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평화를 무너뜨린 사드,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연꽃 아래에서 평화를 말하다⑤ 소성리 종합상황실 강현욱 대변인 인터뷰

등록 2017.12.01 16:20수정 2017.12.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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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 말

오전 8시 40분경, 진밭교에 들어선 경찰들이 방패를 내리고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자그마치 1500명이었다. 9시 15분부터 진압이 시작됐다. 고작 150명이던 사람들 중 몇몇은 차와 차 사이에 서서 팔을 연결하고, 차 밑에 들어가 누웠다. 원불교 교무와 천주교 신부들은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 "절차적 정당성 없는 공사 장비 반입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경찰은 장장 4시간에 걸쳐 강제해산을 진행했고, '종교CARE'팀을 꾸려 성직자들도 끌어냈다. 모두 2017년 11월 21일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달 25일 <연꽃아래>는 소성리 종합상황실 강현욱 대변인을 만났다. 그가 지켜본 사드 배치의 과정에서는 개인과 일상의 평화가 무너지고 있었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사드 투쟁에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경제성을 벗어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데서 인간의 가치를 찾았다. 일상의 작은 평화가 무너진 모든 상황을 전쟁으로 본다는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사드가 배치되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원불교 시민사회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고, 성주 소성리 종합상황실의 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대변인 일을 전에 해봤던 것은 아니지만 네트워크 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나누다 보니 맡게 됐어요.

사드 투쟁에 '원불교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전격적으로 함께하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는데요. 저는 '함께 사는 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어요. 원불교학과에 진학을 하고 나서도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지?'라는 질문을 계속 품고 있었고요. 종교는 정신을 강조하는 면이 많죠. 하지만 정신과 육신, 사회가 같이 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종교가 실질적 아픔이 있는 곳에 참여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11월 25일 낮, 온수역 앞의 카페에서 소성리 종합상황실 강현욱 대변인을 만났다. ⓒ 연꽃아래


-성주 사드 투쟁은 2016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투쟁의 과정과 흐름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사실 사드 투쟁에 올해부터 합류해서, 올해 초부터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월 전까지는 롯데CC가 사드 부지 선정이 되지 않도록 국회에 촉구를 했어요. 그리고 사드 특위가 움직여서 국회 비준을 받을 수 있도록 민주당 점거 농성도 했었는데 잘 되지 않았죠. 당시 박근혜 정부가 탄핵 위기였던 와중에도 다음 정부로 넘어가기 전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보였어요.


결국 3월 1일 자로 소성리에 현장 상황실이 만들어졌고 저지 활동에 들어가게 됐죠. 그러던 중 4월 26일, 경찰들이 국가에 의한 폭력을 앞세워 기습적으로 사드를 배치했어요. 5월 9일까지 2차 추가배치의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전국에 호소한 결과 매일같이 500여 명의 사람들이 소성리에 모였고, 대선 전 추가배치는 막을 수 있었죠. 하지만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를 믿었는데, 9월 7일 결국 더 큰 폭력을 앞세워서 추가배치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이었던 11월 21일, 불법적으로 진행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공사 장비와 자재들이 반입됐어요."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 이중희 위원장과 사드반대김천시민대책위 김종경 위원장이 강고하게 인간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 소성리 종합상황실


11월 21일, 세 번째 국가폭력

-21일 사드 기지 공사 차량 반입 사건으로 많은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전보다 연대 단위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9월 7일에는 500여 명이 모였지만 이번엔 150명 정도밖에 모이지 못했고. 그래서 전선을 뒤로 쫙 밀어서 소수 인원으로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진밭교 쪽에서 저지 활동을 시작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아요. 그들은 방패를 들고 있고, 온갖 장비를 들고 있어요. 우리보다 10배 이상 많은 인원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어떻게든 우리의 몸을 이용해서 저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결의된 사람들이 원통형 철통을 이용해서 인간사슬을 만들고, 컨테이너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막고, 종교인들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서 기도했어요.

