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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엘프·오크가 함께 사는 LA? 참신한 버디 무비의 등장

[리뷰] '인간과 오크' 두 경찰 콤비의 활약 돋보이는 영화 <브라이트>

17.12.28 12:09최종업데이트17.12.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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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인간, 오크, 엘프가 수백 년 동안 공존하는 세계. LA 경찰 데릴 워드(월 스미스 분)는 동족법의 시행으로 다양성 경관으로 임명된 오크 닉 자코비(조엘 에저튼 분)와 파트너가 된다. 티격태격하던 둘은 야간 순찰 도중에 신비한 유물 마법봉을 가진 엘프 티카(루시 프라이 분)를 만난다. 엄청난 힘을 지닌 마법봉을 차지하기 위해 정체불명의 조직 인페르니에서 보낸 엘프 레일라(누미 라파스 분), 인간들로 구성된 갱단, 마법봉을 조사하는 정부의 마법수사팀이 뛰어든다. 수많은 자의 표적이 된 워드와 자코비는 불신을 접고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마법봉과 티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

<브라이트>의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선 굵은 영화로 유명하다. 그가 각본을 쓴 <U-571> <분노의 질주> <트레이닝 데이> <다크 블루> < S.W.A.T. 특수기동대 >를 비롯해 메가폰을 잡았던 <하쉬 타임> <스트리트 킹> <엔드 오브 왓치> <사보타지> <퓨리>…. 이 작품들에는 남성들이 분출하는 아드레날린, 화약 냄새로 진동하는 전투, 청렴하거나 부패한 경찰, 온갖 종류의 범죄가 가득했다. 만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비드 에이어가 이번엔 판타지 세계로 뛰어들었다. <브라이트>는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의 설정을 끌어들였으나 영화 속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마치 또 다른 지구라는 평행세계를 마주한 기분이다.

<브라이트>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시나리오 작가 맥스 랜디스다. <크로니클> <아메리칸 울트라> <미스터 라잇>의 각본을 쓴 맥스 랜디스는 판타지와 신화, 비디오게임 등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LA 경찰의 거친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조합하여 <브라이트>를 만들었다.

차별과 범죄로 얼룩진 도시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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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윌 스미스는 "오크와 요정이 LA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설정에 하드코어 버디 드라마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오크나 엘프가 오늘날의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들은 어떤 문화 속에서 살까?"에 호기심을 느끼며 연출을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브라이트>에서 모두가 마법봉을 노리는 상황은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를 둘러싼 형국과 유사하다. 이런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관건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 수 있는가다. 엘프 특구, 다양성 경관, 동족법, 인페르니, 암흑의 군주, 마법봉을 현실에 녹이는 문제가 <브라이트>의 숙제였다.

프로듀서 에릭 뉴먼은 "공존한 적도 없고 공통점도 거의 없는 두 개의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일정 수준의 현실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데이비드 에이어는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는 세계를 배경으로 특유의 유머와 도시 테러, 하드보일드 드라마를 엮어, 서로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장르들을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 판타지를 훌륭히 소화했다.

<브라이트>는 판타지 화법으로 2017년 LA의 현실을 환기한다. 영화가 도입부에 보여주는 LA 거리는 예사롭지 않다. 벽에 쓰인 "모든 종족은 평등하게 창조됐다", "엘프는 더 평등해", "당신이 우리를 위해 싸운다면 오크도 당신을 위해 싸운다", "놈들이 인간으로 우릴 짓누른다", "오크는 가라", "경찰을 저주한다" 등의 문구는 지금을 그대로 반영한 풍경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앤드류 멘지스는 "판타지를 현실 세계와 뒤섞은 거"라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LA를 확대하고 재창조하여 엘프와 오크를 그 안에 집어넣고 섞었다"고 새로운 LA를 부연한다.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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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에이어가 "흥미롭게 부풀린 현실"이라고 표현한 <브라이트>는 인종차별과 계급주의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뒤섞어 들려준다. 장르를 변용한 <브라이트>는 SF와 파운드 푸티지를 결합하여 사회성 짙은 목소리를 냈던 <디스트릭트 9>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현재 할리우드가 영화적 형식과 현실을 은유하는 내용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걸 증명하는 대목이다.

<브라이트>는 흑백을 뒤바꾼 점에서 특별하다. 극 중에 나오는 인간 대부분은 오크를 경멸한다. 오크 형사인 자코비를 백인인 조엘 에저튼이 맡았고, 흑인 윌 스미스는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인 워드를 연기했다. <밤의 열기 속으로>와 <48시간> 이후 굳어진 흑백 구도가 <브라이트>에서 과감히, 그리고 독특하게 역전된 셈이다.

<브라이트>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줄곧 보여주었던 영화 세계를 만끽하는 기회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출하며 폭이 한결 넓어졌음을 알 수 있는 자리다. 우리가 아는 세상과 신화적 세계가 혼합되어 펼쳐지는 <브라이트>는 어떤 모습을 했고 어디서 왔는가를 상관하지 않고, "모든 인간은 꿈을 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조명하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묻는다. 명백히 트럼프 시대를 겨냥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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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선 나오기 힘든 프로젝트다. 아마도 넷플릭스였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지 싶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12월 20일 국내 언론과 가진 라이브 콘퍼런스에서 넷플릭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점으로 꼽으면서 "과감하게 도전을 기도하는 영화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넷플릭스는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는 영화 산업에서 창작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최선책이라 단언하긴 힘들다. 그러나 눈여겨볼 차선책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넷플릭스가 어떤 콘텐츠들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2017년 12월 22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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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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