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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혐오했던 여자가 죽었다, 한 남자만 빼고

[인터뷰]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에서 '쇼' 맡은 배우 정원영

17.12.06 16:18최종업데이트17.12.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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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7일 오후 2시 30분]

괜히 '햇살'이 아니었다. 강렬한 뜨거움이 아닌, 산들바람 부는 기분 좋은 날 내리쬐는 햇살 같았다. 그에게서는 반짝이는 빛이 났고, 또 따뜻하다. 연극,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햇살'로 통하는 배우 정원영에게서 느껴진 기운이다.

정원영은 2007년 뮤지컬 <대장금>을 시작으로. <광화문 연가> <내 마음의 풍금> <사랑은 비를 타고> <헤어스프레이> <구텐버그> <아가사> <베어 더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연극 <엘리펀트 송><지구를 지켜라> 등 다수 작품에 최근 <칠서> 그리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을 통해 쉬지 않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다작을 하는데도, 기사를 찾아보면 한두 작품에 한 번 이상씩은 다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 관계자들 사이 혹은 기자에게, 배우를 향한 어지간한 '신뢰'나 '애정'이 없으면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뷰=작품 홍보'가 쉽지 않은 공연계에서는 특히나.

막연히 연기, 노래를 잘한다거나 등의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햇살'이라는 정원영의 수식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밝을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밝은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자신이 받은 사랑에 표현할 줄 알았다. 감정에 계산하지 않고, 솔직한 표현으로 자신을 맘껏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그런 힘이 내재해 있었다.

그런 힘은 작품을 향한 열정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명 소설, 영화가 있는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를 통해 만난 정원영은, 작품과 자신이 맡은 쇼라는 인물에 대해 훤히 꿰고 있었다. 고민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11월 24일 오후, 서울 두산아트센터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생각하지 못했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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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느냐', '무대에서 마츠코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쉽지 않은 쇼를 왜 맡았냐', '정말 사서 고생을 하는 거 같다'는 말에 정원영은 크게 웃더니 "사서 고생이다"라고 응수했다.

"사서 고생이다. (웃음) 사실 쇼라는 인물은 생각하지 못한 카드였다. 연출님도 쇼가 마츠코에 대해 어디까지 들은 것이고, 또 본 것인지 고민했다. 소설에는 나와 있지만, 사실화된 것은 경찰이 마츠코의 죽음에 대해 말해주는 장면이다. 마츠코가 죽기 전 희망적으로 메구미의 명함을 찾으러 간 것 등 다수 장면은 쇼가 알 수 없다."

소설과 영화로도 대중과 만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 뮤지컬로 재탄생되면서 달라진 점이 없을 수 없다. 상상으로 접했던 소설, 상상의 영역을 구체화해준 것이 영화라면 뮤지컬은 한정된 무대 안에서 다양한 감정은 넘버로 표현된다. 쇼라는 인물은 마츠코의 삶을 쫓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애매'할 수 있고, 또 '불필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어디까지가 쇼의 상상이고, 또 마츠코의 인생인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아진다.

"쇼가 있는 한, 상상일 수도 있고, '이랬을 것'이라는 가정이 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마츠코의 인생을 다시 살아보게 된 것이, 영화와 다른 점이다. 여성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다가가기 위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장면이 있다. 계속 무대 위에서 있는 것 역시 테크 리허설 때 정해진 것인데, 마냥 걸터앉아 상황만 보고 있는 상태면 관객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쇼에게 집중될 수도 있지만, 놓아버릴 수도 있어서, 그 중심을 어떻게 잡나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웃을 수 있을까?' '감정을 어떻게 따를까' 고민이 들더라. 한순간 '마츠코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게, 기대하면 같이 기대를 하고, 슬픔을 느끼면 더 슬프게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코의 감정을 따르는 것으로. 제3자 입장이라면, 관객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인생>은 들여다볼수록 짜증 날 정도로 안타깝다. '혐'이라는 감정이 들끓은 이 시대에 더욱이나. 정원영이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아이에게 라면 먹였다고 유괴범으로 몰리지 않나.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작품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 '혐'이라는 감정이,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는 자기 일, 혹은 열정일 수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발산되는 것이 아닌지. 나 역시 어떻게든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온전히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나 혼밥(혼자 먹는 밥)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가족에 대한 개념 역시 달라지는 것 같다. 가정이 생기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보다 가정'이라는 것이다. 나를 위해 가정을 생각한다면, 나의 마음을 가정이 알아주고, 인정해 준다면 그건 희생이 아니지 않을까. 마츠코를 보면서 '가족들이 그를 받아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시작이었던 거 같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이 혐오가 되는 사회다. 가슴이 아프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이 뭔가를 던지지 않을까."

