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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방송 스태프들... <화유기> 추락사고, 남 일 아니다

[현장] tvN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

18.01.04 18:54최종업데이트18.01.0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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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유기' 추락 사고, 현장 동료 증언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드라마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고 당시 현장 동료였던 노동자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이정민


전국언론노조(아래 언론노조)는 지난해 12월 23일 발생한 tvN <화유기> 스태프 추락 사고의 원인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며, 정부에 전체 드라마 제작 현장을 대상으로 긴급 실태조사를 실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4일 언론노조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tvN <화유기> 스태프 추락 사고와 관련,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는 사고 이후 진행된 현장 조사와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 제작 노동자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종찬 언론노조 MBC아트 지부장은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은 촉박한 제작 기간과 업무 계약에도 없는 부당한 지시,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발주한 쪼개기 계약"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 "샹들리에 설치 지시, 전기공사업법 위반 행위"

사고는 23일 새벽 1시 50분경, <화유기> 제작사인 JS픽쳐스 소속 미술감독이 소도구 용역을 맡은 MBC아트 소속의 김아무개 차장에게 샹들리에 설치 작업을 지시하며 발생했다. MBC아트 직원 두 명이 사다리를 이용해 샹들리에를 매달았고, 전기 연결을 위해 세트 천장부에 올라가 작업하는 동안 세트가 무너지면서 추락한 것.

언론노조는 이 지시가 현행 전기공사업법 제3조 1항 '전기공사는 공사업자가 아니면 도급 받거나 시공할 수 없다'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기 연결을 위해선 별도의 전기공사업자나 전기기술자에게 관련 업무를 위탁해야 하지만, '쪼개기 계약'을 하면서 해당 업무 담당자를 정식 배정하지 않고 소도구 담당 업체와 세트 담당 업체에 적당히 나눠 전기 연결 업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제작사가 이 같은 '쪼개기 계약'으로 약 3~4천 만원 가량의 제작비를 절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 '화유기'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드라마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대착 수립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 이정민


문제는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벌어져, 현장 노동자들이 '위법'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은 "현장 조사에서 미술감독 등이 스스로 위법 행위를 고백하면서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일이 그저 '조심했어야지' 하고 넘어가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도 있다. 방송 제작 현장의 특수성이 강조되며 노동법 등의 예외지대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김환균 위원장은 "근로감독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자, 스태프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져 자기 시작하더라"라는 목격담을 전하며, "촬영장은 스태프와 배우들의 일터다.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스태프 추락 사고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된 스프러스 각재의 경우도 "드라마 세트장의 경우 실내에 짓는 건축물이라 건축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관련 소방법이나 안전법 기준도 없다"고 지적하며 "세트장에도 엄격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BC아트에서 세트 제작을 담당했던 언론노조 MBC아트지부 박종우 사무국장은 "최근 비용 절감을 위해 세트 시공에도 스프러스 각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기는 했지만 <화유기> 세트처럼 전체적으로 스프러스 각재만을 사용해 세트를 제작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 "이렇게 해서 세트를 시공하면 약 40% 정도 가격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PD 동생 "CJ E&M 구조 개선 약속 믿었는데..."  

▲ '화유기'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드라마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혼술남녀' 팀의 고 이한빛 PD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 이한빛 PD의 동생이자,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사단법인 '한빛'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한솔씨도 참석했다. 이씨는 "1년 전 CJ E&M과 싸움을 시작할 때, 유가족이 일관되게 요구했던 것은 관련자 처벌이 아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방송 현장을 개선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 기조에 따라 CJ E&M이 사과했고, 구조개선 약속을 신뢰했지만, 1년 만에 그 신뢰가 깨졌다"며 실망을 드러냈다. 이어 "CJ E&M이 구조개선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문화나 관례가 하루아침에 모두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닌 만큼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 차츰차츰 달라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유로운 제작기간,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한 충분한 제작비 투여 등은 방송사가 결정하는 순간 바뀔 수 있는 부분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구조를 바꾸겠다는 작은 결단들이 모이면 문화도 바뀔 것이다. 책임 있는 분들이 (합의 당시) 약속했던 말들에 책임을 지기를 간절히 요구한다. 추모법인 '한빛'도 방송노동 환경 개선을 적극 지원해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철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은 "이번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예정된 사고였다"고 지적하며, "오로지 방송 스케줄에만 맞춘 무리한 제작 구조와, 노동권 보호에 쓰이는 비용과 시간은 낭비라 여기는 환경, 짧은 시간 동안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모든 걸 정당화 시킨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 노동자들의 안전권과 생명권이 더 이상 유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4일 언론노조는 '안전·노동 인권이 보장되는 드라마 제작현장을 위한 언론노조의 요구'를 발표하고, <화유기> 제작사인 JS픽쳐스, 세트 시공업체인 라온, 피해 스태프가 소속된 MBC아트 등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 고발장 및 진정서를 제출했다.

앞으로 '안전, 노동 인권이 보장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CJ E&M을 만나 구체적인 개선 대책과 이행 계획 수립을 요구하고, 범정부차원의 드라마 제작현장 긴급 전수 조사 실시를 요구할 계획이다. 또, 사단법인 '한빛'과 함께 한빛방송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해 방송스태프 노동인권 침해 상담 및 조직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화유기'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언론노조가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드라마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 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 동료 증언 및 대책 수립 요구안 발표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화유기 스태프 추락 사고 언론노조 JS픽쳐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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