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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억의 밤>을 보고 아쉬웠던 이유

[당신이 OO을 보고 아쉬웠던 이유] 단점 수두룩한 영화 <기억의 밤>, 그럼에도 추천하게 된다

17.12.07 11:33최종업데이트18.01.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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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기억의 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이 OO을 보고 아쉬웠던 이유'는 작품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지적하는 코너입니다. 상대적으로 주관성이 강하며, 개인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품의 스포일러가 많으니, 다음과 같은 독자가 글을 읽으면 좋습니다. '작품을 관람했고, 기분이 좋지 않은 관객', '주변의 평가가 좋지 않아 작품을 관람할 생각이 사라진 관객', '작품이 비판받는 이유를 알고 싶지만, 굳이 영화관에서 보고 싶지 않은 관객' - 기자 말

영화 <기억의 밤> 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쉽다. 장항준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기에 그만큼 준비했을 것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기다림의 가치에 부응하는 부분이 있다. 이 글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리하자면 <기억의 밤>은 아쉽기는 해도 볼 만한 가치는 있다.

일단 <기억의 밤>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아주 많다. 하지만 이것은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을 드러내기 위해 불순물을 깎아내는 과정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장항준 감독이 작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작품 외적인 부분이기에 잠깐 접어두자. 그래도 굳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영화를 아쉽게 만드는 편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장르가 아쉽다

보통 영화를 한 편 고르라고 한다면 가장 처음으로 생각하는 게 영화의 장르일 것이다. 예술영화가 아닌 이상 장르는 관객에게 비용만큼의 만족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첫 번째 심사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장르는 이렇다.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그러니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이 세 가지를 모두 느끼고 싶거나, 혹은 어느 하나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셋 중 어느 것도 되지 못한다.

이 영화에는 분명 세 장르가 모두 있다. 어느 장면에선 드라마가 되고 어느 장면에선 미스터리가 된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각각의 요소가 개별적이라 거슬리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먹을 때 잘 버무려진 것을 상상하지 밥 한 숟갈마다 다른 비빔 재료를 입에 집어넣는 짓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냐면 이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르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호소하기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댄다. 예를 들면 영화의 중반부에 진석이 귀신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 있다. 진석에게 신경쇠약이라는 병을 부여해 "이 모든 것이 진석의 환상"이라는 암시를 주고, 그전의 시퀀스에서 진석의 형인 유석(김무열)이 누군가에게 납치되는 장면으로 "이 집에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것을 심어준 상태다. 분명 이것들은 각각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요소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두 장르로 나아가던 와중에, 마치 공포영화처럼 여자 귀신을 관객의 눈앞에 들이댄다면 순간적으로 장르에 대한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릴러 장르는 그 장면 이후로 버려진다. 스릴러라는 것은 관객에게 긴장을 유발해 짜릿함을 느끼도록 하는데, 중반 이후로 긴장을 느낄 만한 장면이 없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다. 결말의 반전을 위해 중반까지 관객을 이끌던 것들이 탁월한 것임이 틀림없고, 영화 내내 관객을 긴장하게 하는 영화가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스릴러'라는 장르는 '미스터리'와 함께하는 것이 문제다.

기본적으로 스릴(긴장)을 유도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는 '정보의 격차'다. 관객이 아는 것을 극 중 인물이 모르거나, 극 중 인물이 아는 것을 관객이 모르거나. 대략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 정보의 격차를 '미스터리'함으로 풀어내고 있다. 위층에서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려오는데 가족이 모른 체 한다든가, 갑자기 형이 납치된 후 성격이 달라졌다던가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러한 것들은 중반 이후로 유석의 진실이 밝혀지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영화 <기억의 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러니 중반 이후론 '드라마'라는 것만 남는다. 지금껏 미스터리와 스릴러라는 긴장으로 달려오던 영화가 한순간에 드라마로 돌아선다. 관객이 이러한 변화를 단박에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관객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가 적절하게 치고받아 일정한 톤으로 유지되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정보의 격차와 반전

