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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보컬이 연기한 국군 대위, 무인도서 '여신'만나다

[인터뷰] 록밴드 보컬에서 배우까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한영범, 김신의

17.11.22 10:41최종업데이트17.11.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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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대위 한영범은 포로를 이송하다가, 포로가 됐다. 북한 포로를 이송하던 중 포로들의 폭동에 배가 난파되고 무인도에 고립된 것. 꽁꽁 묶인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딸의 이름을 부르며 견디던 한영범은 배를 수리할 수 있는,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류순호를 만나고, 그가 전쟁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된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남한군과 북한군이라는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소재를 훈훈하게 풀어냈다. 전쟁으로 인해 몸이며 마음마저 피폐해지고, 짐승처럼 변할 수밖에 없던 한정된 공간에 등장한 '여신'이라는 존재로 말이다.

모던 록 밴드 몽니의 보컬이자, 음악 감독,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활약 중인 김신의는, 극 중 능청맞고, 재치있는 한영범으로 등장해 류순호에게 '여신님'에 대한 존재를 각인시킨다. 특히 딸의 이름을 기다리며 애교를 떨거나, 애정표현을 아낌없이 하는 무대 위 그의 모습은, 실제 딸을 둔 아빠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그런 모습은 그를 더 멋져 보이게 만들었다. 10월 26일 김신의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딸을 둔 아빠, 한영범과 김신의

ⓒ 연우무대


"앞서 한 역할들과 좀 달라서, 연출이 '멋있으면 안 된다!'라고 하더라. 멋있으면 혼나는데…. (웃음)"

김신의는 <록키호러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곤, 더 버스커> <머더 발라드> 등 다수 뮤지컬에 등장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감성적인 목소리를 아낌없이 발휘하며, 무대 위를 물들인 그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는 어떤 감정을 담을까.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너무 좋은 작품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 헤어질 때 가장 이입이 많이 된다. 두 시간 극이 진행되면서, 보인 이들의 전우애.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래 살자! 라고 생각하는. 분단되고 만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이들도 분명 알고 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더 뭉클하다. '이산가족 마음은 오죽할까'라는 생각도 들고."

배경이 배경인 만큼, 김신의는 북한군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에 대한 애틋함도 드러냈다. 이들이 과연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을지에 관한 점도 관객들의 몫이겠지만, 이들의 마음은 '그리움'이라는 것.

"영범과 창섭이 나이가 들고 난 후, 서로가 생각나지 않을까. '잘살고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보고 싶을 거 같다. 순호도 그렇고."

극 중, 하루빨리 탈출을 꿈꾸는 이들은, 한영범이 말한 여신님의 존재를 믿는 류순호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여신님'의 존재를 받아들인(?) 것처럼 행동한다. 류순호의 마음을 돌려 배를 수리한 후, 무인도를 탈출하고자 하는 계획인데, 이는 곧 무인도에 평화가 깃들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여신님'이 등장한다. 한영범은 자신의 딸, 이창섭은 어머니, 조동현은 월남한 가족을, 석구는 짝사랑하는 누나 등. 자신의 삶에서 원동력이 되고, 활력소가 되는 존재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져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한영범에게 여신님은 딸이지만, 나에게 여신님은 하나님이다. 삶의 원동력도 신앙이다. 굉장히 밀접하다. 물론, 가족도. 가정이 화목하면 아무리 내가 힘든 일을 겪어도 이겨낼 수 있다. 가정이 불안한데 하는 일이 잘 된다? 그건 모래 위에 쌓은 성이 아닐까."

'여신님'에 관한 주제는 자연스럽게 '가족애'로 넘어갔다. 그만큼 두 딸을 향한 애정이 뜨거웠고, 김신의가 무대에 서는 힘 또한 가정에 대한 안정이 주는 힘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할 만큼.

"가정적인 편이다. 아이들과도 함께 하려고 하고. 가정에 더 충실히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대에 있을 때 지배할 수 있는 힘,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은 가정의 안정이고, 뿌리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생활에서 건강한 음악이 나오는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하다? 아니다(웃음). 다정다감한 편도 아니고, 그러지 못한다. 표현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친해지면 좀 달라지긴 하는데, 형으로서 잘 이끌고 싶고, 정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최근 나온 앨범에 수록된 '나와 너' 역시, 딸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지나면서 곡에 등장하는 소재 역시 달라진다고.

