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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MBC 김장겸 사장 패러디' 제가 만들었습니다

[어게인 MBC⑥] MBC 실상 알리려 '마봉춘세탁소' 운영자 된 조의명 기자

17.09.10 19:47최종업데이트17.09.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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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여섯 번째 글은 MBC 유배자와 징계자들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마봉춘세탁소' 운영자인 조의명 기자의 글입니다.  

마봉춘세탁소 ⓒ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라는 유치한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몇 달 째 몇몇 동료들과 몰래 운영해 오다가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걸렸다'.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일일이 답하려면 너무 긴 얘기라, 잠시 이 지면을 빌려 경위를 설명하고자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를 보다가, 엉뚱한 장면에서 혼자 울었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대륙 끄트머리까지 내몰린 연합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독일 폭격기의 공습이 떨어진다. 변변한 저항도 못 한 채로 웅크려 있다가, 폭발음이 귀에 울리기도 전에 방금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전우가 넝마 같은 주검으로 나뒹구는 광경을 본다.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다만 폭탄이 내 앞으로 떨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이는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그랬다. 나는 이명박 정권 이래 10년 가까이 참혹한 언론 장악의 전장이 되어버린 MBC에서, 여태까지 살아남은 부끄러운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집회장면 ⓒ 유성호


나는 부끄러운 생존자였다

파업 이후 여덟 명의 기자 동기 중 세 명이 현업에서 쫓겨나는 유배를 당했다. 나 역시 2012년 1월을 마지막으로 보도국에서 내몰렸지만, 그래도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팀에서 취재를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장인 김장겸씨가 국장, 본부장을 잇달아 역임하며 완벽하게 황폐화시켜놓은 보도국에 비해 변방으로 불리는 <시사매거진 2580>은 차라리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물론 < 2580 >에서도 열 명 가까운 선배와 동료들이 어김없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다가, 혹은 겁도 없이 날선 비판 보도를 하다가 말 그대로 '썰려 나갔지만', 비록 목이 날아갈지언정 수치스러운 보도를 내 입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참 비루한, 정말 최소한의 자존심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4년 8개월을 운 좋게 버텼다. 그리고 지난 3월 결국 '내 차례'가 왔다.

1000일 넘는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인양되는 시점이었다. 급히 현장을 다녀와 기사를 썼다. 어떻게 인양이 이뤄졌는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려야만 했던 건지, 기다려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고통은 어땠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 고통 받아 온 이들에게 늦게나마 진실과 위안을 전해줄 수 있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특별할 것 없는, 나쁘게 말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기사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기사조차 게이트키핑을 통과할 수 없었다. 방송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까지 끝없는 난도질이 이어졌다. 인양을 지연시킨 실책과 방임에 대한 지적을 축소하고, 지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의 인터뷰를 삭제하고, 끝내는 사고 원인을 규명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조차 지우라고 지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 자체를 결방시키겠다는 협박이었다. 지시를 내린 사람은 이후 < PD수첩> 결방 사태를 야기한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껏 내가 살아남아 온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조금은 비겁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선택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비겁한 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내 동료들이 그랬듯 기꺼이 수난을 감내해야 할 것인지를.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 마봉춘세탁소


