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동 주민, 도시재생을 말하다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4] ‘생명의 마을’ 향한 결의에 찬 마지막 시간

등록 2018.01.07 17:21수정 2018.01.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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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배움터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2014년),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2015년),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2016년)를 거쳐, 올해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안양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이고,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를 나눠 총화와 팀별 세미나 및 마을 대상 다양한 실천 활동 등을 병행해 나갑니다. - 기자 말

동지(冬至)의 깊은 어둠에서 생명을 점화하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였다. 동지는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시점이다. 어둠이 가장 깊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 밝아진다는 말이다.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은 12월 22일로 끝을 맞았다. 그런데 참석자 누구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강렬하듯 이들의 눈도 빛났다.

이 세미나는 조금 다른 세미나였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공부하던 지난 세미나와 달리, 분과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몸을 움직여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마을허브공간' 분과는 비산동에 '아나바다*복합문화예술공간 울'을 개장하고 운영했다. (관련 기사: 여기만 오면 자꾸만 내 물건을 내놓고 싶다) '마을개선' 분과는 마을 곳곳을 탐색해 정비·개선할 계획을 세웠고( 관련 기사: 마을을 개선하려다 제 마음이 개선됐어요), '문화사업' 분과는 주민과 함께 할 문화행사들을 기획했으며, '농사준비' 분과는 농업 현장의 선생님들을 만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관련 기사: 엄마, 우리 나중에 농사 짓고 살면 어떨까?) '언론출판' 분과는 이런 과정들을 기사로 쓰고,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관련 기사: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기자가 된다면?) '재개발연구' 분과는 마을 재개발 시점과 맞물려 다른 어느 분과보다 긴박하게 연구하고 토론했다.


세미나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 세미나는, 말하자면 점화장치였다. '울'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과 행사를 펼치고, 주민과 소통·연대하며 생명의 마을을 일구는 도전은 이제 한 발짝 뗐을 뿐이다. 

이들의 걸음은 시대의 뿌리 깊은 어둠과 맞물려 있다.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주의, 관계를 단절하는 개인주의, 삶과 분리된 문화와 교육, 거주민을 외면하는 개발 패러다임. 암담한 농업현실과 식량주권의 상실.

한없이 짙어가던 이 시대의 어둠을 끝장내자. 그리고 찬연한 생명의 빛을 점화하자. 이들은 그렇게 결의에 찬 동지(冬至)의 밤을 맞았다.

도시재생, 동지(同志)와 함께

"세미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어둠이 깊은 '동지(冬至)'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동지(同志)'가 되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좋은 친구를 넘어 '뜻(志)'을 '함께(同)'하는 진정한 동지가 됩시다."

재개발연구 분과 최종 발표를 시작하며, 김민수 씨(37세)는 동지(冬至)를 맞이해 동지(同志)가 되자고 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뜻을 모으고 힘을 모으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그것이다. 마을에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재개발, 재건축은 지속 가능한 방책이 아니라며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말했다.

"선언하고 밀고, 짓는 '토건'이 아닌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로의 패러다임 전환! 이제 마을을 되살리는 것의 핵심은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마을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도록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무엇보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부터 제대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이 그 마을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주거재생,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이죠." (SBS 다큐멘터리 <동네, 돌아오다>에서)

SBS 다큐멘터리 <동네, 돌아오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을이 "아이들이 계속 살 수 있는 곳", "아이들이 커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웃과 함께 누리고,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 싶은, 추억이 깃든 소중하고 애틋한 공간. 도시재생은 그런 마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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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분과 최종발표를 맡은 김민수 씨(37세)는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동지(同志)가 되자고 요청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한편 기존 도시재생 사업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도시재생 사업들이 하나같이 '주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오히려 이 지점에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주민 역량이 강화가 되지 않는다. 외부의 전문가를 투입하기는 쉽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역량을 키워낸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고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들 스스로가 마을 주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내부자들인 동시에 전문가로서, 도시재생의 주체로서 역량을 키워가고 있었다.

김민수 씨는 우리가 역량을 키워 가기 위해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아야 한다며, 백성을 아끼는 '왕'의 마음으로 균형 있게, 억울한 이들의 처지를 살필 수 있기를 요청했다. 또한 사업 진행 시 타당성 평가에 있어, 손익을 따지는 기업적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건강하고 깨끗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을로 정비하고, 자치와 분권, 나아가 자급, 때로는 연대에 의해 함께 먹고 사는 삶을 누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그는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을 이렇게 쉬운 말로 정리했다. 이는 정부가 말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다름 아닌 '나라 운영'이라며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했다.