"얼마 전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아이들이 잠든 침대가 보이더라.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나이가 들면 작별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곡이 써졌다. 한때는 첫사랑 관련 노래를 많이 불렀다. 40대가 되면서 삶을 사는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가고, 그래서 나온 곡이 '바람'인데, 인생이 바람처럼 '슉' 지나가는 것을 담았다."

김신의, 그의 음악세계는 넓다

ⓒ 연우무대


음악이면 음악, 뮤지컬이면 뮤지컬, 밴드 활동도 꾸준히 쉴 새 없이 하는 김신의이지만, 그 모든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작품에서 더블(한 배역을 두 배우가 맡는 것)이나 트리플(한 배역을 세 배우가 맡는 것)로 무대에 오를 때 스스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서 그런 마음은 '즐거움'이 됐다.

"매 공연이 쉬운 작품이 없었다. 스트레스도 없을 수 없고. <여신님이 보고계셔> 역시 연출이 원하는 캐릭터로 안 나오는 것 같아 '내 한계인가'라고 느꼈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밴드를 하다가 시작한 무대기 때문에. '내가 기본기가 없어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했다. 근데, 무대에 오르니까 재밌더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좋은 작품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하고 김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뮤지컬 무대는 음악 작업을 하고 오롯이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과정과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김신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굳건히 무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펼칠 영역이 많다는 가능성을 내보인 셈이다.

"제 생각에 세상, 사회생활 등에서 겪는 힘듦의 행위는 나를 흔들 수 없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몇 관객들의 안 좋은 댓글, 안 좋은 평가 등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더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작품에 대한 고민도,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생각도 짙었다. 그만큼 무대에서 연기한 배우들과 함께하면서, 연기에 대한 갈증은 피할 수 없었을 것. 한계를 느끼고 포기하는 게 아닌, 더 뜨거운 열정으로 이를 뛰어넘는 그의 모습은 무대에 여실히 담겼다.

"작품을 통해 경력도 많고, 실력도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 보면 '저렇게도 할 수 있겠구나', '난 저렇게 못 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흉내를 내더라도, 무대 위 센스나 여유는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나. 운동을 하면, 어느 경지에 오르면 힘을 빼고 하게 되는데, 배우 역시 (경력이 쌓이면) 무대 위에서 힘을 빼고 연기하더라. 무대 위에서 노래만 강하고, 다이내믹 없이 표현하던 때가 있다. 작업하면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영범. 김신의의 성격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 때문에 더욱 고심은 깊어졌을 수밖에.

"연습할 때 고민이 많이 됐다. 영범은 뺀질대고 유연한 성격이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도 있고…. 빨리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순호에게 여신님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을 돌려보기도 하지 않나. 실제로 나(김신의)는 영범처럼 그렇지 못하다. 잔머리도 못 굴린다. 스스로가 좀 바보 같다. (웃음)"

몽니의 음악을 들으면 김신의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지 와 닿고, 그의 무대를 보면 얼마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인지 보인다. 흔들리지 않으면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또 그렇게 영역을 펼쳐나가는 김신의. 덕분에 그가 열어갈 창작 영역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진다. 뮤지컬 무대와 밴드 몽니로 펼쳐갈 그의 세계가.

"뮤지컬 할 때마다 관련된 곡을 썼다. <머더발라드> <고래고래>에서도. 아마 <여신님이 보고계셔>도 관련된 곡이 나오지 않을까."



자투리 일문일답
- 김신의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 까지인 것 같아요. 지금 상황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계속 불행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저 역시 비교의식이 들 때도 있거든요.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겠지만, 음악 시장이나 어느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고 말이죠. 하지만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평생 불행하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 뮤지컬에 몽니 무대에 바삐 지낸 김신의의 2018년도 계획은?
"2017년은 정말 열심히 지냈어요. 뮤지션, 몽니, 배우로서, 성장하려고 노력한 한해였죠. 2018년은 아마 음악에 더 집중할 거 같아요. 아무래도 계속할 일은 밴드 음악이니까. 좋은 곡들을 만들고, 작업해서 유행 타는 음악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많이 불리고 들려지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헤드윅>은 넘버도 너무 좋아요. 헤드윅의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프랑켄슈타인>도 너무 좋았고, <미스 사이공>도…. 주어지면 제 스타일로 할 수 있겠죠? (웃음)"


여신님이 보고 계셔 김신의 한영범 김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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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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