사직서를 쓰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하던 노트북으로 사직서를 썼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식이 간단해서 조금 놀랐다. 양심적으로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시사항은 무시하고 그나마 멀쩡한 상태의 편집본을 임의로 만들어놓고 난 뒤, 퇴근해서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어쩌면, 나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아내는 고맙게도 탓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대신 도망치지 말고, 차라리 싸우다 쫓겨나라고 했다. (부인 말 들어서 실패하는 사람 없다고 하기에) 사직서를 내는 대신 조리돌림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싸워 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녹화가 있던 방송 당일 출근을 거부하고 나름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미 만들어 놓은 멀쩡한 기사를 방송에 내든가, 아니면 차라리 국장 말처럼 결방을 시키라고. 수십 통의 전화가 오고, 국장으로부터 몇 번의 타협안이 날아왔지만 눈 딱 감고 버텼다. 결국 다행스럽게도 방송은 간신히 욕은 먹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평범하게' 나갔다. 방송을 본 시청자 누구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음날 경위서를 내고, 얼마 뒤 '무단 제작 거부, 항명, 사내질서 문란' 혐의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변론 기일을 앞두고 대선이 치러졌고, 정권이 바뀌었다. 덕분에 부조리한 회사 생활을 만화일기로 쓴 것만을 가지고 직원을 해고시키던 회사의 칼춤 수위도 그때는 잠시 한풀 꺾였던 것 같다. 항명이라는 중한 죄목을 달고도 가장 가벼운 징계인 '주의'만 받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는 참 운이 좋다!)

영화 <공범자들>의 마지막 크레디트에는 2백 명 가까운 해고, 부당전보, 징계자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지만, 거기에 내 이름은 없다. 경징계를 제외한 명단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너무 많아서일 거다. 묘한 기분으로 징계 통보를 받아들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세상도 모르고, 여태까진 나도 잘 몰랐던 MBC 구성원들의 소리 없는 분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어 왔을까. 현 경영진의 생각과는 달리 대다수 국민들은 절대로 어리석지 않기 때문에, 추악한 뉴스가 전파를 타면 세상이 모두 안다. 반면 그 사이사이 흘러가는 평범한 기사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평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이, 지난 몇 년 MBC에서는 희대의 특종이나 세상을 놀라게 할 대단한 단독보도가 아니라 그저 멀쩡한, 평범한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누군가 몇 번이고 목을 걸어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황당한 이야기다. 밖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마봉춘세탁소가 영화 <공범자들>을 패러디해 만든 <파업자들> ⓒ 파업자들 화면캡처



예전 수습기자 시절 달동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기억한다. 허름한 술집 안에서 소주 값 3천 원 때문에 칼부림이 나고 사람이 죽었다. 지난 몇 년 우리의 투쟁은 그렇게 사소하고, 관심 받지 못하고, 별 볼일 없이 처절하기만 한 몸부림이었다. 수치스러워서 세상이 알아주길 기대할 수조차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날 밤엔 최악의 보도가 나갔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왜 그런 곳에 남아 있냐고. 떳떳한 기자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정상적인 보도를 하는 곳으로 진작 옮겨가야 했던 것 아니냐고. 사실 불러주는 곳도, 능력도 없었던 탓이 크긴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가 함께 지탱해 온 돌덩어리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노역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벌을 받는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떨어지니, 참 무의미한 일이다.

이젠 아무도 기억 못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네 번의 파업 이후 남은 MBC 구성원들은 패배의 대가로 각자의 마이너스통장 빚더미와 사측이 제기한 195억 원이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해직된 동료들이 언젠간 돌아와야 할 MBC를 최대한 원래의 모습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버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2012년 파업의 마지막 구호는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였다. 비록 당당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질기고, 독하게들 버텨 왔다. 스스로 의미 없는 일이라고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바위 뒤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면 남은 이들의 어깨 위로 그만큼의 무게가 더 쏟아질 거라는 걸 알았다. 스케이트장 같은 유배지에서 나보다 수백 배 더 큰 모욕을 참고 견뎌왔던 선배들도 어쩌면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승리하진 못했지만, 그래서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 끝까지 버텨보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MBC 내부의 저항을 알리고 싶었다

