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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쏟아낸 유승호 "가끔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다"

[인터뷰] 다시 로코 도전할 거냐고 묻자 "아직은 진지한 장르가 좋아요"

18.02.12 16:28최종업데이트18.02.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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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 기자들 곁으로, 흰 마스크로 얼굴의 2/3를 가린 유승호가 다가왔다. 눈만 빼꼼히 내놓은 상태였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심한 감기에 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살, 목감기, 코감기가 한꺼번에 왔어요. <로봇이 아니야> 끝나고 긴장이 풀렸나 봐요. 촬영하는 동안 잠을 너무 못 잤거든요. 며칠 전 드라마 종방연 때도 늦게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저는 먼저 일어났어요."

드라마 시청률은 저조했고, 불과 6개월 전 <군주> 종영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종영 인터뷰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목소리만 들어서는 이미 잡아놓은 인터뷰도 취소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유승호는 다시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시청률 저조했던 <로봇이 아니야>, 내게는 완벽했다  

첫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로봇이 아니야>를 마친 배우 유승호를 만났다. 유승호는 "이제라도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홍보하고 싶었다"면서 "내게는 시청률 말고는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완벽한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 산 엔터테인먼트


- 인터뷰 한다고 해서 사실 좀 놀랐다. <군주> 인터뷰 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작품 인터뷰는 꺼리는 배우들이 많으니까.
"결과만 보면 안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를 봐주신 분들은 뒷이야기가 궁금하실 거고, 나는 SNS를 안 하니까 이렇게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팬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만족스럽게 이 작품을 마쳤다.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대로 작품이 묻히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품은 끝났지만, 이제라도 사람들이 <로봇이 아니야>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 시청률 말고는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내게는 너무 완벽했던 드라마였다."

- 작품 초반, 전 여자친구의 얼굴을 본 떠 로봇을 만든다는 설정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홍백균 박사(엄기준 분)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들어간 설정이었다. 여기에 거부감이 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건 작품의 극히 일부분이다. '유니폼을 입은 여자 로봇'이 잘못하면 성적인 코드로 읽힐 수도 있다는 걱정은 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고민을 많이 했고, 로봇의 '딥 러닝(Deep Learning) 과정을 중요하게 다뤘다.

사실 우리 드라마는 인간과 로봇이 사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로 세상과 문을 닫고 살던 한 인간이 결국 사랑의 힘으로 그 상처를 치유한다는,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꼭 닮은 로봇, 로봇인 척 연기하는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은 민규(유승호 분)가 사람인 지아(채수빈 분)와 가까워지기 위한 계기였다."

인간 알레르기 환자 민규와 유승호, 그들의 공통점

5살에 데뷔해 평생을 유명인으로 살아온 유승호. 그래서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고 살던 <로봇이 아니야> 민규의 마음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 산 엔터테인먼트


극 중 민규는 어릴 때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상처로 인해 인간 알레르기 환자가 된다.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고 살던 민규에게, 대화가 가능한 로봇 아지3(인척 연기하는 지아)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위안받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5살에 데뷔해 평생을 유명인으로 살아온 유승호. 민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더 작품의 메시지에 공감한 건 아닌지 궁금했다. 하지만 유승호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적은 많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지3처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로봇도 필요 없고, 자신의 상처를 사람(혹은 사랑)이 치유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 드라마의 메시지와 민규의 변화에 공감했는데도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민규는 민규고, 나는 나니까.(웃음) 친구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해본 적은 있는데,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더라.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그만큼 믿는 사람이 없고. 이젠 몸에 익어서 그런지 그냥 혼자 생각하고, 혼자 푸는 게 익숙하다."

- 혼자 모든 걸 끌어안고 있으면 외로움도 커지지 않나. 
"예전엔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변 상황이 달라졌다거나 지금 외로움을 못 느낀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졌다. 버틸 수 있을 정도. 아니, 가끔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그냥 혼자가 편하다.(웃음)"

'외로움을 잘 견디게 됐다', '혼자가 편하다'는 유승호의 목소리에는 분명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정말 자긴 이제 괜찮다는 듯, '요즘 너무 좋다. 아무런 고민도 없다'고 했지만, 어쩐지 자꾸만 '그냥 체념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어찌해 봐도 나아지지 않으니,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면의 벽을 더 두껍게 치는 느낌. 유승호는 몇 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면서 "놓을 수 있는 건 다 놨다"고 말했다. 

-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일이 생기면 주위에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그 주제에 대해 떠드는 것으로 고민의 무게를 덜기도 한다. 남에게 쉽게 마음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타입인 것 같은데, 이럴 때 유승호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나.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 자체에 대해 혼자 고민한다. 고민한다고 정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민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가끔이지만 답이 나오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당시엔 심각했지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었던 고민이 많더라. 작품 선택에 대한 것들, 군대 다녀와서 영화가 잘되지 않아 힘들었던 일, 연기에 대한 것들... 지금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아무 고민도 없다. 작품 끝나서 마냥 좋은 상태다.(웃음)"

- '고민 없다', '마냥 좋다'는 사람에게 계속 '힘들지? 힘들잖아' 하고 추궁하는 느낌이지만 어쩐지 자꾸 묻게 된다. 어쨌든 견디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가슴 속 답답함은 있지 않을까? 그럴 때 푸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유일한 취미가 레이싱이다. 힘들면 참자 참자, 조금만 더 참고 차 타러 가자, 하면서 참는다.(웃음)"

채수빈과의 부엌 키스신, 유승호 아이디어였다

<로봇이 아니야>는 유승호의 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작이다. 유승호는 TV를 통해 달달한 눈빛으로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이 어색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 산 엔터테인먼트


