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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통령 한 번에 까는 통쾌함, 그 중심에 이 배우 있다

[리뷰] 매끄러운 한 편의 역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그리고 톰 크루즈의 매력

17.09.20 15:03최종업데이트17.09.2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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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I 코리아


2015년의 추억

2015년 여름의 일이다. 한창 영화에 빠져있던 시기. 할리우드 배우들이 내한행사를 왔다 하면 왕복 4시간의 수고도 마다하고 곧장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던 시기. 그 시기에 나는 어떤 기업이 공군의 참모총장 4성 장군의 군복을 벗겨가면서까지 허가를 받았다는 의혹이 무성했던 그 장소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톰 크루즈를 기다렸다.

사람들로 북적였던 1층 로비에서 기다려서는 톰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난 건물 밖 프레스 라인처럼 생긴 줄 앞에서 '나는 에어컨 없는 곳에서 톰 크루즈를 기다릴 정도의 열정적인 팬이지'라는 이상한 만족감에 사로잡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세 시간의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보안상의 이유인지, 동일한 검은색 BMW 차량 세 네 대가 줄지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뛴 건, 정말 수능 시험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그 순간, 미리 준비해갔던 노트에 아주 순수하기 짝이 없는 '아이 러브 유, 톰. 아이 쏘 유어 무비.' 정말 10년 넘게 정규 영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짧은 영어를 적었다. 그리고는 차들을 향해 미친놈처럼 노트를 들고 흔들었다.

톰 크루즈가 아닐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흔드는 거지.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서 있던 곳은 차량이 지나다니는 차량통행용 접근 금지 라인이었기에, 수많은 검은 색 BMW 차들은 쌩쌩 내 옆을 지나갔다. 내가 이상한 곳에 서 있었구나. 뭐 그래도 적어도 저기 중에 한 대에는 톰 크루즈가 있겠지.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3m 앞 BMW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문이 열렸다. 톰이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내렸던 톰은, (물론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절대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 자리에는 온전히 나 혼자 기다리고 있었기에, 톰 크루즈가 정말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는 건 합리적인 추론 과정의 결과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곧장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톰 크루즈를 직접 본 20초의 순간은 2년이 지난 아직도 가슴 뛸 정도로, 나에게 강렬한 기억이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으며, 그는 아직도 내가 실제로 본 가장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톰 크루즈의 다른 매력 선보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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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톰 크루즈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길게 적은 건 이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가 톰 크루즈의 2000년대 들어선 작품 중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할 만큼 잘 만든, 웰 메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지극히 보편적인 일상이 될 정도로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베리 씰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70~1980년대 미국 CIA, 마약단속반, 관세청, 그리고 마약 카르텔과 같이 일했던 주인공의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충분한 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들이 많다. 하지만 실존 인물을 다루는 이야기는 일단 결말이 이미 공개되었다는 점, 그리고 1970~1980년대 정치외교의 역사를 풀어내야만 전체적인 맥락이 이해가 가능해지는 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그냥 지루하게 역사 공부를 위한 교육 방송의 하나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가진다.

그래서 더그 라이만 감독은 철저하게 시장에서 검증된 편집방식으로 지루한 정치외교사를 흥미롭고 매끄럽게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실화기반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미국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다룬 <포레스트 검프>가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유다.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여러 시대를 세련되고 부드러운 편집 점의 연속으로 넘기는 연출력은 위 두 영화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의 백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살해당하기 직전의 주인공의 해설로 진행되는 서사구조 방식은 마치 옛날 전래동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하고 흥미로운 감상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가 재미있다는 점이다. 일단 능청스러운 미소를 장착한 배우 톰 크루즈의 넉살 좋은 연기는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만든다. 대역 없이 직접 빠른 속도의 비행기 운전을 해내는 톰 크루즈의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함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지는 '블랙 유머', '블랙 코미디'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블랙 코미디의 시원함 그리고...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베리 씰이 보석으로 석방되는 순간, 베리 씰을 이용하고자 석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다. 베리 씰을 마약 카르텔과 중남미 공산정부에 반기를 드는 반군을 지원하게 만드는 CIA의 지시는 미국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서 출발한다. 이후 베리 씰의 성공사례를 참고하여 미국 정부가 진행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영화는 실제 기자간담회 영상을 삽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뻔뻔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비판한다.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이렇게 충실하게 영화적 문법으로 은은하게 비판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너무 노골적이어서 마치 뉴스 보도와 같은 한국의 여러 정치 드라마, 영화 콘텐츠들이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주기보다는 정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나, <아메리칸 메이드>는 2000년대 들어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잭 리처> <엣지 오브 투모로우> <미이라> 등 액션 배우로만 소비되었던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가 이전에 <7월 4일생> <제리 맥과이어> <어퓨굿맨> <레인맨> 등 골든글로브 수상자이자 아카데미에 후보로 오를 만큼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였단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내게 소중하다. 톰 크루즈에 대한 개인적인 팬심이 있는 관객들은 아마 나와 동일한 이유로 <아메리칸 메이드>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비롯한 톰 크루즈의 수많은 팬은 분명 똑같은 대사를 들으며 애잔함을 느꼈을 것이다. 극 중 최연소 TWA 항공 조종사인 베리 씰에게 '보이'라며 톰 크루즈를 신출내기 조종사로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대사는 사실 무려 30년 전 <탑 건>에서의 톰 크루즈에게나 어울릴 법한 대사다. 물론 제아무리 톰 크루즈라지만, 만으로 55세가 넘은 톰 크루즈는 더 이상 '보이'가 아니니까. 톰 크루즈를 '보이'라고 부르는 이 장면은 그가 젊은 배역으로 연기하고, 다양한 배역을 맡아 연기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면임이 확실하다. 앞으로 몇 편 남지 않았을 그의 차기작들이 더욱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번 <아메리칸 메이드>라는 영화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순한 액션 스타에서 배우 톰 크루즈로 되돌아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와 동시대에 사는 영화 팬으로서,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는 팬으로서, 마지막은 그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제가 월드 프리미어 행사로 유럽 전역을 돌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오시더니, 팬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자기 따님을 데려오시는 거예요. 본인도 팬이라고. 그리고는 어린 딸도 제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영화만이 가지는 신비하고도 매력적인 힘을 다시금 느꼈어요. 제가 배우라는 직업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정말 축복이자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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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세무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입생 첫 수업 과제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감명 받은 바람에,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동기생들과 다르게 프랑스로 떠나, 바게뜨와 크로와상만 주구장창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프랑스 빵이 정말 맛있다는 점과 토마 피케티를 매일 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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