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 사람들이 다 기자가 된다면?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2] 경기도 안양서 언론 실험하는 시민기자들

등록 2017.12.15 16:44수정 2017.12.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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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2014년),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2015년),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2016년)를 거쳐, 올해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안양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이고,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를 나눠 총화와 팀별 세미나 및 마을 대상 다양한 실천 활동 등을 병행해 나갑니다. - 기자 말

저널리즘은 하나도 모른다. 언론사 기자가 되려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요즘 매주 한 편씩 기사를 생산한다. 내가 직접 쓸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이 쓴 걸 같이 고쳐서 올리기도 한다. 얼마전 기사 만드는 팀에 들어갔고, 거기서 이런 활동을 한다. 팀원들은 기자가 아니면서, 기자 노릇을 한다. 열 명 중 한 명만이 현직 기자다. 그렇게 한 지 오늘로 딱 8주가 됐다.

동네 사람들이랑 지난 10월부터 세미나 하나를 같이 하고 있다. '마을'을 주제로 공부도 하고 팀별 활동도 해 보자는 취지다. 6개 분과를 나눴는데, 언론/출판 분과도 있다. 선생님은 없다. 강의나 학습 위주 세미나가 아니다. 그럼 우리끼리 모여서 '언론'을? 우리가 쓰는 게 과연 기사가 될까? 뭘 쓰지? 어떻게? 질문이 많아질수록 이상하게 구미가 당겼다.

10월 13일 첫 만남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언론팀에 들어오게 됐는지 서로 포부 또는 바람을 나눴다. 전체 팀원 중 반 이상이 '글쓰기'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 아니, 그런데 왜? 다같이 한 번 웃었다. 우리, 왜 모였지? 이거 죽도 밥도 안 되는 거 아냐? 첫날은 그렇게 공적 글쓰기에 대한 서로의 두려움을 확인했고, 공감했고,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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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부터 언론 실험에 나선 10명의 시민기자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내가 왜 기사를 써야 해?

숙제가 주어졌다. 첫날 모임에 대한 기사 작성. 근데 담당이 나다. 나 이거 참. 우리 팀 얘기뿐 아니라, 다른 분과 것도 다뤄야 한다. 세미나 첫 모임이었으니, 전체 분위기도 기사에 담아야 한다. 다 쓰면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로 했다. 두 가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것이 과연 기사 '깜'이 되나, 그리고 나는 기자 '깜'이 되나? 모르겠다. 일단 써 보자.

그래, 육하원칙! 언제-10월 13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어디서-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모처, 누가-70명 가까운 동네 이웃들이, 무엇을-'마을'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어떻게-6개 분과로 나눠서 자발적인 세미나와 활동을 기획/실행하면서, 왜-우리 사는 마을을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살피고, 채우고, 바꿔 보자. 첫 기사니까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다.

낑낑 대면서 쓰고 지우며 초고를 완성했다. 기자 출신인 팀 동료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전체 세미나를 조율하는 팀에서도 내 기사를 검토했다. 그로부터 두 번, 세 번을 다듬어서 <오마이뉴스>에 최종본을 올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이거 욕만 먹는 거 아니야? 뭐 이런 걸 썼냐고? 다음 날 기사는 올라갔다. 기사 등급은 '잉걸'이었다. 비록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게 어딘가? 거절 안 당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그것이 나의, 그리고 우리의 첫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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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모임 때는 그 주에 나온 기사의 초본과 수정본과 최종본을 차례대로 검토한다. 기사의 변천사를 훑어보면, 남 일 같지가 않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하나씩 천천히 해 보자

첫 기사를 올리고 난 뒤, 팀 회의 때 그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아직 취재를 할 수는 없으니, 우선 이렇게 세미나 내용을 충실하게 담는 것부터 훈련하자."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되도록 엄밀하고 정교하게 작성하는 것. 근데 그게 어디 그렇게 쉽나? 안 쓰던 근육이라, 진통이 예상된다. 다음 기사는 누가 쓸 건지 묻는 말에 다들 대답을 망설인다. 그러면서 나보고 수고했다며 칭찬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툴게 한 발씩을 조심스럽게 디뎌야 했다.

애면글면하며 두 번째, 세 번째 기사를 돌아가면서 작성했다. 후기라고 봐도 될 텐데, 우리는 '기사'라 여겼다. 누군가 초고를 쓰면, 여럿이 달려들어서 이것저것 피드백을 단다. 빨간색 줄이 수도 없다. 저마다 다른 색깔로 종이 여백이 안 남게 빼곡히 피드백을 적는다. 기사 쓴 사람이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암담해진다. 이걸 다 어떻게 반영하라는 거야. 한 번 쓴 걸, 결국 휴지통에 그대로 집어 넣는다. 전혀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한다. 한 편 기사를 위해 세 개의 서로 다른 기사를 썼다 지웠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모여서 팀 회의를 한다. 지난 주 기사를 초본/수정본/완성본으로 나눠서 같이 돌려서 본다. 하아. 너무 고생했다.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나라면 이 고생을 감당할 수나 있을까. 머릿속이 하얗다. 지난주 기사 담당자가 일주일간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그래도 그는 얼굴빛이 좋다. 우선 해방감에 겨운 듯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단 기사가 누구든 들어와서 볼 수 있는 <오마이뉴스>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 봐도봐도 흐뭇하니까,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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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초고에 여러 사람이 달라 붙어서 각기 다른 색깔 펜으로 코멘트를 단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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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쓴 기사는 세미나 전체를 조율하는 기획팀에서 최종 검토한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시민기자들의 서툴지만 단단한 연대

처음 몇 번은, 세미나 후기 성격의 기사만 썼는데, 이후에는 취재라면 취재일 수 있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세미나 분과 중에 '마을 허브 공간' 마련을 맡은 팀이 있는데, 그 팀에서 벌이는 일들의 과정을 따라가며 동행했다. 지난 11월 11일은 한 달여를 준비한 '허브 공간 개장식'이 열린 날이었다. 그 공간의 이름은 '울'이다. '우리', '울음', '울타리'의 뜻이 담겨 있다. 아나바다 물품을 상시 교환하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언론팀은 마을에 이런 공간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기자의 눈으로 조망하고, 기자의 손으로 기록하고, 기자의 걸음으로 소식을 알렸다.

