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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대신 <피디수첩> 때려잡은 MB 국정원.. "공범자도 있다"

‘블랙리스트’ 검찰 조사 받은 최승호 김환균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

17.10.02 11:02최종업데이트17.10.0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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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PD수첩 제작진인 최승호 해직 PD,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본 국정원 문건을 통해 그간 MBC 안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이 국정원 기획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 유성호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MBC 정상화 방안' 문건에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꼼꼼하고 치밀한 세운 MBC 장악 시나리오가 담겨있었다. 그간 MBC 안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을 '낙하산 사장'의 충성 행동 정로로 여겼던 MBC 구성원들은 이 모든 일들이 '국정원 기획'이었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 'MBC 장악 시나리오'의 맨 윗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다뤄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PD수첩>이 있었다.

과거 <PD수첩> 제작진인 최승호 해직 PD,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 등은 지난달 26일부터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피해자 진술을 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참석해 검찰 조사 과정과 당시 <PD수첩>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전했다.

'최승호 전출' 성과보고... "씁쓸했다" 

과거 PD수첩 제작진인 최승호 해직 PD ⓒ 유성호

최승호 PD는 <PD수첩>에서 4대강 사업을 지적하는 아이템을 제작하다 비제작부서로 전보조치 됐고, 2012년 해고돼 5년 째 MBC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최 PD는 "검찰 진술 과정에서 보니 2010년 11월 4일자에 'VIP 일일보고'라고 되어 있고, 그 옆에 '최승호 PD 전출, 김미화 교체, KBS <추적60분> 담당 PD 인사 조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라며 "검찰은 이 문건이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는지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봤을 때, 해야 된다, 할 거다, 이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 시기는 최 PD가 제작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 불방 상태에 있던 때였다. 4대강 사업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내용으로, 최 PD는 "당시 집권 세력의 정책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청와대가 상당히 골몰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 국토부가 방송금지가처분신청도 냈지만, 남부지법은 "국책 사업에 대한 공영방송의 정당한 검증"이라며 기각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이 불방조치 시켰고, <PD수첩> 제작진은 업무 거부 투쟁 등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최 PD는 비제작부서로 전출됐다.

모든 일은 문건 내용대로 진행됐다. 최승호 PD 전출 이외에도, 김미화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에서 물러났다. KBS <추적 60분>에서도 천안함과 4대강을 다룬 아이템이 제작됐지만, 불방 된다. 이 당시 제작진 교체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PD는 "2012년 1월에 작성된 문건에는 2011년 최승호 전출, 김미화 교체 등이 자랑스러운 성과 중 하나로 기재돼 있더라. 간첩을 잡아야할 국정원이, 잡으라는 간첩은 안 잡고 최승호 때려잡고는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며 황당해 했다. 이어 "국민의 세금으로 포상도 하지 않았을까 싶더라"며 씁쓸해 했다.

국정원 "<PD수첩> 보도본부로 보내라"  

국정원 문건에는 'MBC 경영진과 협조해서 봄철 개편을 통해 드라마·예능 제작본부 산하의 <PD수첩>을 보도본부로 이전하고, 뉴스 수준의 게이트키핑을 하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언뜻 시사 프로그램인 <PD수첩>에게는, 드라마·예능을 제작하는 곳보다 보도본부가 더 알맞은 것처럼 쓰여 있지만, 이는 다르다. 제작본부 산하에는 드라마국과 예능국, 그리고 시사교양국이 있었다. 보도본부는 뉴스를 제작하는 곳이다. 한 마디로 PD들은 제작본부 소속, 기자들은 보도본부 소속인 것이다.

국정원은 공영방송 시사 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전을 계획했고, KBS의 <추적 60분>은 보도본부로 이전됐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목부터 'PD'가 들어가는 <PD수첩>의 경우에는, 기자들이 속해있는 보도본부 이전이 쉽지 않았다. 해서 제작본부에서 분리된 시사교양국은 편성제작본부로 옮겨진다. 당시 편성제작본부장은 현 MBC 부사장인 백종문이었다.

MBC 시사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전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숙제는 최근까지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2월, 방송문화진흥회의 MBC 사장 면접 속기록에서 김장겸 현 MBC 사장과 권재홍 현 MBC플러스 사장(당시 MBC 부사장)이 'PD저널리즘'을 폄훼하며 '시사교양국을 보도본부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밖에 3단계로 설정된 MBC 정상화 방안에는 MBC 민영화 시나리오도 담겨있었다. 1번 계획은 지 계열사들의 광역화하고, 이후 지방사를 매각해 그 재원으로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매입한 뒤 우리사주와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 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최승호 PD는 "당시 공정방송 노조에서 '민영화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라면서 우리사주 조합으로 민영화되면 MBC 구성원들은 떼부자가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유포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국정원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최 PD는 "모든 일들이 다 연결돼 있다는 추정이 든다. (MBC 내부의 누군가가) 국정원 계획과 실행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 문건의 내용은 국정원이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 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MBC 내부의 공범자들과 만나 상의하고 전략을 논의했을 거고, 이 문서는 그 내용을 정리한 거다"라면서 "분명 국정원 요원들의 개별 접촉 보고서가 있을 거다. 누구를 언제 어디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물론, 실행이 늦어진 계획에 대해서는 채근을 하고 변명을 한 기록들이 다 국정원 서버에 남아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서버에 남아있는 기록을 검색하고 꺼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확보한 문건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조금 실망스러웠다. 과연 이 정도로 방송 장악에 대한 적폐청산이 이뤄질 수 있나 싶다"라는 말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 PD는 "검찰에 가서 새로운 문서를 보기는 봤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기대보다 검찰이 확보하고 있는 자료가 너무 부실했다"면서 "국정원 적폐 청산 TF 측에서 제공하는 자료들 외에도 조금 더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문건 생성 날짜-파기 날짜에 주목