이 길고, 무겁고, 비참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취재 현장과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난, 냉소, 그리고 이젠 욕할 가치조차 없다는 무관심에 정작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공범자들'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한줌 맹신자들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했으니까. 부끄러움과 좌절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외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울림을 얻기엔 언제나 미약했다. 구성원들은 연이어 기고를 쓰고 시위를 하고 성명을 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조금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마침 잘 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소재가 있었다. (소위 '인생의 흑역사'라 불러야 할) 대학생을 빙자한 백수 시절, 고스트라이터 흉내 내며 장난처럼 만들던 패러디물 제작이었다.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영화 <몰락>의 자막을 회사 상황에 맞춰 패러디해 개인 페이스북 계정과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두어 곳에 올렸다. 웃으라고 만든 자막이지만, 만들면서 한 번도 웃지 못했다. 멀리서 볼 때의 희극은 사실 당사자에게 비극이니까. 동료들은 걱정하며 글을 내리라고 했다. 징계 통보 잉크도 안 말랐는데 이러면 정말 큰일 난다며 다들 염려했다. 솔직히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처럼 차라리 큰일이 날만큼 많이들 봤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바로 다음날 선배 김민식 PD의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조용히 묻혔을 내 패러디물도 덕분에 덩달아 입소문을 타고 이곳저곳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사흘도 안 돼 조회 수가 5만 명을 넘어섰고, 내가 올린 적 없는 커뮤니티에 'MBC 사장실 근황'이란 제목으로 영상이 떠돌아다녔다. 비록 경박한 B급 개그물일지는 몰라도 MBC에 대한 기대를 접고, 관심을 거둔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언론장악의 폐해와 방송 적폐들의 실체를 알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그때 처음 생겼다. 기술도, 재주도, 유머 센스도 없다보니 한 달 동안 매일 퇴근하고 새벽까지 이런 저런 괴상한 실패작들만 혼자 만들다가,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던 유능한 동료들의 능력에 기대기로 하고 본격적인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유배자와 징계자 다섯 명이 모여 세탁소 간판을 처음 올렸다.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 마봉춘세탁소


[관련기사] 웃긴데 처절한, MBC구성원들의 패러디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 폐업할 때까지 관심 거두지 말아 주시길

근사하고 '있어 보이는' 명칭 대신 <세탁소>라는 이름을 정한 건 MBC는 포기하고 폐기해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세탁물처럼 깨끗이 빨면 다시 좋은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담고 싶어서였다. 개업 두 달이 지난 지금 마봉춘세탁소의 누적 도달(조회)수는 500만을 넘어섰다. 정의로운 선후배 동료들의 외침, < PD수첩>을 불씨로 시작된 결사적인 제작거부 투쟁, 영화 <공범자들>이 국민들에게 준 깊은 울림... 그들의 용기에 힘입어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열심히 보태며 함께 싸운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벅차다. 날이 갈수록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장겸 이름 석 자가 수시로 포털 검색어에 오른다. 절망하는 심정으로 사직서를 쓰던 반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탁소 형편도 좋아졌다. 지난 4일 총파업 이후 기라성 같은 예능, 교양PD들과 그래픽 디자이너, 카메라기자 동료들이 속속 마봉춘세탁소에 합류했다. 시작은 비루한 아마추어였을지 몰라도, 이젠 정말 참신하고 기발한 콘텐츠들을 쏟아낼 수 있는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노골적 홍보라고 욕하셔도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폐업'이란 건 변함없다. 머지않아 MBC가 정상화되고 나면 세탁소의 겁 없는 비판 정신은 고스란히 뉴스가 이어받을 것이다. 끊임없이 '약물 복용' 의혹이 제기되는 재기발랄함은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다.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며 응원한다는 한 줄 댓글에 감격해서 펑펑 우는 지금 우리의 진심이, 지난 전성기보다도 더 나은 공영방송을 시청자들께 돌려주기 위한 첫 번째 머릿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대해 주셔도 좋다. 아니,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제발 조금만 더 기대를 버리지 말고 기다려주시기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달려가고 있으니까.

MBC 마봉춘 세탁소 운영자 조의명 기자 ⓒ 조의명


* 조의명 기자는 2008년 12월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수도권부, 선거방송기획단을 거쳤으며 지난 8월 제작 거부 선언 전까지 <시사매거진 2580>팀에서 일했습니다.

MBC 총파업 조의명 마봉춘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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