하지만 150명으로 5000명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우리가 선택했던 모든 방법이 다 무너졌고,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옴으로써 3번의 큰 싸움에서 모두 패배를 했어요. 이번에 인원 대비 중상자가 제일 많이, 4명이나 나왔다는 건 당시의 격렬한 상황을 알 수 있죠. 마을 분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크고요. '전투에서는 졌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졌어도 저 사드를 뽑아내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과거 상황과 비교하여 현재 소성리는 어떤 상황인가요?
"사실 소성리 상황은 대선 이후에 훨씬 힘들어졌어요. 사드 문제는 촛불집회 때 6대 현안 중의 하나였어요. 사드를 외교안보 분야 최악의 적폐라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촛불을 들고 사드 철회를 외쳤었죠. 그런데 6대 현안 중에 유일하게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게 사드예요.

문재인 정부가 많은 희망 속에 탄생하여 기대를 받고 있죠. 대중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죄책감과 상처를 갖고 있어서 새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드 배치 찬성률이 가장 높을 땐 74%까지 나왔었는데요. 저는 그 사람들이 사드가 정말 필요하고, 미사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찬성했다기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 테니 밀어줘야지' 하는 기대가 컸다고 생각해요. 소성리에서 함께하던 연대자들도 이 때문에 많이 빠져나가서 지금은 100여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일상의 평화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구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사실 이 구호는 작년에 만들어진 건데요. 탄생 배경은 짐작할 수 있죠. 사드 문제는 그저 무기체계를 갖고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드라는 미 전략 무기가 한반도에 놓임으로써 동북아시아에 긴장감이 조성된다는 데서 거대담론으로써의 전쟁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일상의 평화들, 개인의 평화들이 무너지는 거예요.

물론 사드만의 문제는 아니죠. 송전탑이 들어왔을 때도,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 들어오는 것에서도 사람들은 한국의 전력 문제, 핵 문제, 그리고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무너지고 있는 건 개인의 평화고, 일상의 평화고, 지역의 평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드가 가고 나서 우리가 찾아야 될 것은, '전쟁과 평화'라는 상대적인 개념에서의 평화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폭력에 의해 무너지는 일상의 평화예요. 이것을 되찾았을 때 국가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메시지가 탄생한 것 같습니다."

-성주 사드 반대 활동은 특히 원불교를 중심으로 종교계에서 앞장서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특별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특별하다기보다는 죄송한 면이죠. 성주는 원불교의 성지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깊이 결합되어 있어요. 송전탑 투쟁 때에도 종교들이 참여했고, 강정마을의 경우 천주교가 참여했었죠. 문정현 신부님이 아직도 강정에 계시고 평화센터가 있습니다. 사실 종교가 그런 아픈 사건들에 참여를 하면서 그 아픔 속에서 종교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치유를 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만큼 그것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굉장히 죄송할 점이고 반성해야 할 점이에요.

처음 시작은 원불교 성지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그 목적만이 아니에요. 모든 싸움이 처음부터 거대한 평화를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처음은 '우리 집 옆에 뭐가 들어온다고? 이건 아닌데.' 하는 의문에서 시작이 되고, 거기서 공부를 하고 연대를 하다 보면 생각이 넓어지는 거죠. '아,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의, 국가의, 세계의 문제였구나. 아, 이게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이 형성되는 거예요. 이제 성주는 원불교만의 성지가 아닌 '평화의 성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평화란 '모심'이다"

“평화란 모심이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소성리 종합상황실 대변인. ⓒ 연꽃아래


-강현욱 교무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원불교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만물이 부처로서 여겨지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다시 말해 서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인정'이란 단지 '그래, 네 생각은 그렇지'와 같은 인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모시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볼 수 있을 때 그런 게 온전한 모심이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평화란 모심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투쟁 방향이나 정해진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12월 2일에 '6차 소성리 범국민평화 행동'이 열리는데 그곳에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고요. 오셔서 아직 우리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걸 함께 외쳐주시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겨울에는 모든 생물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시기잖아요. 저희도 인원은 많이 줄었지만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힘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큰 계획이 더 있다기보다는, 봄이 올 때까지 얼어 죽지 않고 잘 버티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사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표면적인 봉합은 있을지언정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상처는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성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문재인 정부가 당선되고 나서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 그만큼 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상처도 깊고요. 하지만 아직도 기대를 놓지 않았어요.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언젠가 그게 변할 힘이 있다고 믿어요.

그것에 대해, 너무 자신들의 몫을 지키려는 명분으로 매몰차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대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물론 함께해주면 더 좋겠지만, 최소한 외면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들의 인식은 더 이상 지역에 묶여있지 않고 평화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만 마음속에 새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꽃아래 #사드 #평화 #전쟁 #소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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