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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 '찍힌' 영화 17편 드러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지원 배제' 추가 확인... 피해 영화인들 7일 규탄 기자회견 예정

18.02.06 22:42최종업데이트18.02.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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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에서 원배제된 주요작품들 ⓒ 엣나인필름, 시네마달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국정원, 영화진흥위원회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범죄를 저지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독립영화제작지원이나 독립영화개봉지원은 비판적 영화를 막는 도구로 변질됐다. 예술영화관유통지원사업은 문제영화 상영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로 이용됐다.

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아래 진상조사위)가 '독립다큐영화 영진위 지원사업 배제 27건 추가 확인'에 관해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은 그간 '혹시나' 했던 의혹들이 '역시나'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독립다큐 진영에서는 이전부터 '정치적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 의심해왔다. 진상조사위의 조사는 이 모든 게 사실이었음을 자료를 통해 입증해 준 셈이다(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세월호','용산 참사' 영화 지원 의도적 배제).

영진위의 독립영화제작지원이나 독립영화개봉지원사업, 예술영화관유통지원사업 등 독립예술영화지원과 관련된 사업은 2014년 이후로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다. 사실상 정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영화는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예술영화관유통지원사업도 기존에는 독립예술영화만 상영하면 일정한 보조금을 주던 것을 영진위가 지정하는 영화를 상영해야 지원금을 주는 걸로 바꾸면서 파장이 일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위탁자에게 작품 선정을 맡기겠다는 것이지만 영진위가 작품 선정에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담고 있었다.

문체부-국정원-영진위의 작품 검열

박근혜 정권 시절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에서 논의된 문제영화 배제 회의 자료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이 모든 것은 정권 차입의 조직적 개입 하에 치밀하게 이뤄졌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는 독립예술영화와 관련된 주요 지원사업에서 문제영화 배제실행 계획을 수립한 후 청와대 비서실에 보고했고, 국정원은 수시로 문제영화에 대한 정보동향보고를 작성해 문체부·영진위에 배제 작품 명단을 하달했다. 영진위는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심사위원 구성 등 심사과정에 내밀히 개입하여 낮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문제영화 배제를 실행했다.

이번에 진상조사위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2014년 10월 21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기 위하여 '건전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 문건을 만들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특히, 영화기금지원에 해당하는 콘텐츠 분야에서는 ▲건전영화인 중심으로 심사인력풀 개편 ▲ 9인 위원회 최종심의를 통해 정치편향 내용 및 반정부 소재 배제, 특히 독립영화지원사업(제작지원, 다양성영화개봉지원) 적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체부는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사전논의를 진행했다. 영진위 심사과정에서 해당 영화들이 국정원의 검토를 받았는지를 확인했고, 국정원은 독립영화계의 이념성이 강한 부분에 대해서 문체부의 대처를 확인했다. 영진위 지원 사업 신청 작품에 대해 정보기관이 사실상 사전 검열했음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17편 영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17편의 작품들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이런 과정을 거쳐 문제적 영화로 지목된 작품들은 2014년~2016년까지 모두 17편이었다. 국내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과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도 있다. 모두 지원 대상에서 배제해야 할 블랙리스트 영화가 됐다. 이들 작품은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은 물론이고 개봉지원사업에서도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예술영화관유통지원사업 역시도 이런 영화들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였다. 

대표적인 작품은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으로 한국영화의 이상을 높였던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과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강석필 감독의 <소년, 달리다>,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최승호 감독의 <자백> 등이다. 이 중 <위로공단>은 작품 점수가 높게 나오면서 배제를 관철하지 못하고 지원에 선정된 유일한 작품이었다.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구럼비 바람이 분다>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재임 시절 부산영화제를 통해 후반작업 지원을 받고 경쟁에 상영됐으나 문제영화로 찍히면서 예비심사에서 탈락했다. 결국 개봉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다룬 <그림자들의 섬>은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이었지만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지원에서 배제됐다. KT 노동자를 다룬 <산다>, 성소수자와 세월호를 다룬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도 피해를 입었다.

최근 개봉된 <공동정범>은 제작에 들어가며 <두 개의 문2>로 가제를 정했는데, 국내외 다큐멘터리영화제나 피칭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는 문제적 영화에 불과했다.

<공동정범> 김일란 감독은 "이 소식을 접하니, 억울함이 밀려온다"며 "독립다큐멘터리 제작부터 개봉까지, 참 어렵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구럼비 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은 "쌍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라며, "영화검열과 영진위 지원사업을 갖고 분탕질한 책임자들은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의 제작자와 감독 등 독립영화인들은 7일 오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회의실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독립영화 불온한당신 자백 공동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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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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