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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최전선에서 '블랙 프라이드'를 노래하다

[리뷰] 영화 <블랙팬서> OST, 켄드릭 라마가 설계한 사운드 트랙

18.02.27 17:12최종업데이트18.02.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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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팬서 더 앨범 Music From And Inspired By> ⓒ 유니버셜 뮤직 코리아


5세기 전 쇠사슬에 묶여 노예선을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던 아프로 아메리칸(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마침내 영화 <블랙 팬서>로 미국 문화 산업의 심장에 거대한 왕국을 세웠다. 링컨의 해방 선언으로 족쇄를 풀었음에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며 워싱턴 DC로 행진하였음에도, 사회 곳곳에서 자행된 차별과 편견, 희생과 수난을 견뎌야 했던 블랙 커뮤니티는 영혼의 고향 아프리카에 최첨단 과학 기술과 지혜로운 전통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와칸다 왕국을 이룩했고, 그들의 히어로 <블랙 팬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자부심을 이입했다.

현 시대 최고의 힙합 스타이자 컴튼이 낳은 최고의 리리시스트,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설계한 <블랙팬서 더 앨범 Music from and Inspired By>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영화를 뒷받침하는 사운드 트랙의 한계를 넘어 독립적인 작품의 위치를 획득한 앨범이다. 켄드릭은 영화의 시놉시스와 그로부터 얻은 영감을 도화지 삼아 밑그림을 그려냈고, 그의 소속사 TDE 엔터테인먼트와 더불어 힙합 신을 대표하는 애프터매스(Aftermath)와 인터스코프(Interscope) 아티스트들은 물론 아프리카 태생 아티스트들이 의기투합해 한 편의 거대한 뮤지컬을 완성시켰다.

앨범은 아이작 헤이즈의 < Shaft >, 커티스 메이필드의 < Superfly > 등 1970년대부터 내려오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cksploitation) 영화 사운드트랙의 흐름을 계승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힙합 씬을 대표하는 의미까지 확보했다. 세련됐고, 본작의 의미를 과잉 혹은 오용하지 않으며, 보다 커다란 이상을 향해 묵직하게 돌진한다.

영화로부터 받은 영감을 표현하면서 각 장면을 연상케 하는 곡들 인상적

'All the stars' 뮤직비디오 속 켄드릭 라마. ⓒ KendrickLamarVEVO


켄드릭 라마는 위풍당당한 대관식 'Black panther'로 포문을 열고, 2017년의 신인 시저(SZA)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All the stars'를 통해 원대한 이상으로 부족한 현실을 극복해나가리라는 의지를 선포한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에 올라있는 'All the stars'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앨범이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와 연결되는 지점은 스쿨보이 큐(Schoolboy Q)와 투 체인(2 Chainz), 남아공 래퍼 사우디(Saudi)가 함께한 'X'부터인데, 왕위를 이어받아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블랙 팬서' 트찰라의 고뇌를 낭만적인 칼리드(Khalid)의 'The ways'로 상징하고 부산에서의 추격 씬을 긴박한 비트와 타이트한 랩으로 형상화한 빈스 스테이플스의 'Oops' 등이 영화의 각 장면을 다시금 연상케 한다.

재미있는 점은 각 트랙이 참여한 아티스트에 따라 선명한 개성을 품고 있음과 동시에 유기적인 호흡으로 튀지 않는 하나의 작품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 Big Fish Theory > 타임머신으로 미래로 날아간 듯한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와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트랙이 그렇고, 켄드릭의 'LOVE'로 이름을 알린 자카리(Zacari)와 남아공 아티스트 벱스 워두모(Babes Wodumo)와 프로듀싱 팀 빅 너즈(Big Nuz)가 빚어낸 태고의 리듬 'Redemption' 역시 특징적이다.

인트로의 피리 인트로만 들어도 '트랩 킹' 트래비스 스캇(Trivis Scott)을 예상할 수 있는 'Big shot' 역시도 아티스트 개개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곡이다. 적재적소 아티스트 선택을 통해 영화의 각 장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면서 즐길거리로서의 요소로도 소홀하지 않은 결정이다. 감각적인 그루브의 본능적 소울을 주 무기로 삼는 앤더슨 팩(Anerson .Paak)과 짙은 잔향의 덥스텝 R&B로 힙합과의 교집합을 유지하는 영국 프로듀서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Bloody waters'는 영화 속 건조하면서도 비극적인 긴장감을 대표한다.

블랙 커뮤니티의 성장한 자긍심이 담긴 재창작, 상업적으로도 성공

'King's Dead'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켄드릭 라마(좌), 퓨처(중), 제이 록(우). ⓒ JayRockVEVO


캘리포니아 슬럼가에서 태어난 악역 킬몽거의 왕위 찬탈을 상징하는 'King's dead'는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 It)과 제임스 블레이크의 합작을 통해 건조한 트랩 비트의 전반부, 긴장과 공포를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불안정한 리듬의 후반부를 나눠 퓨처(Future)와 제이 록(Jay Rock)의 호화 라인업으로 꾸렸다. 영웅의 책무를 깨닫고 블랙 커뮤니티의 미래를 새로이 그려나가는 블랙 팬서의 고민을 위켄드(The Weeknd)와 그의 오랜 파트너 닥 맥키니(Doc Mckinney)의 'Pray for me'로 투영한 것도 탁월하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전설들은 펑크(Funk) 리듬을 빌어 '나는 흑인이고 내가 자랑스럽다'를 크게 외쳤다('Say it loud - I'm back and i'm proud'). 그러나 이 사운드트랙에서 켄드릭과 블랙 아티스트들은 이미 왕(King)이다. 블랙 커뮤니티의 성장한 자의식은 여전히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동포들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대립하는 영화 속 두 등장인물, 트찰라와 킬몽거 중 비폭력과 박애주의의 편인 트찰라의 손을 들어준다.

블랙 커뮤니티는 더 이상 소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류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그들의 자긍심이 자애로운 히어로 블랙 팬서와 번영하는 국가 와칸다로 투영됐고, <블랙팬서 더 앨범 Music from and Inspired By>는 이에 응답하듯 대중음악의 위치에서 웅장한 찬가를 선사했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 <블랙 팬서>는 마블 영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2주 연속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싱글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올렸고 평단의 일치된 호평까지 획득했다. '우리 시대의 레전드' 켄드릭 라마가 또다시 자신의 전설적인 커리어를 갱신하고, 블랙 커뮤니티의 주류 문화 선도를 증명해낸 것이다. 범상치 않은 성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블랙팬서 영화 앨범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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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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