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응원단 화장실까지 취재한 언론사, 불쾌하다

[게릴라칼럼] 국내 언론 보도 경쟁과 여성 인권 무지가 부른 참사

등록 2018.02.08 14:22수정 2018.0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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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로 전송된 <연합뉴스>의 관련 포토뉴스.(모자이크 처리) ⓒ 연합뉴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평창 온다…백두혈통 첫 방남 (SBS <8시 뉴스>)
김정은 동생 김여정 평창에 온다…'힘 실린' 북 대표단 (JTBC <뉴스룸>)
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 온다…'백두혈통' 첫 방문 (MBC <뉴스데스크>)
北, 김여정 파견 '깜짝 통보'…백두혈통 첫 서울 방문 (KBS (뉴스9>)

김정은의 여동생, 백두혈통, 역사적인 첫 남한 방문. 7일 주요 방송사 메인뉴스 헤드라인들이다. 남쪽 방송사가 '열광'할 만한 뉴스, 맞다. 이어지는 해설기사 역시 "단순 여동생 아닌 '北 2인자'", "막강권력", "한반도 긴장 완화 의지", "불량국가 이미지 씻기?" 등 엇비슷한 해석이 쏟아졌다. 이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배치된 뉴스 역시 동일했다. 이날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강원도에 도착, 인제에 짐을 풀었다는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 관련 소식이었다.

모습 드러낸 예술단…털모자에 붉은 코트, '미소' 짓기도 (JTBC <뉴스룸>)
"응원? 보시면 압네다"…北 예술단, 한국 가요도 연습 (SBS <8시 뉴스>)
13년 만에 온 北 응원단…환영 만찬 참석 (MBC <뉴스데스크>)
北 응원·기자단도 도착…"힘 합쳐 잘합시다" (KBS (뉴스9>)

'김여정'에 집중한 SBS를 제외하고, 세 방송사 모두 북한 응원단과 예술단을 포함한 방남단의 도착 소식에 두 꼭지를 할애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북한 응원단의 방남은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회 이후 13년 만이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아니 이해가 불가능한 뉴스는 이날 오후 <연합뉴스>가 터트렸고, <중앙일보>가 이를 가공해 내보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연합뉴스>와 <중앙일보>의 화장실 카메라, 불쾌하다 

<연합뉴스>는 이날 오후 경기도 가평 휴게소에 들른 북한 응원단을 취재한 '포토뉴스'를 대거 '방출'했다. 오후 2시 이후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화장실에 들른 여성 북한 응원단의 사진이 수십 장 포털로 전송됐다.


<꽃단장은 필수>, "북한 응원단이 7일 오후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거울을 보며 단장하고 있다"
<휴게소 들른 북한 응원단>, "북한 응원단이 7일 오후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외모점검은 필수>, "북한 응원단이 7일 오후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며 외모 점검을 하고 있다."

문제는 휴게소 화장실 내부에서까지 촬영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꽃단장', '외모점검' 등의 제목을 단 이 포토뉴스들은 응원단이 들른 휴게소 내 여성 화장실 내부를 담고 있었다. 몇몇 사진은 응원단을 마주친 시민들의 뒷모습과 함께 '반응'을 스케치한 뉴스였지만, 적지 않은 수가 화장실 내부 사진이었다.

아무리 평창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북한 '여성' 응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지만, 화장실에 가려고 줄을 선 모습까지 촬영할 '권리'까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 부여됐다고 할 수 있을까. 즉각 "북한 응원단은 인권도 없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만한 사진이었다. 논란이 되자 <연합뉴스>는 몇몇 포토뉴스는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연합뉴스> 사진부 관계자는 "사진에 문제가 있어 오후 4시50분경 화장실이나 내부 모습이 보이는 사진은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된 사진에 대해 "여성 기자가 찍은 것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화장실 안에서 응원단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렇다보니 '시민 스케치'를 한다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문제가 있는 사진이라 내부에서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합뉴스>의 해명은 북한 응원단에 쏠린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물론 그에서 비롯된 과도한 보도 경쟁이 부른 또 하나의 보도 참사라 할 만하다. 특히나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가 촬영한 것은 여성과 여성 인권에 무지한 기존 언론의 '나쁜 관행'이 빚은 우리 언론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화장실까지 따라간 취재 카메라... 북한 응원단은 인권도 없나요?"

<중앙일보> 관련 기사(사진 모자이크 처리) ⓒ 중앙일보 갈무리


8일 현재까지 몇몇 사진만 삭제됐을 뿐, <연합뉴스>의 가평휴게소 내 화장실 사진은 버젓이 '포토뉴스'로 유통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트에서도 여전히 확인된다. 한 술 더 뜬 것은 <중앙일보>다.

"북한 응원단이 7일 오후 강원도 인제로 이동하던 중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응원단원들이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모자 등을 단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응원단이 7일 오후 강원도 인제로 이동하던 중 가평휴게소에 도착해 휴식 시간을 가졌다. 여성 응원단원들이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있다.[연합뉴스]"

<중앙일보>는 이날 "[서소문사진관] 휴게소 들른 북한응원단, 화장실서 꽃단장"이라는 제목의 '포토 에세이' 형식의 뉴스를 통해 <연합뉴스>의 '포토뉴스'들을 한 데 모으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뉴스1>의 사진 두 장을 포함, 이 '휴게소 화장실' 사진을 보기 좋은 형태로 '편집'한 것이다. 

<연합뉴스> 사진 기자들 수준을, <중앙일보>의 편집 수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까지 굳이 따라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 사진들을 버젓이 게재하는 이 언론들의 인권의식은 어디로 간 건가.

가히 '관음증'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여성을 대상화하고, '○○녀'와 같은 기사 제목을 남발하던 다수 한국 언론의 '성희롱'과 다를 바 없는 작태가 북한 여성들에게까지 뻗친 것이라 이해해야 할까. 이날 <서울신문>이 이와 관련해서 뽑은 뉴스의 제목은 이러했다.

"화장실까지 따라 간 취재 카메라... 북한 응원단은 인권도 없나요?"

<연합뉴스>와 <중앙일보>에 다시 묻자.

"북한 여성 응원단은 인권도 없나?"
"설마 화장실 내부 사진까지 '국민의 알권리'라 우길 건가?"
"그간 여성을 대상화해왔던 관행과 그 수준을 이렇게 자백하는 것인가?"

#북한응원단 #평창올림픽 #연합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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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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