쇼의 눈에 비친 마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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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만 빼고 무대를 지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마츠코의 감정에 따라 쇼의 태도나 바라보는 표정도 달라진다. 다른 인물 넘버에 코러스도 넣고, 안무도 같이한다. 관객이 아닌 배우이기 때문에 정원영은 단 일초도 쉴 수 없다. 마냥 마츠코만 따를 수도 없고, '쇼'라는 인물로 무대에서 힘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정원영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쇼라는 인물을 소중하게 만들고 싶었다. 어느 순간 불필요해질 수 있어서. 아빠의 누이에 관해 다가가는 과정 역시, 심각하게 다가가서 '왜 고모는?' 보다 이끌려서 다가가는 느낌을 살렸다. 쇼의 상상으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순간으로 그려지길 바랐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울까 봐 고민을 했지만, 배우들이 혼란스럽지 않는다면 잘 전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쇼'라는 인물로 중심을 잡기 위해서, 정원영은 마츠코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이해도 되지 않고 화가 났다고.

"정말 화가 '너무너무' 났다. '이 여자 인생은 왜 이럴 수밖에 없지?'라고. '이 영화는 왜 탄생했을까', '인생 영화로 꼽는 관객들의 마음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런데 그런 것을 이해하는 것조차 모순이더라. 누군가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봤을 때, 그것만으로도 삶이라는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까. 마츠코가 류 앞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아. 사랑스러웠으면 좋겠어'라는 가슴 아픈 대사를 하지 않나. 너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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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던 마츠코라는 인물에 대해 고민하던 정원영은, 작품의 대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메구미의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대사다.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겠지만, 마사지방을 갔다는 것. 돈을 벌려고 왜 하필 거기에? 왜 마약을? 그의 선택이 이해가 안 돼서 동정도 안 생기더라. 물론 그의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나,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화가 나더라. 메구미 대사 중에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있는데, 화낼 필요도 없고, 이해할 이유도 없는 거더라. 누군가가 누구의 사랑을 받았지만, 삶을 위해 일어서는 진취적인 모습, 내일을 바라보고 사는 인물…. 마츠코를 볼 때 딱 그 정도 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마츠코 대신 감정을 호소하는 쇼에 대한 생각을 통해, 정원영이 마츠코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빠져들지 않고 한 객체, 한 인물로 관객을 마주할 수 있던 이유가 드러났다.

"뮤지컬에서 쇼가 감정을 호소하는 마지막 장면은, 소설에서는 마츠코가 말한다. 마츠코라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거 같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혐오스럽게 만드는 건 온전히 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쇼는 마츠코가 아니지 않나."

늘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쓸쓸한 삶을 사는 비극적인 인생으로 그려지지만, 마츠코는 사랑을 믿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순수한 인물이다. 극의 말미에는 그를 향한 사랑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마츠코의 마음은 (세상을 떠나서) 모르겠다. 하지만 류는 마약을 끊으려고 노력을 했고, 시작이 자신이라는 죄책감도 느꼈다. 급기야 교장을 살해하기까지 하고. 게다가 아버지는 마츠코를 기다리지 않았나. 마츠코는 충분히 사랑받은 인물이다. 세상을 떠나 비록 모르겠지만, 죽은 고모(마츠코)에게 '충분히 사랑받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햇살처럼 그리고 노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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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 마츠코에게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정원영. 그가 생각하는 가족, 배우의 삶에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했다. 태양의 기운이 햇살이라면 그의 태양은 가족이라는 듯이.

"아버지(정승호), 이모(나문희)도 배우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누구보다 행복하고 즐기고 있다. 작품을 통해 많이 느끼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크다. 과거를 되돌아봐도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어느 순간도 돌아간다고 해도 좋다. 정말 행복하다. 부모님께서 '지금이 최고'라고 말씀하신다. 미래를 생각할 때 건강한 부모님과 건강한 나. 관객들 앞에 설 수 있는 배우의 삶이 과연 어떨지.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부족하다고, 받은 사랑에 계산적일 것까지 없지 않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쏟아내면 또 그만큼 채워지는 것 같다. 무대 역시 100을 쏟아내면 그다음 날은 더 새롭게 100을 넘어서는 무대가 펼쳐지더라. 머리가 이해해도 마음이 안 움직이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더라. 관객, 그 어떤 사람이든 사랑은 항상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것은 진심이다. 무대에 서고, 집에 가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다."

정원영이 무대에 선지 벌써 10년.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로 만났다. 더 많은 이들이 '햇살' 정원영의 기운을 느낀다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정원영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이 정원영의 연기와 노래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기회가 많아지길. 정원영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의 에너지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래에도 행복하겠다고 하면 욕심이겠지만. 빛났던 햇살이 노을이 되지 않을까, (웃음) 노을을 꿈꾸는 햇살이다."

혐오스런마츠코의인생 햇살 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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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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