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덕 아니었다면, 윤동주도 없었다

일제치하에서 윤동주의 친필 원고 보관했던 광양 망덕 정병욱 가옥

등록 2017.12.19 18:05수정 2017.12.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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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이 보관했던 윤동주의 자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 ⓒ 이돈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의 시 '서시(序詩)'다. 학창시절 달달 외웠던 서시를 되뇌며 광양 망덕포구로 간다. 윤동주를 시인으로 세상에 알린 곳이 망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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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욱 가옥 전경. 윤동주의 자필 원고가 보관됐던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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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육필 원고. 정병욱 가옥의 마룻장 위에 전시돼 있다. ⓒ 이돈삼


횟집이 줄지어 선 포구에서 낡은 함석지붕의 오래 된 집 한 채가 있다. 윤동주의 친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관했던 집이다. 공식 명칭은 '윤동주 유고(遺稿) 보존 정병욱 가옥'이다.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돼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떠나기 전, 열아홉 편의 시를 책으로 엮으려 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제목까지 붙였다. 서문 형식으로 적어놓은 글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 '서시'다.

하지만 일제 치하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우리말로 된 책을 내기가 어려웠다. 윤동주는 이 원고를 정병욱(1922∼1982)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떠났다. 표지에 '윤동주 드림'이라는 의미로 '尹東柱 呈'이라 썼다. 일본으로 건너간 윤동주는 항일운동을 하다 붙잡혀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갔다. 27살 2개월의 짧은 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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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병욱. 연희전문 시절의 모습이다. 정병욱 가옥에 전시돼 있다. ⓒ 이돈삼


윤동주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은 정병욱은 자신의 어머니한테 맡겼다. 원고를 받은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마룻장을 뜯어내고 그 안에 고이 숨겨뒀다. 은밀하게 보관된 원고는 1948년 정병욱(전 서울대 교수)에 의해 한 권의 시집으로 빛을 봤다.

윤동주가 생전에 써뒀던 다른 글과 함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된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정병욱과 그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윤동주의 시는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존재는 물론 '서시'도, '자화상'도, '별 헤는 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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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 전경. 옛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구례, 광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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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에 있는 윤동주 시비 '별 헤는 밤'. 유고 시를 보관했던 인연으로 포구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 이돈삼


포구를 지키고 선 허름한 옛 주택이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건물도 허름해서 요즘 보기 드문 1920년대 점포형 주택이다. 이 집에서 멀지 않는 망덕포구 한쪽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비도 세워져 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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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에 세워진 망뎅이 조형물. 섬진강변 망덕의 상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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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맛볼 수 있는 망덕포구의 명물 강굴. 굴 하나가 손바닥보다도 훨씬 크다. ⓒ 이돈삼


윤동주의 친필 원고를 보관했던 망덕(望德)은 옛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구례, 광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광양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망뎅이'라 불렸다. 왜적의 침입을 망봤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와 몸을 섞는 지점이기도 하다. 봄에는 강굴로, 가을이면 전어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고장이다. 조선시대엔 군사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 배를 만들고, 군량미를 쌓아뒀던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의 수하에 있던 광양현감 어영담은 여기서 만든 판옥선으로 해전에 참가, 큰 공을 세웠다. 일제 강점기엔 황병학이 이끈 의병이 어업권을 빼앗은 일본인을 처단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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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 수군 주둔지 표지석. 섬진강변 망덕포구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포구에 떠있는 섬 배알도의 솔숲도 멋스럽다.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배알(拜謁)'이다. 배알도 너머로는 포구사람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자리하고 있다. 제철소가 건립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고향을 떠났다.

김을 처음 양식했던 시식지도 광양제철소에 묻혔다. 김 양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궁기마을 김여익(1606∼1660)이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엉긴 김을 보고 산죽과 밤나무 가지로 지주를 세운 것이 시초다. '김'이란 이름도 그의 성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가까운 데에 김시식지역사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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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김시식지 역사관 풍경. 지난 2일 역사관을 찾은 여행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이돈삼


#망덕포구 #윤동주 #서시 #김시식지역사관 #정병욱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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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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