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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청춘도 알바도 아니었다

공연 리뷰 - 극단 이와삼의 연극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 빈 의자에는 어떤 사연이?

17.11.29 09:15최종업데이트17.11.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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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이와삼


"저는 지금 연극하는 삶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신자유주의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과 그것은 달라요, 제발 연극하는 게 어렵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비어있는 의자에 사람들이 앉는다. 한 자리가 남는다. 빈 의자에 앉았던 사람에 관해 얘기하고, 빈 의자에 앉아 자신의 얘기를 펼친다. 토론하고, 거침없는 의견이 오간다. 이어지는 반론은 마치 내면의 갈등처럼 첨예하다. 그만큼 고심하게 만든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얼 좇는지 알지도 못하고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던 그 무언가에 대해.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지난 18일에 개막하여 26일까지 짧게 관객을 만난 연극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의 이야기이다.

신자유주의가 바꾼 우리의 삶

ⓒ 극단 이와삼


이 작품은 '너의 고민은 신자유주의랑 관계가 있어' '몸, 나의 몸이 원망스럽다' '반대&사라짐'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알았다 해도 출구는 여의치 않다' '너의 얘기가 듣고 싶어' 이렇게 다섯 파트로 나누어져 진행된다. 큰 틀은 하나다. '신자유주의'에 얽히고설킨 우리 주변 사람들의 얘기인 듯하지만, 곧 나의 모습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극단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는데, 전 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결혼준비를 위해 극단을 쉴 수밖에 없던 배우. '적어도 남들처럼만'이라는 그의 생각은 어떠한 기준이나 잣대가 아닌, '세상과 맞춘' 결정을 한다. 가장 좋고 비싼 결혼식에 '왠지 아내에게 소홀한 남편이 되는 듯'한 느낌에 현실에서는 부담스러운 산후조리원까지 예약한다. 게다가 무료인 줄 알고 찍은 만삭 사진은 한 장에 몇만 원, 세트 구성으로 묶인 할인 행사 등으로 그를 난감하게 만든다.

시간,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의 속성을 이용해, 상품을 구매해 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라는 동규의 말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주인이 돼야 한다'라는 주장부터, '욕망을 채우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라는 자문, 그리고 신자유주의 전략에서 이용당하지 않고, 진정한 '알맹이'를 볼 것에 대해 의견이 오간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공감을 바탕으로.

"아니 사람을 봐야지 스펙, 재력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나요."

그냥 밥을 먹는 것도 이벤트가 되고,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어도 텔레파시로 찾기도 했던 커플. 배경이 아닌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은주. 하지만 기부를 통해 구매한 옷에 해맑게 기뻐하는 그,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에 만족하는 그의 모습에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은주는 "남들 수준은 저도 돼야 하는 거다. 그것도 내겐 가난이다. 이 몸, 이 몸 안에 두 개의 마음이 있다. 나의 몸이 원망스럽다. 이것과 소통해야 한다"라고 자조한다.

이어, SNS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좋아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는,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온전히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그렇다면 내 몸은? 신자유주의가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은?"

ⓒ 극단 이와삼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극단'으로 돌아간다.

"연기술이 느는 게 아니라, 지원사업 지원서 쓰는 능력만 늘어가. 예술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따낼 수 있을까, 그것만 고민해."

무대에 오르는데 제작비가 없고, 제작비를 받으려고 각 재단에 지원서를 쓴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언젠가부터 '지원서 압박'을 받는다. 극단 배우의 고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활에 쫓겨 떠난 사람, 알바에서 음향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면 화가 쌓여 술로 풀기도 한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배우들은 호소한다. "연극하는 삶이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신자유주의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과 그것은 달라요"라고.

적은 임금을 받음에도, 그것이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다 알면서도 함구할 수 없는. 아닌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했던 배우, 그는 호소한다. "알바하는 삶이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신자유주의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시급 천원을 더 받기 위해 최소 18만 원을 투자해서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스피닝 강사 아르바이트 경험의 배우, 급여일이 늦어져도 함구해야 하는 입장. "청춘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사고 이후, 바뀐 것은 없다

ⓒ 극단 이와삼


"달리는 지하철 속에, 달리는 시간 속에, 달리는 불안 속에, 달리는 분노 속에, 사라지는 내 젊은 속에."

작년 발생한 구의역 사고와 김아무개씨의 사망.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는 고 김아무개씨의 참혹한 사고에 대해, 면밀하게 되짚는다. 그 안에는 신자유주의 실체를 알았음에도. 출구가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이 극단의 '관극 회원'들에게서 도착한 장문의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극 안에서만이 아닌, 우리 삶 속에 스며든 '신자유주의'에 대해.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는 주와 객이 전도된 의식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모순에 대해 얘기한다. 동시에 이 모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함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무성한 시간에 대해 얘기한다. 어둠 속에 그리고 빛 속에 드리워진 표정과 그림자를 통해 극은 흐른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정의할 수도 없어도, 답을 내리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듯이.

무대 위 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배우의 성대에서, 목을 가다듬기 위해 마시는 물이 마치 술 한 잔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어쩔 수 없이' '혹시 그럴 수도' 등, 혼자 대뇌였던 수많은 감정과 고민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그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연극은 '그 감정, 우리가 알 거 같다'라며 가슴에 쓰라린 위로를 건넨다.

<신자유주의놀이-빈의자> 장우재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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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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