- 지난 <군주> 종영 인터뷰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어색하고 자신 없다고 했다. 그러곤 곧바로 택한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로봇이 아니야>였다. 데뷔 18년 만에 첫 로맨틱 코미디였는데 어땠나.
"만약 초반부터 지아와 알콩달콩한 연기를 해야 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민규가 초반엔 인간 알레르기 때문에 사람과 가까이하지 못하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지아를 향한 마음을 깨달으면서 가까워진다. 민규가 변하면서 지아와 가까워지는 동안 나도 수빈씨랑 친해질 수 있었다. 덕분에 후반부 사랑에 빠진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 채수빈과의 부엌 키스신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반 키스신 두 번은 그냥 뽀뽀였다. 진하고 깊은 감정을 나누는 게 아니라 그냥 동화처럼 예쁜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감독님이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는 거다. 수빈씨와 나 모두 모자 부분에 털이 달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털에 가려 키스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고. 그래서 급하게 추가된 장면이다.

감독님이 수빈씨랑 키스신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해 보라고 문자를 보내셨고, 다음 신이 주방이라 거기에 맞는 키스신을 고민해오라고 주문하셨다. 주방이니 식탁에 수빈씨를 올려두고 키스한다는 거 말고는 떠오르지 않더라. 그래서 반대로 해보자고 했다. 내가 먼저 앉아있고 수빈씨를 끌어안아서 하는 거로. 감독님도 수빈씨도 괜찮다고 해서 그런 키스신이 나왔다.

내가 낸 아이디어였고, 수빈씨와 키스신도 몇 번 찍은 뒤라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찍고 나니 너무 부끄러운 거다. 찍고 나서 모니터 쪽으로 도망가 있었는데, 수빈씨가 '빨리 와! 새벽인데 빨리 찍고 가야지!'하고 소리치더라. 수빈씨까지 쑥스러워했으면 민망할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덜 쑥스럽게 잘 찍을 수 있었다. 그 키스신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시청자 분들이) 그런 걸 원하셨던 건가보다 싶고.(웃음)"

- 안 해 본 캐릭터나 장르를 연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할 것 같다. 민규를 연기하게 되면서 '내게 이런 면도 있었나?' 하고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후반부에 지아에게 투정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정말 친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한테만 하는 행동이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정말 신기했다. 내가 이 현장이 진짜 편하고, 지아가 정말 편하고 좋아졌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막상 방송으로 보니... 어휴 보기 힘들더라. 하하하." 

- 작품 속 유승호와 실제 유승호의 모습이 많이 다른가 보다. 
"작품뿐 아니라 집 밖 나오면 나라는 사람은 사라진다. 실제 유승호라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실제 내 모습이 이중인격자라거나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 밖에 나오면 완전히 내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요즘은 많이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풀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유승호 

"나는 정말 재미도 없고, 별거 없는 사람이다. 평범하고,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그게 다다." ⓒ 산 엔터테인먼트


- 많은 배우들이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고, 여러 채널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대중도 그런 모습에 열광하기도 하고. 유승호에게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 없나.  
"보여드리면 실망하실 것 같다.(웃음) 나는 정말 재미도 없고, 별거 없는 사람이다. 평범하고,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그게 다다."

- 사람들이 '재미있는 유승호'를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냥 '날 것의 유승호'를 원할 수도 있다. 
"글쎄... 그건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웃음)"

- 지난 <군주> 인터뷰 반응이 좋았던 것도 솔직한 유승호의 모습에 대중이 매력을 느껴서 아니었나. 유승호 만큼 호불호 갈리지 않고 호감도 높은 연예인도 많지 않은데, 조금 더 오픈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나도 포장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해서 온 분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다.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고, 그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그것도 내 몫이고." 

- 초반에 이제라도 <로봇이 아니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고 했다. 아직 <로봇이 아니야>를 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주연 배우로서 어떤 포인트로 이 작품을 홍보하고 싶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다는 생각은 안 한다. 소재나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드라마를 잘 뜯어보시면 우리 이야기가 인간과 인간에서 시작해서 인간과 인간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다. 사람과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다. 그 안에는 사랑이라는 달콤함도 있고.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이제라도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 1부부터 다시 드라마를 돌려보면서 자세히 한 번 볼 생각이다." 

- 어쨌든 첫 로코 도전을 마쳤다. 이 작품은 유승호 로코의 시작일까, 끝일까? 
"이번이 처음인데 일단 시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음 로코는 시간이 좀 더 지난 다음에 택하는 것으로. 하하하. 사람마다 선호하는 장르가 다른 것 같다. 아직 내게는 사랑에 빠진 캐릭터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로봇이 아니야>는 분명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난 진지하고 선 굵은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다."

- 지금 유승호의 모습이 체념의 결과이든, 극복의 결과이든, 앞으로도 배우 유승호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거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엔딩을 보고 싶다. 그래야 나도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웃음)"

지난 <군주> 인터뷰에서 화제가 됐던 유승호의 '비름나물' 뒷이야기. 당시 유승호는 인터뷰를 마치고 농사짓는 친구를 종종 돕고 있다면서, 인터뷰를 마치고 비름나물 꽁다리 썰러 가야 한다고 말해 큰 화제를 모았다. 요즘도 친구를 도와 농사일을 하는지 묻자, "그 친구는 농사를 접고 취업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승호가 꽁다리 썬 비름나물'이라고 써서 팔면 잘 팔리지 않았겠냐 묻자, "그렇잖아도 친구가 다 자기가 할테니 너는 얼굴만 빌려달라더라.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거절했다"며 크게 웃었다. ⓒ 산 엔터테인먼트



유승호 로봇이 아니야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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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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