개장식이 열리던 날, 언론팀은 특별 취재팀을 꾸렸다. 각자 역할을 나누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우선 기사를 쓸 기자는 뒤에 책상을 하나 꿰 차고 앉았다. 사진 촬영을 맡은 기자는 두 명을 세웠다. 영상 취재 기자도 두 명. 클로즈업과 와이드를 병행하며 나름대로 여러 각도의 그림을 포착했다. 페이스북 생중계를 맡은 기자도 세웠다. 그 기자는 6개월된 아이를 업고 달래면서 생중계를 담당했다. 영상 리포터와 행사 사회자도 언론팀에서 맡았다. 말들이 오가고 모이고 퍼지는 데마다 우리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니, 이거 우리 그새 좀 는 거 아냐? 눈초리가 매섭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눈매도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꽤 진지하다. 벌써부터 어떻게 이것을 기록하고 실어 나를 것인지를 구상하느라 골몰하는 표정들이다. 이제는 나름대로 '우리 동네 PRESS' 이름표가 어울리는 표정이고 몸짓이었다. 우린 기자였다.

개장식이 끝나니 한숨 돌리는 게 아니라 더 바빠졌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 현장이 있었으면 후속 작업이 뒤따른다. 기사 담당자는 밤을 꼬박 샜다. 동이 터 오는 걸 보면서 쪽잠 한 시간을 자고 출근을 했다. 1000장 넘게 찍은 사진들은 한 데 모아서 추리고 선별했다. 영상 편집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담당자 둘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처음 다뤄 본다는데, 예고편에 본편까지 야심차게 두 편의 영상을 제작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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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다*복합문화예술공간 울' 개장식 때 기자들의 활동이 대단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우리는 무엇을 쓸 수 있는가?

12주 과정의 세미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주 팀 모임 때, 세미나 끝나면 우리는 무얼 하지? 하는 질문이 나왔다. 아깝다. 이제 슬슬 달아오르려고 하는데. 세미나 끝나면 한때의 기자 생활은 아련한 추억으로 잠기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12주 동안의 과정이 그냥 묻히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이 워밍업이라면, 이제 앞으로는 실전이 될 수도 있다. 내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머지 않은 미래에, 진짜 우리가 주도하는 언론이 탄생한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쓸 수 있고, 우리만 쓸 수 있고, 우리라서 쓸 수 있는 그런 기사 말이다. 

내년 1월에 첫째 아이가 태어나는 예비 아빠는, 초보 아빠의 육아 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정치면이나 경제면에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사회면이나 인물면에는 들어갈 수 있겠지. 순간 머릿속으로 기사 배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상한다. 종이신문이라면 어느 페이지에 넣을까, 사이트를 만든다면 눈에 잘 띄는 곳에 기사를 배치해도 좋겠다. SNS에도 당연히 공유할 것이다.

재개발 이슈를 파고들고 싶다는 10대 학생도 있었다. 그것은 어디 다른 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마을이 재개발 대상 지역이다. 아마도 이 친구가 쓰는 기사는 글의 농도나 질감이 남다를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마을 이야기를 다루겠지. 그러다 재개발 자체를 건드릴 때도 올 테다. 그럼 이건 단순히 마을 신문을 넘어서는 뭔가가 될 수도 있다. 내년에 스무살이 되는 이 친구는, 어디 언론사에 들어가서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벌써 기자가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시사 만평, 나만의 요리 이야기 연재, 마을 사진 코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또, 동네에 일주일에 3일만 문을 열고 여름에는 한 달 동안 휴가를 가는 만둣집이 있는데, 그집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는 인터뷰 계획도 있었다. 하기야 별난 이웃, 별난 장소가 얼마나 많겠나. 별나게 들여다 보면 별나지 않은 것들이 없다.  

동네 기사는 그 동네 사람들이 제일 잘 쓴다

그런 상상을 해 봤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기자가 된다면?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글로 적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맞춤법은 기본이요 기본적인 기사 구성 원칙도 알고 있어야 하고, 소위 '야마'라는 것도 흡입력 있게 뽑을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10주 정도 맛을 보니, 아예 못 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글로 쓰는 기사 말고도 각자 소질과 재능에 따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사의 형태는 다양하다. 또 여럿이 모이면 혼자 하기 어려운 것들도 도우면서 헤쳐 나갈 수 있다. 얼마간의 훈련과 서로 돕는 관계만 있다면 그래서,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어디든 언론이 태어날 수 있다.

사실 이런 상상은, 우리 동네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매일 잠자고 밥 먹고 쉬면서 어울리고 뒹구는 우리 동네. 그래서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귀기울이고 정성껏 마음 담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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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기사는 우리가 쓴다. 혼자 하면 힘들고, 여럿이 함께 하면 가능하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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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쓰느라 머리 아플 때도 있지만, 모이면 즐거운 기자 친구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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