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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고 이한빛 PD 추모법인 출범

[현장]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 1주기 추모제

17.10.27 12:00최종업데이트17.10.2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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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영정 앞에 꽃을 올리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 정교진


"지난 1년, 제 삶이 멈춰버린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한빛이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며 보냈습니다. 많은 시민, 사회의 도움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빛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사회로 넘기고, 지난 1년간 잃어버린 제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는 불합리한 방송 제작 환경과 조직문화에 고통받다 세상을 등졌다. 26일 고인의 1주기를 맞아 고인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열린 추모문화제 '빛이 머문 시간, 빛이 채울 내일'에는 고인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메시지를 기억하는 약 150명의 시민이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추모제는 고 이한빛 PD의 1주기를 기리는 자리이자, 지난 1년 동안 고인이 남긴 메시지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경과보고 자리였다. 당초 CJ E&M은 고 이한빛 PD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고인의 죽음을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하며 그 책임을 회피했었다. 하지만 지난 6월, 고 이한빛 PD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했다. 책임자 징계 조치와 회사 차원의 추모식은 물론, 방송 제작환경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제작인력의 적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개선,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및 권고까지 약속했다. 이한빛 PD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한 제작환경과 조직 문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CJ E&M은 사과와 함께 이한빛 PD를 기릴 수 있는 기금 조성에 재정적 후원을 약속했다. 이 기금은 고인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한빛' 설립과 방송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다. 추모법인 '한빛'의 준비모임을 이끌고 있는 동생 한솔씨는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업계에 대안적 문화가 창출되고 전반적 노동 여건이 나아지기를 기대한다"면서, "형의 이름을 딴 단체이니만큼, 고인의 죽음이 남긴 의미와, 힘을 보태주신 시민사회의 기대에 부족하기 않게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 한솔씨는 추모법인 '한빛' 준비 모임을 이끌고 있다. ⓒ 정교진


추모제에 참석한 PD 지망생 강미소씨는 "누군가의 죽음이 사회적 변화의 계기나 의미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한빛 PD의 죽음이 일으킨 변화를 지켜보며, 앞으로 내가 속할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언젠가 카메라 뒤에 서게 되는 날, 이한빛 PD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고인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 소속 정병욱 변호사는 "CJ E&M의 사과 이후, 민변 노동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었다"면서 "연대해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삼성 반도체의 산재 인정, 삼표 시멘트 노동자 정규직 합의 등 최근 민변이 환영 성명을 낸 사회의 긍정적인 움직임의 중심에 이한빛 PD가 있었다고 믿는다. 민변은 추모법인과도 계속 연대하겠다. 이 세상 노동자들이 모두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추모제에는 tvN 이명한 본부장도 참석했다. 이 본부장은 추모제를 마치고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단시일 내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이한빛 PD 유가족과, 대책위를 이끈 청년유니온 등과 크로스 체크하면서 방송 노동자들 처우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정규직 직원뿐 아니라, 프리랜서, 외부 인력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준비에도 진심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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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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