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인정합니다" 국정농단 반성하며 눈물 흘린 단 한 명

[촛불집회 1주년] 촛불 들게 만든 국정농단 피고인들의 '말말말'

등록 2017.10.27 20:55수정 2017.10.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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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말고 당장 하야하라"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이 2016년 1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앞에 모여 촛불을 들어보이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촛불집회가 1주년을 맞았다. 2016년 10월 29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어둠을 밝힌 이유는 국정농단을 향한 분노였다. 1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을 포함한 국정농단 공범들은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과연 법정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말말말①] "모두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잘못을 반성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털어놓는 피고인은 단 한 사람, 김소영 전 문화체육관광부 비서관이다.

김 전 비서관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메모에 '김기춘, 조윤선, 정관주, 김소영, 문체부'라고 적힌 블랙리스트(문화예술지원배제명단) 관련 인물 중 한 명으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비서관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피고인 신문에서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수석비서관을 통해 전달받아 문체부로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기에 깊이 반성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첫날부터 자백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김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다른 피고인들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가 전달되거나 실행된 경위에 대해 증언했다.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전달받았다" 등 다른 피고인들과 엇갈린 진술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1심 결심 공판에서 "자백했다는 이유로 타 피고인들은 비난하고, 심지어 지난 기일에선 나가는데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김 전 비서관은 현재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블랙리스트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과 함께 항소심을 받고 있다. 그는 피고인석에 앉아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모으고 있다.


[말말말②] "혐의는 인정,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 없어"

혐의는 인정하나 박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는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피고인으로서 재판부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인 '최후진술'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우리 정치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님만큼 비극적인 사람이 또 있겠는가. 마음이 아프다…제가 대통령 뜻을 헤아리고, 그걸 받드는 과정에서 과했던 점은 있었을 수 있지만, 특별히 부당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하고,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 못했던 최씨의 행동들과 연계돼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됐다."

정 전 비서관은 오는 11월 15일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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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블랙리스트 항소심 첫 재판 출석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불구속 상태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한 뒤 점심식사를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 권우성


[말말말③]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공직자' 생활이 끝났으니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하는 인물도 있다.

조 전 장관은 문예기금 지원배제, 영화 지원배제, 도서 지원배제 등과 관련해 기소됐으나 1심 재판부는 '국회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부분(위증)'만 유죄로 판결했다. 조 전 장관은 1심 결심 공판에서 '자연인' 조윤선으로서의 희망만은 꼭 이어가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작은 꿈이다. 두 딸도 예술을 시켰고, 제 주된 관심도 늘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블랙리스트 주범이라는 오해에 맞닥뜨려 꼭 해보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 문체부 장관으로 제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은 하늘이 허락해주시지 않았지만 앞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자연인 조윤선으로서의 희망만은 꼭 이어가고 싶다."

조 전 장관은 항소심에서 '위증'까지 무죄로 인정받기 위해 "선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증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게 아니다" 등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관련 기사: 조윤선의 항소심 전략 '선서 효력은 당일')

[말말말④] '모르쇠' 김기춘과 '태도 불량' 우병우

'법꾸라지'로 알려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며 혐의를 부인한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선고를 앞둔 결심 공판에선 '모르쇠'로 잡아뗐다.

"저는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 당사자에게 강요한 일도 없고, 장관에게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한 사실도 없다. 저는 문화예술인 개인이나 단체 선정이나 지원 배제를 위한 명단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일도 없고, 작성명단을 본 일도 없다. 집행하도록 지시하거나 강요한 일도 없다. 보고받은 일도 없고, 집행상황을 알지도 못했다."

조 전 장관과 함께 항소심을 받고 있는 김 전 실장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준비기일에도 법정에 출석했다. 하늘색 환자복을 입고 나온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재판부에 자신의 건강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방조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우 전 수석은 최근 법정에서 '태도 불량'으로 재판부에 혼쭐이 났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3일,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CJ 그룹에 우 전 수석이 불이익을 주려고 했던 정황에 대해 증언하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재판부는 "증인신문 할 때 액션을 나타내지 말아 달라. 피고인은 특히 (그렇다)"며 제지했다. 우 전 수석은 첫 공판부터 열심히 자신을 변호했다.

"전 대학을 졸업한 뒤 23년간 검사를 했고, 1년 변호사 생활을 거쳐 2년 6개월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등으로 근무했다. 청와대에서 매일 야근했고, 주말에도 대부분 출근했다. 대통령이 언제, 어떤 지시를 할지 알 수 없어서 제가 사는 안방, 서재, 통근 차량, 화장실까지 메모지나 수첩을 두고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전 평생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사심 없이 직무 수행하는 원칙을 지키고자 했고,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보좌할 기회를 갖게 된 데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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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씨가 5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말말말⑤] 법정에서 '물 흐리는' 박근혜-최순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법리적 다툼은 포기한 듯 보인다.

탄핵 전, "(국정농단 사태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던 박 전 대통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지칭했던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 등을 무표정으로 빤히 바라보거나 변호인단이었던 유영하 변호사와 증인이 설전을 벌이면 웃는 등 간접적인 표현만 해왔다. 그러나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연장하자 그는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판한 시간들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저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 일괄 사임'이라는 카드를 꺼내며 재판을 법정에서 외부로 끌고 가자, 최씨도 이를 따라 다음 기일에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구속된 지 1년이 다 돼간다. 구속돼 지금 검찰이 6~7개월간 외부인 접견을 막고, 일체 면회를 불허해서 1평되는 방에서 CCTV로 감시하는 등 화장실도 오픈된 곳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버텨왔다. 지금 너무 힘들다. 검찰이 불합리하게 하는 것을 재판장님께서 정리해달라."

검찰 관계자는 "핵심 피고인들은 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이 타오른 지 1년이 지났다. 그때도, 지금 법정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김소영 #촛불 #박근혜 #최순실 #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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