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나중에 농사 짓고 살면 어떨까?"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11] 비산3동 마을에서 생명 살리는 농사 짓기

등록 2017.12.13 09:53수정 2017.12.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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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2014년),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2015년),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2016년)를 거쳐, 올해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17 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안양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이고,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를 나눠 총화와 팀별 세미나 및 마을 대상 다양한 실천 활동 등을 병행해 나갑니다. - 기자 말

만 3년 동안 경기도 안양시 비산3동에 살면서 마을과 이웃에 대한 애정이 크진 않았다. 그런데 동네에 익숙해지고 생각나는 이웃의 얼굴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나눔도 받았다. 얼마 전, 수능을 끝낸 아들의 책과 책장을 정리하신다며 같은 건물 1층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첫째 아이가 읽을 만할 거라며 책들을 다 주셨다. 그때 책 읽는 걸 즐겨하는 아이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이웃을 알아가기 시작할 무렵, 첫째 아이가 다니는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서 아나바다 '마을감사장터'를 열었고, 아나바다·복합문화예술공간 '울' 매장을 열었다.

3주 전 토요일, 우리 집 부엌에서는 첫째와 둘째가 열심히 쿠키 반죽을 만들었다. '울'에 가져다 두고 오가는 이웃들과 함께 맛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날은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 추운 날씨에 비까지 내리자 아이들에게 정말 '울'에 갈 것인지 거듭 물었다. 사람도 많이 없을 것 같고, 그러면 쿠키를 구운 게 아까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 '울'에 가고 싶어. 이번 주에는 매일 어린이집 가느라 못 갔잖아. 마을 이모·삼촌들한테 쿠키를 주고 싶은데..."

아이들의 나누고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그 마음이 쿠키에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폭우를 뚫고 아이들과 남편을 '울'에 보냈다. 아! 통했나 보다. 카톡 대화창에 이모·삼촌들의 마음이 표현된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다.

"어머머~~~~ 이런 흥분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ㅎㅎ", "슈퍼 그레잇!", "니가 최고다이~~ 짱짱짱", "멋쪄부러~~~"


마침 울에 방문한 손님들과도 아이들의 손맛이 깃든 쿠키를 함께했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처럼 사람들과 만나고 나누는 것에 더욱더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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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쿠키: 크렌베리 호두 아몬드 쿠키 드시러 오세요! ^.^ ⓒ 김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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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에 놔두고 오고가는 이웃들과 함께 맛 볼 행복한 쿠키를 만들었다. ⓒ 김일경


사실은 모든 만남의 시작이 농사였나

첫째 아이가 다니고 있는 배움터경당에는 농사 수업이 있다. 어느 날인가 농사 수업이 있었던 날인 것 같다. 아이가 "엄마, 우리 나중에 농사짓고 살면 어떨까?" 한다. 사실 그 전까지는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글쎄..."라고 대답해 놓고 생각했다.

아이는 농사 수업에서 가지, 토마토, 해바라기, 목화 등등을 키웠다. 그러면서 농사짓고 살고픈 마음을 품기 시작했었나 보다. 자연과 벗하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커졌고, 생명을 심고 키우는 농사에 자연스레 마음을 열었으리라. 경당에서는 이미 생명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아이는 그 배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이다. 나를 돌아봤다. 내 안에 생명을 살리고픈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되물었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지만, 생명을 키우는 마음을 아이에게서 다시 배운다. 그리고 나에게처럼 배움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전해지기를 소망했다.

생명을 살리는 삶의 소망은 이미 서서히 확장되고 있었다. 연구소 회원들은 비봉산 자락에서 수년 전부터 텃밭을 일구고 있다. 최근 '울' 개장식에서 직접 재배한 토종 콩을 튀겨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 중간발표 시간인 12월 1일, '마을 농부'이기도 하면서 세미나에서 농사준비 분과에 참여 중인 박현지(33)씨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을 함께 읽으며 생명을 살리는 농사에 대한 소망을 확신했다고 했다.