과거 PD수첩 제작진인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 유성호

김환균 PD가 주목한 것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이 생성된 시기와 파기 날짜다. 문건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튿날인 2010년 3월 2일 작성됐으며 '대외비, 3월 4일 파기'라는 문구가 박혀있었다고. 기밀문서라고는 하지만 그 보관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

이에 대해 김 PD는 "이건 김재철 사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다. 문건을 보고, 내용 숙지한 다음에는 파기하라는 뜻이다. 때문에 이 문건은 반드시 김재철 사장에게 직접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현재 공개된 문건은 국정원 서버에 남은 것으로, 김재철 사장에게 전달된 것은 이미 파기됐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김 PD는 "국정원은 김재철 사장에게 'MBC 파괴'라는 숙제를 줬고, 김재철은 이를 빠짐없이 실행했다. 물론 문건에는 2년 안에 3단계로 설정된 계획을 실행하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늦어졌고,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해서 실행됐다는 게 내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이우환 PD는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국정원이 MBC나 공영방송을 보는 시각이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PD수첩> 제작진을 간첩 보듯 했다"고 기막혀 했다. 당시 <PD수첩> 소속 PD들의 실명 옆에는 '좌편향', '친북좌파성향'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이 PD는 "프레임을 잡고 (우리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묘사할 수는 없었을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 PD는 "처음에는 그저 '블랙리스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문건을 들여다보니 'MBC와 KBS, 두 공영방송사를 어떻게 정권의 입맛에 맞게 사유화할까?'라는, 일종의 '방송 사유화 전략'이더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7년 간 MBC 경영진이 벌인 여러 악행들이 그들의 판단이 아니라 국정원, 혹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결국 MBC 경영진은 정권의 아바타가 되어 입만 뻥긋댄 거다. 그게 우리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어 "며칠 전 김장겸 사장 출근길에 (김연국) 노조위원장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때 김 사장이 '지금 민주당 문건대로 잘 되고 있는데 왜 그리 조급해?'라고 하더라. 정말 경악스러웠는데, 이제 보니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은 문건대로 MBC를 장악하고, 그 내용을 실행한 거였다"며 허탈해 했다. 

정재홍 작가 "정부 비판 아이템은 무조건 킬"

과거 PD수첩 제작진인 정재홍 작가 ⓒ 유성호

<PD수첩> 흔들기에서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재홍 작가는 2008년부터 <PD수첩>의 작가로 일했으며, 사측이 <PD수첩> 작가를 전원 해고한 2012년 7월 25일, MBC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의 해고는 2010년 작성된 문건에 '<PD수첩> <시선집중> 등 좌편향 프로그램 제작진의 경우 PD는 물론 프리랜서 작가, 외부 연출자까지 전면 교체'라는 내용으로 이미 2년 전 지시된 일이었다.

정 작가는 "당시에는 경영진이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거나 출세하기 위해 <PD수첩> 작가진을 탄압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아니었다. 문건 그대로 '하수인'들이었다"고 비난했다. 

문건에 '대외적 상징성이 높은 폐지가 부담스러운 <PD수첩>은 사전심의확행 및 PD 교체로 공공성 제고'라고 적힌 부분을 언급하며, "돌이켜보니 당시 팩트체커팀이 신설되고, 한 번도 <PD수첩>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팀장으로 왔다. 이들은 정부 비판적인 아이템은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제주도 7대 자연경광' 선정으로 떠들썩했던 당시, 정재홍 작가는 사기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아이템을 냈지만, 팀장은 '정재홍씨는 정부 잘되는 일을 왜 못 보냐. (사기극인) 증거가 있냐'며 잘라냈다. 자연경광 주도 단체가 사무실도 없는 단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다시 보고하자, 당시 팀장은 담당 PD의 기획안을 갈기갈기 찢으며 쓰레기통에 처박았다고. 정재홍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4대강,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등 노동, 통일, 정부비판아이템은 모두 막혔다. 남북경협 중단을 취재하던 이우환 PD는 드라마 세트관리장으로 쫓겨났기까지 했다"면서 "당시 정권은 '잃어버린 10년'이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파들의 영구집권을 위해 언론을 철저히 장악해야겠다는 '반헌법적인 발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 문건은 원세훈 원장 차원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문건이라고 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시중 당시 방통위원장 등 권력 수뇌부가 지시해 만들어진 문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검찰 확보 문건 부실..."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과거 PD수첩 제작진인 이우환 PD ⓒ 유성호

국정원의 문건도 나왔고, 피해 사례와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이에 중간고리가 없다는 점에 있다. 국정원 문건이 공개됐음에도, MBC 경영진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의 문건이나 지시를 직접 들었거나, 전달한 누군가. 혹은 이행한 누군가의 증언이 필수적이다.

최승호 PD는 '그 누군가'로 엄기영 전 사장을 꼽았다.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MBC 구성원들에게 많은 실망을 주기는 했지만, MBC 구성원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 '마지막' 사장이었고, 그 이유로 뉴라이트 방문진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사장직에서 물러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 PD는 "그렇게 소극적으로 계시면 안 된다. 신경민 의원의 <뉴스데스크> 하차, 손석희 사장의 <백분토론> 하차 당시 엄기영 사장이 직접 전화해서 알렸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다. 증언할 부분이 있으실 거라 믿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이우환 PD는 "검찰도 조만간 엄기영 사장을 부를 것 같더라. 검사가 엄 사장 전화번호를 물어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전 <PD수첩> 제작진은 입을 모아 "검찰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발본색원해야한다. 필요하다면 국정원을 압수수색해서라도 끝까지 수사해야 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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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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