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20년'과 '이재용 집행유예'의 간극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승마지원 말 소유권 인정에서 판단 엇갈려

등록 2018.02.13 20:53수정 2018.02.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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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수첩'은 다시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징역 6년,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이 내려진 재판에서 안 전 수석의 수첩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증거 능력이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불과 일주일 만에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안종범 수첩', 유죄 입증에 중요 증거로 사용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2.13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13일 최씨와 안 전 수석, 신 회장의 1심 판결에서 가장 먼저 '안종범 수첩'의 증거 능력부터 판단했다.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기업 총수 독대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었다고 진술했다"라며 "대통령과 개별면담자 사이에 단독 대화 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 사실의 정황 증거로 증거 능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안종범 수첩'과 관련해 "전문 증거의 증거 능력을 배제하고자 하는 전문법칙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증거로) 허용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즉, 박 전 대통령의 말을 기록한 것이지만, 이것이 곧바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오간 내용까지 직접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두 재판부의 상반된 판단은 재판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 안 전 수석과 함께 대기업들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내게 하는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강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안종범 수첩'은 아주 주요한 증거로 쓰였다. 또 신동빈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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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 이희훈


반면,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 부회장이 일부 혐의에서 죄를 덜 수 있는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 능력을 부인하며 최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지원 36억 원만 유죄로 인정하고 이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앞서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며 승마지원 72억 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 원에 뇌물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일명 '안종범 수첩'은 안 전 수석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조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박 전 대통령 등의 지시를 일자별로 받아 적어 작성한 63권 분량의 수첩이다. 여기에는 특히 박 전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독대 후 지시사항이 적혀 있어 국정농단 사태 관련자들의 뇌물죄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라 승마지원 뇌물액도... 엇갈린 판단

최씨의 1심 재판부와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은 또 있다. 최씨의 재판부는 삼성이 정유라씨의 훈련에 제공한 '살시도' 등 고가의 마필과 보험료 36억 원도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제공받은 뇌물은 소유자 명의 누구로 돼 있든지 간에 받은 사람이 실질적 사용권한, 처분권한 가지고 있었다면 뇌물 취득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라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반면 이 부회장의 항소심은 "말의 소유권은 삼성에게 있으므로 이를 빌려 탄 사용 이익만 뇌물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차이로 승마지원 관련 최씨의 뇌물 수수액수는 72억 원,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액수는 36억 원으로 달라지게 됐다.

이 같이 양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과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에서 "다행스럽게도 오늘 법원은 이재용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업무수첩이 증명하는 간접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라면서 "이러한 법리적 판단이 증거법칙에 부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재용 사건 상고심에서 반드시 법리적 오류가 바로잡힐 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또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는 '마필의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는 전제 아래 사용이익을 뇌물로 보면서도 사용이익을 산정하지 않음으로써 뇌물액수를 감축시켰다. 이러한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재용에게 집행유예를 선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그런데 오늘 판결에서 실제 마필의 실질적인 소유권이 최순실·정유라 등에게 있었던 점을 명확히 하면서 뇌물액수가 72억9735만 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라고 지적했다.
#최순실 #안종범 #박근혜 #정형식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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