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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투쟁은 강렬한데... KBS는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어게인 KBS①] '이정현 녹취록' 보도 주장으로 보복성 인사 당한 KBS 정연욱 기자

17.09.20 15:07최종업데이트17.10.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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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파업을 위해 KBS 새노조가 다시 깃발을 들었습니다. 'RESET KBS!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KBS 구성원들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고대영 사장 퇴진과 무소불위의 KBS 이사회를 향한 싸움. 이번에는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KBS 구성원들이 직접 시청자 여러분에게 전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연속으로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들의 꾸준한 싸움을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첫번째 글은 이정현 녹취록 보도를 주장하다 보복성 인사조치를 받았던 KBS 정연욱 기자의 글입니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영화 <공범자들> 속 KBS와 MBC의 투쟁 양상은 사뭇 다르다. 일단 MBC 쪽이 훨씬 강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스링크를 청소 중인 이우환 피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를 회고하며 눈물을 터뜨리는 김민식 피디, 그리고 지난 세월 '공범자들'에 맞서온 피로와 상처를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용마 기자까지. 각자의 스토리가 너무도 드라마틱한 데다, 후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면 KBS의 분량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2008년 8월 8일, 사내로 진입하는 경찰들을 온몸으로 막는 집단적인 악다구니만 떠오른다. KBS의 싸움은 뒹굴고 짓밟히고 비명이 터지는, 수사나 은유가 아닌 진짜 '싸움'이었다. 주연급 스타는 없지만 혼연일체가 된 단역들이 한 몸처럼 뭉쳐 다니며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MBC가 화려한 개인기의 경연인 <오션스 일레븐>이라면, KBS는 모두가 뒤엉켜 생사를 넘나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랄까.

▲ KBS 노조 총파업 “고대영은 물러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MBC는 <오션스 일레븐>, KBS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바로 그 전투신에서 갈비뼈 골절의 부상을 입었던 김현석 기자는 이듬해인 2009년 1월, 회사로부터 '파면'이란 최악의 징계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에 맞선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조직을 주도한 혐의였다. 영화 속에서 경찰을 동원한 유재천 KBS 이사장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던 성재호 기자는 김현석 기자와 함께 '해임' 징계를 받았다.

당시 KBS 기자협회는 두 기자에 대한 징계에 즉각 반발해 '무기한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서슬 퍼런 이명박 정권 초반이었음에도, KBS는 제작거부 돌입 10시간 만에 징계 재심을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5시간 뒤 파면과 해임을 각각 '정직 4개월'과 '정직 1개월'로 조정했다. 단 한 사람의 고통이라도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일사불란한 연대의 승리였다.

내가 8년 차 기자이던 2016년 7월, 내게도 별안간 스타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이 발단이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개입을 KBS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건인 양 외면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고문이었다. KBS 보도본부의 수뇌부들이 사조직을 만들어 내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첨부했다. 고대영 사장의 심기와 의중을 알아서 헤아리고자 발 벗고 나선 일부 평기자들의 '유연한 처신'도 은근히 고발하고 싶었다.

▲ 세월호참사,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증거 공개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권우성


당시 "이정현 녹취록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연욱 기자를 제주로 발령 보냈다는 한겨레 신문 보도. ⓒ 한겨레


KBS에서 스타가 되다

7월 13일 기고문을 게재했더니 7월 15일 제주총국으로 발령이 났다. 본사 경인방송센터에 소속된 내게 사흘 뒤인 18일부터 제주도로 출근하라는 명령이었다. 격앙된 선후배들과 당사자인 나를 향해,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게 당연한 자세가 아닙니까?"라며 조롱의 언사를 성명서란 이름으로 쏟아냈다. 김현석, 성재호 선배가 겪은 고통에 비할 바 아니지만, 사측의 전례가 없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처사가 안팎의 공분을 샀다. 스타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일단 꽤 유명해졌다.