"현대 사람들은 물질세계의 영향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슈타이너 선생님은 실제로 우리 삶은 정신세계나 우주 너머에 있는 것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씀하세요. 농사준비 분과가 그렇게 정신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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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우리는 정신세계나 우주 너머에 있는 것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실제로 그러했다. 농사를 배우는 첫째 아이로 인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텃밭 농사를 짓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땅과 사람을 살리는 삶에 대해 전보다 마음이 열렸다. 정신세계, 혹은 우주 너머의 것들이 나의 삶에 영향을 준 탓일까.

"농사도 농사지만, 김준권 선생님은 정말 땅을 사랑하시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크세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폴란드의 생명역동농법 농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검출된 방사능의 1/10 정도만이 검출되었다고 해요. 그걸 아시고 난 후로, 김준권 선생님은 바로 땅에 실천하셨어요."

40년 동안 유기농업을 해 오신 평화나무 농장의 원혜덕, 김준권 선생님 부부의 이야기다. 땅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살리고픈 마음으로 이어진다. 결국, 농사는 땅과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닿는다. 내가 지금껏 생명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거나, 생명의 소중함을 크게 느껴 본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속상했다. 그렇지만 경당의 농사 수업을 통해 아이가 땅과 사람을 살리는 것을 배우고, 지금이라도 그  배움이 나에게로 흘렀다는 게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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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덕, 김준권 선생님의 평화나무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김준권 선생님은 일본의 농민단체 '애농회'를 창설한 고다니 준이치 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유기농업을 할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 이날 김성택(30)씨는 <농부의 길>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농사를 공부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다니 준이치 선생님은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이상적 농촌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농민이 되기 전에 믿음의 사명자인 사람이 되자는 것과 신앙으로 사랑과 협동이 넘치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 이 두 가지를 비결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명을 이룰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르는 데 힘쓰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이해타산을 초월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관계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마을에서 이런 이상적인 관계를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좋을 텐데요. 세미나를 통해서 저에게 이 관계가 이렇게나 많이 허락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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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 관계가 이렇게나 많이 허락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지금의 이 만남들이 감사하다는 김씨의 말에, 나에게도 이런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만남들이 생겨나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러고 나니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이어 줄 '농사짓기'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다. 이 느낌이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득 내가 생명과의 만남을 위해 노력했던 적이 없었나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나니 첫째를 임신하기 전이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 중 가장 와 닿았던 말이 엄마보다 자궁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는 아기의 고통이 백배나 크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아기가 아프다는데 엄마가 이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결정하고 조산원에서 출산을 했다. 조산원 출산은 여러 조건이 맞아야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출산을 앞둔 엄마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엄마가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결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짐, 그 이상의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조산원에서 생명을 만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 환희를 맛보는 것인데, 그 환희를 나는 세 번이나 맛본 것이다.

그렇게 감사한 만남을 나도 했었구나, 생명을 만나기 위해 나도 노력했었구나하고 떠올리며,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만남이 되도록 잘 배우며 기다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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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만남이 되도록 잘 배우며 기다리고 있어야 겠다. ⓒ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매일 새로운 길, 매일 새로운 만남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송아지가 울고 갈대가 눕고
소나기가 지나고 또, 해가 뜨고

오늘도 내일도

봄비가 내리고 벚꽃이 지고
청포도 익고 잠자리 날고
높은 하늘 말은 살찌고
고드름이 열리고
긴긴밤 지나고 또다시 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오늘도 내일도
나의 길 새로운 길

지난 1일, 2017교육연구학교 세미나를 시작하며 마침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지난 11월 11일, 아나바다·복합문화예술공간 '울' 개장식에서 처음 들었던 '새로운 길'(윤동주 시 / '동화' 곡)이라는 곡이다. 세 아이의 육아로 매일이 쳇바퀴 돌 듯 지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허락받은 느낌이었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또 돌아올 같은 계절을 맞이해도, 매일이 새롭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그렇다. 늘 함께 있으니 매일 그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성장하며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생명력으로 매일 새롭게 서로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과 나도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더 부르고 싶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최 대표가 말했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런 기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냥 이렇게 영원히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너무 황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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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으로 매일 새롭게 서로를 만나기...! ⓒ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덧붙이는 글 교육문화연구학교에 참가하여 취재하고 기사로 작성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교육문화연구학교 #마을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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