"지금 여섯 개 분과로 나뉘어, 하나만 하기에도 버거운 일들을 이렇게 동시에 하는 것. 이건 한 나라를 운영하는 거예요. 이렇게 가장 작은 단위의 지역 공동체를 운영해가는 것이 바로 자치와 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온전하게 세워가는 일을 우리가 시작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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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는 지역 공동체를 운영하는 이 일이 곧 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자부심으로 함께 하자고 격려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2018년 비산동 밑그림을 그리다

다른 분과들도 차례로 최종 발표를 했다. 각 분과는 지금까지의 활동 경과를 보고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명의 마을'을 세워갈지 계획들을 발표했다. 발표하며, 또 발표를 들으며 기대와 감격으로, 자부심으로 이들은 동지(同志)가 되어 있었다.

아래는 발표 내용을 토대로 비산동의 2018년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다. 계획 단계이므로 변경될 수는 있다.

▶ 입춘 즈음에 '비산동의 빛깔, 울에 담다'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울'에서 연다. 이 사진전에서는 연구소 회원과 마을 주민들이 비산동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비산동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언제까지나,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미소로 추억하며 볼 수 있기를.

▶ 본격적인 봄이 찾아오면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함께 '마을 대청소'를 하고, 곳곳의 시설과 환경을 정비한다. 청소하는 손길은 아름답다. 대상을 향한 지속적인 애정이 담겨 있기에.

▶ 좀 더 포근해지면 '벽화 그리기'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벽은 더 이상 불통과 단절의 상징이 아닌 우리의 꿈을 그려 갈 캔버스로 바뀔 것이다. 이 예술작품을 그 누가 허물며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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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개선’ 분과에서 그린 마을 지도. 별표는 2018년 새롭게 만들 계획인 마을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 뜨거운 여름에는 이열치열 비산동 음악회, '한여름 밤의 울-림(林)'이 있을 예정이다. 노래와 연주 등으로 마을주민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즉석에서 참여해도 말리지 않는다. 잠 못 이루는 한여름 밤을 활활 불태울 단 하나의 음악회는 어떤 모습일까. 직접 와 보기 전까지는 기획자도 모른다.

▶ 몸도 마음도 무르익는 계절, 가을에는 허브공간 '울'에서 북 토크쇼를 연다. 아름다운 책을 선정하고, 저자를 초청하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울'의 모태가 된 소설 <혼불>의 명문장도 낭송할 예정. 영화를 보고 영화 토크 콘서트를 열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루로는 분명 부족할 것 같다.

▶ 겨울, '희망을 향한 끌림, 그 온기에 기대어'라는 주제의 일일 맛집을 연다. '울' 개장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인 만큼 성대한 잔치가 펼쳐진다. 토크쇼, 공연, 영상, 음식 나눔 등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울'에서의 만남, 구입한 물건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공모하여 소정의 사은품과 울 상품권을 증정한다고 하니, 기다렸다가 한번 도전해 보자.

더불어·더 나은·온전한 마을을 꿈꾸는 아나바다*복합문화예술공간 '울', '새들생명울배움터'의 활동 소식과 정보는 비산동 '울' 매장이나 온라인 카페(cafe.daum.net/kyungdang),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deullifefence) 등을 통해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다.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꿈꾼다면 누구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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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발표 내용에 박수치며 환호하는 참석자들. 동지(冬至)의 밤, 이들은 그렇게 동지(同志)가 되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녹슨 철조망을 걷을 시간

내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떼 물위로 차 오르네
냇물이 흐르네 철망을 헤집고
싱그런 꿈들을 품에 안고 흘러 굽이쳐 가네

저 건너 들에 핀 풀꽃들 꽃 내음도 향긋해 
거기 서 있는 그대 숨소리 들리는 듯도 해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
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몰려와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저 위를 좀 봐 하늘을 나는 새 철조망 너머로
꽁지 끝을 따라 무지개 네 마음이 오는 길
새들은 날으게 냇물도 흐르게 
풀벌레 오가고 바람은 흐르고 맘도 흐르게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이날 함께 부른 노래는 윤도현밴드의 <철망 앞에서>였다.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리자는 대목에서 이 시대의 지속 불가능한 문화, 욕망으로 점철된 개발 패러다임을 끝내자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녹슬 대로 녹슨 철조망은 여전히 견고하다. 욕망과 절망 사이에서 사람들의 마음마저 흉흉하다. 관계를 단절시키는 힘은 여전히 강력하고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철조망은 녹슬었기에 한편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싹틔운다.

"이제 그만 걷어버렸으면."

낡은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일은 이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니고 이제야 시작된 일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무수한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희생,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 그들의 깊은 한숨과 눈물이 깊은 어둠의 끝을 앞당겼다. 시간은 그렇게 공간에 실존하는 염원들에 의해 거스르기도, 앞지르기도 하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어둠의 끝자락에 닿았다. 그만 눈물을 닦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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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업’ 분과에서는 마을 행사를 기획하는 일 외에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가사에는 ‘울’에서 이웃을 만나 새로워질 것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덧붙이는 글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 새들생명울배움터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https://www.facebook.com/saedeullifefence)
#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비산동 #도시재생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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