넉 달 뒤 '인사무효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해 본사로 복귀할 때까지, 보도본부 선후배들은 매일 아침 부당인사 철회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이어갔다. 제주에서 제작한 리포트가 어쩌다 본사 뉴스에 나가면 동료들로부터 카톡과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제주로 휴가나 출장을 온 기자들이 매주 연락을 하는 통에 시간을 쪼개야 할 지경이었다. 나를 외롭게 방치하지 않겠다는 집단적인 기운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일개 8년차 기자인 네가 이렇게 뜬금없이 스타가 되려는 상황을 우리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거대한 의지였는지 모른다.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KBS 제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연욱 기자를 응원하는 동료들의 피케팅을 담은 소식지. ⓒ 정연욱


평소 각별히 친했던 선배가 제주를 방문해 함께 나지막한 오름을 오르는데, 앞서가는 살가운 뒷모습에 수많은 선후배들의 존재감이 겹쳐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늦은 밤까지 나와 함께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내내 실없이 웃던 그 선배는 급기야 몇 달 뒤 본인이 몸소 징계를 받으며 내 유명세를 위협했다. KBS 자회사가 투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을 '조지라는' 지시를 거부한 대가였다. 이번에는 내가, 그 징계를 막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모두들 이런 기분이었구나.

KBS인들의 이번 타깃은 '고대영-김장겸' 세트

KBS는 주연도 조연도 없다. 누군가에게 주연급이 감당해야 할 시련이 닥쳤을 때, 그래서 그 누군가가 시련을 견디며 유명세를 타려는 순간, KBS인들은 여지없이 모두 일어선다. 감히 네가 스타가 되려 하느냐며 꾸짖듯이, 매섭게 촘촘한 보호대형을 형성한다. 상황이 매번 이럴진대, 사측은 해고와 파면의 칼날을 휘두를 엄두를 도무지 낼 수가 없다.

▲ KBS 고대영 사장 퇴진 요구하는 정연욱 기자 KBS 정연욱 기자가 지난 1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방송의 날 기념행사장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퇴진 고대영'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 KBS 노조 총파업 “고대영은 물러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KBS-MBC정상화 시민행동과 KBS-MBC노조 조합원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정부의 국정원 블랙리스트 원문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최승호 감독은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KBS의 공범자들은 수신료를 받는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MBC의 공범자들보다는 덜 뻔뻔하더라"며 부러워했다. 천만의 말씀. 누구에게든 우직하게 똘똘 뭉쳐 덤벼온 유구한 전통이 우리의 비법이다. 그러고 보면 김장겸 MBC 사장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적수를 맞닥뜨린 셈이다. KBS인들의 이번 타깃은 '고대영-김장겸' 세트이기 때문.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여의도와 상암동을 함께 노려보고 있다.

* 본문에서 사용했던 '해고 스타'란 표현은 과거 저를 겨냥했던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성명서 가운데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라"는 대목을 MBC 상황에 빗댄 반어적 표현이었습니다. 부당한 인사와 징계로 고통 받는 구성원들에게 이름값 운운하며 조롱의 언사를 서슴지 않는 행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해고'라는 극단적인 탄압의 대상이 된 MBC 기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감당해야할 아픔과 슬픔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쾌감을 느끼신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부디 제 글의 진정성을 이해해주시고, 공영방송 파업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저의 고심도 함께 이해해주시길 송구스런 마음으로 요청드립니다. 본문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했듯 파업에 나선 KBS 언론인들은 MBC의 동료들과 공동의 전선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은 적 없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흔들림 없이 싸우겠습니다.

KBS 제주로 발령난 정연욱 기자 ⓒ 정연욱


* KBS 정연욱 기자는 2009년 2월 KBS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순천국 과학재난부, 뉴스제작2부를 거쳐 2016년 7월 "이정현 녹취록을 보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협회보 기고문(침묵에 휩싸인 KBS... 보도국엔 '정상화' 망령 http://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9581)을 쓴 뒤 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받았다가 그해 11월 부당전보 무효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해 경인방송센터에 있습니다. 

정연욱 공영방송 총파업 공정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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