정한 자세 등을 능숙하게 재현하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고, 이를 통해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는 등 대중과 평단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짐과 앤디>에 따르면, 캐리는 <맨 온 더 문>을 찍으면서 극단적으로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 방식을 동원했고, 그로 인해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당시 보도자료 용도로 찍었던 촬영현장 영상은 제작사였던 유니버설의 반대로 20년 가까이 공개되지 못했고, 이번 <짐과 앤디>를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캐리는 '천의 얼굴'로 불릴 만큼 유머러스하고 다양한 표정 연기로 웃음을 자아냈던 인물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래서 그를 영화 <마스크> <덤 앤 더머>에서 봤던 유쾌한 코미디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짐과 앤디> 인터뷰 영상에 나오는 최근의 그를 보면,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풍모를 보이는 데다 살짝 우울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등 한국인들에게는 무척 낯선 얼굴로 다가온다.

게다가 1998년 <맨 온 더 문>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에서 캐리는 카우프만에게 빙의라도 된 듯한 모습이다. 짐 캐리는 카우프만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연기의 경계를 무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가하는가 하면 거침없이 독설을 내뿜는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광적인 모습의 짐 캐리는 낯설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하여 캐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앤디에게 맡겼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한국식으로 이해하자면 '빙의'라는 개념을 동원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물론 캐리는 그때 연기 방식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그런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소회를 드러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맨 온 더 문>이라는 영화의 후일담이나 배우들의 애환 등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필자는 <짐과 앤디>라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결국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모두 역할극을 한다, 진짜 '나'의 모습은

영화 <짐과 앤디>의 한 장면. ⓒ Vice Films


따지고 보면 배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대부분은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역할극을 하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훌륭한 부모, 멋진 친구,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연 어디까지를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문제는 이렇게 역할극을 하는 과정에서 영화 <맨 온 더 문> 촬영 당시 캐리가 그랬던 것처럼 본연의 모습을 잃거나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캐리는 자신의 경우 이런 욕망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놓아야 했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성공을 쫓다가 마음에 구멍이 난 자신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고백이었다. 이런 그의 사연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성공을 바라는 건지 불분명한 상태로 성공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 한국인들에게 틀림없이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이 외에도 <짐과 앤디>에는 <트루먼 쇼> <이터널 선샤인> 등에서 캐리가 보여준 연기에 반영된 자전적인 요소 그리고 캐리와 그의 아버지에 얽힌 추억 등 짐 캐리라는 사람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 캐리를 좋아하거나, 이 글에서 언급된 그의 출연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시간을 내서 한 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짐과 앤디 짐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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