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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강박증 환자, 동어반복증 환자와 사랑에 빠지다

[인터뷰] 연극 <톡톡>에서 대칭강박증 환자를 연기한 배우 오정택 "누구나 한번쯤..."

17.12.26 17:36최종업데이트17.12.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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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톡톡>에서 오정택은 대칭집착증을 앓고 있는 밥 역을 맡았다. ⓒ 연극열전


연극 <글로리아> 마일즈, <유도소년> 코치, <킬미나우> 라우디,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빠샤 그리고 <톡톡>의 밥까지. 감정의 극과 극을 넘나드는 인물들이 한 배우 안에서 탄생했다. 어떠한 색이라 규정하기에도 결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오정택의 필모그래피 속 인물들의 색은 극단적이다. 단순히 밝고 어둡다는 작품의 분위기가 아니다. 유쾌함과 눈물, 분노와 여유, 느슨함과 조임, 활력과 무너짐 등 감정의 밑바닥부터 가벼운 웃음까지 모두 전한다. 모든 캐릭터를 오정택 화(化) 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연극 <톡톡>의 '밥'으로 무대에 오른 오정택은 릴리에게 푹 빠진 모습으로 사랑꾼 면모를 톡톡히 보이고 있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으로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그의 모습은 간데없이 말이다. 오정택을 지난 7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톡톡>은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다. 감정적으로 소비가 심한 작품도 많다. 특히 <킬미나우>는 관객들도 그랬겠지만, 연기를 하는 나도 쉽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면 마음이 허했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을 할 때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했다. 다행히도 <킬미나우> 할 때 <유도소년>을 병행해서 힘을 낼 수 있었고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무대에 오르면서는 <톡톡> 연습을 함께 해서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관객들이 보고 있기도 힘든 작품에 오르면서 오정택은 작품을 통해 치유 받고 또 힘을 얻었다. 그렇기에 <톡톡>은 더 즐겁다고. 릴리에 대한 물음에는 웃음이 먼저 터졌다. 정말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강박증

극중 밥(오른쪽)은 '동어 반복증' 환자 릴리(왼쪽)에게 푹 빠져있다. ⓒ 연극열전


"우선 예쁘지 않나(웃음). 릴리는 밥이 좋아할, 밥의 강박증까지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칭강박증인 밥에게 두 번씩 말하는 릴리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게다가 순박하고 말도 잘 들어주고 함께 기뻐해 준다. (릴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릴리는 밥에게 정말 최고의 상대 같다."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릴리에게 푹 빠진 밥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또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오정택. 실제로도 강박증 있는 여성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대답은 단숨에 돌아왔다.

"그럼! 당연히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강박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극 속 인물들 역시 분명 살아오면서 사연이 많을 것이다."

<톡톡>에는 뚜렛증후군 프레드, 계산벽 뱅상, 질병공포증후군 블랑슈, 확인강박증 마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스텐 박사를 만나러 온 이들은 공항에 발이 묶인 박사를 기다리며 함께 게임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증후군을 이해하고, 또 가까워진다. 극 중 오정택은 대칭집착증으로 대칭에 집착하는가 하면 선을 밟지도 못한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밥이라는 인물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웃음). 마음에 와닿더라. 정리하고 싶은 욕구는 내게도 있다. 또 누구나 한 번쯤 선 안에 네모난 칸만 밟은 적이 있지 않나. 그런 마음을 조금씩 키우면 될 거 같았다(웃음). 무대에 오르고 밥이 돼 호흡을 맞추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되더라. 해답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연기

ⓒ 연극열전


연극 <톡톡>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각 인물들이 지닌 강박증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한 명씩 들여다 면 이들의 강박증은 사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갖고 있는 면모다. 외출 전에 점검을 꼼꼼히 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선을 밟지 않고 걷는 것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하다. 다만 세상의 편견이 이들을 울타리 안에 몰아넣은 셈이다. 오정택은 <톡톡>의 주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연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제는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웃음). 내가 작품을 하며 느낀 것은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 힘들어도 함께 극복하자는 것."

덕분에 <톡톡> 자체가 오정택에게는 기쁨이란다.

"공연을 마치면 시원하고 개운하다. 두 번 세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 그래서 정말 잘 쓰인 극이라고 생각한다. 초연에 워낙 잘 닦아 놓아서 난 숟가락만 얹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면 관객들도 느끼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오정택은 단연 행복해 보인다. 무대가 협소한 만큼 배우들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또 수많은 감정의 끄트머리를 건드려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무대 위 오정택은 목마른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쉴 새 없이 팔딱거린다. 

"연기가 정말 재밌다! 사실 예전에는 박수 받는 게 좋았다. 근데 무대에 오르면서, 누군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같은 공간에서 순간을 공유하는 것도 참 좋다."

연기에 관한, 또 연극에 대해 물어보자, 오정택은 자신에게 연기를 가르쳐준 스승님을 언급했다.

"연극 <노란 달(YELLOW MOON)>의 연출을 맡은 토니 그래함을 좋아한다. 연기하는 것에 대해 많은 점을 알려줬다.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뛸 수 있게 도와줬다는 말이다. '순간순간 진실 되게 하라'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좋은 연기'라고 말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연기를 보며 함께 쾌감을 느끼는 것이, 내겐 재미 이상의 희열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더없이 즐겁고, 희열이 됐다는 배우. 그만큼 연기에 대한 생각도 확고했다.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는 게 아닌, 상대와 맞추고 깨달으면서 목표지점을 향하는 것. 이는 곧 진심이 되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힘이 됐다. 

ⓒ 연극열전


"사실 연기는 페이크(Fake)라고 생각한다. 진짜인 줄 모르게 하는 연기는 완벽한 페이크 아닐까. 연기하는, 그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원래 좀 단순한 편이고 쉽게 생각하는데, 스스로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스스로 깨닫는 편이다. 계획대로 되긴 정말 어려운 거 같다. 절대 안 된다. 상대배우가 있고, 목표 지점까지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2017년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알차게 보낸 오정택. 다가오는 2018년의 바람은 곧 배우, 자신의 포부였다.

"올해는 정말 재밌게 보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올해 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 것이다. 시간을 나에게 투자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지방 공연도 좋다. 또 내년에는 무게감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 좋은 연기로, 작품을 본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깐이나마 자신을 되돌아보고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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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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