문제는 계속된다. 드라마 하나만으로 지금껏 영화가 관객에게 숨기고 있던 '반전'을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진석의 집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외부로 확장되는 과정을 드러내기에 드라마는 견인력이 너무 약하다. 그 사실 자체가 드라마일 뿐,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이 드라마가 되어선 안 되었다. 드라마는 반전에 어울리는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신파에 어울린다. 물론 이 영화에 신파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설득력이 없어,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장점마저 잃고 만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가 시작하면 어딘지 모를 곳에서 한 남자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보이고, 이어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자던 진석(강하늘)이 깨어난다. 그리고 관객은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이곳이 이사하는 날 가족의 차 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남자와 눈앞의 진석이 어떤 관련이 있을지에 대한 추측이 이 영화 최초의 '정보의 격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영화는 진석의 독백(내레이션)으로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유치할 정도로 느껴지는 내레이션은 관객에게 영화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로 있는 것이기에 표면적인 설득은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의 진행에 설득력을 얹어주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영화는 형이 이토록 완벽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2분여를 소모한다. 그토록 완벽한 형이 영화 중반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는 것에 대한 '정보의 격차'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최선이었을까?

몇 달 전에 개봉한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2017)은 내내 인물의 독백으로 서사가 진행되어 비판을 받은 바 있고, 이 영화도 도입부에서만큼은 같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독백이 가지는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독백은 '정보의 격차'가 없어야 한다. 독백하는 인물이 자신이 아는 것을 풀어놓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진행과 비슷하지 않으면 관객은 흥미를 잃고 만다. 그 차이가 벌어질수록, 관객은 인물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견인력이 약한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뜻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 영화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은 장항준 감독의 가장 큰 강점인 시나리오다. 이 영화는 IMF라는 한국사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조심스럽지가 못하다. 영화는 IMF 당시의 상황에서 어떠한 물음을 도출해 내는데, 진석의 집에서 그 상황까지 전환되는 부분까지의 의존도가 너무 높다. 말하자면 영화의 결말을 위해 시나리오의 모든 요소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도구적 사용 중에 하나, 이 영화에는 유독 클로즈 업(확대 기법)이 많이 나온다. 개중에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집안의 어느 방에서 귀신 소리를 들은 진석은 방안에 홀로 서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때 카메라는 멀리서부터 진석의 몸 전체를 잡은 뒤, 서서히 클로즈 업해 얼굴을 화면에 가득 메운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 업을 사용하는 이유는 공포에 질린 진석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여타 다른 부분에서도 반복되는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있다.

IMF 당시처럼 집단이 해체되고 남겨진 개인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에서의 진석도 자신의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에 놓인다. 분명 우리는 그러한 클로즈 업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통감하게 된다. 하지만 싫증이 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클로즈 업은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분명 이러한 연출적인 부분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영화의 결말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큰 여운을 남기는 건 반전이 있는 영화에서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IMF라는 상황을 던져두기만 하면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객이 곧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가 판타지 영화를 보며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그러한 비상식적인 것들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게 영화의 목표다. 하지만 여태껏 말했던 이유로 이 영화는 결말을 관객에게 이해시키지 못한다.

단언컨대,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가 너무 친절하기 때문이다. 중반 이전까지 모든 것을 스릴과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겨두던 영화가, "사실은 이런 것인데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식의 의미로 지금까지의 공백을 메운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이 영화에서 후반은 드라마의 영역이다. 관객은 후반부에서 전반부에 대한 설명을 원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의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스릴러의 방식으로 풀어내니 당연히 싫증이 날 수밖에 없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토록 친절해지면서까지 전하고자 했던 'IMF라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2014)는 2008년의 서브 프라임 사태 후 붕괴된 가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IMF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음에도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독립 영화에서도 그렇고, 상업 영화에서도 그렇다.

6.25를 다룬 숱한 영화와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여러 영화가 있는데, 그에 반하면 IMF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한 것일까. 혹은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드러내지 않는 걸까? 장항준 감독의 시나리오는 그것을 향해, 우리에게 날 선 비판을 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게재 하였습니다.
영화 기억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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