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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입사가 꿈이었는데... 벽만 보고 앉아있다 해고"

[어게인 MBC⑦] '유배툰' 올렸다가 해고됐던 권성민 PD

17.09.14 10:04최종업데이트17.09.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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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일곱 번째 글은 정직 후 유배지에서 '웹툰'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복직한 권성민 PD의 글입니다.  

권성민 PD는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 권성민


어릴 때부터 MBC를 좋아했다. 입사 지원서를 쓸 때 다른 방송사의 공채도 열려있었지만 MBC만 지원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운 좋게 입사했다. 입사하기 전날, 노동조합은 파업을 시작했다. 첫 출근한 회사는 전운으로 가득했고 생애 첫 사령장은 어느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받았다. 조합 가입 자격이 없는 수습 기간 동안 선배들이 없는 텅 빈 회사에서 바로 방송을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수습이 해제되자 파업에 동참했고, 대학등록금도 내 손으로 벌어 다녔던 나는 우습게도 내로라하는 방송국에 입사한 뒤 처음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지원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싸운 뒤 같은 해 7월 파업을 접고 방송에 복귀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어긋나있는 회사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MBC에 입사했지만

입사 원서를 낼 때 회사의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머지않아 해결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 생각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난 조합 집행부도, 연수가 끝날 쯤 파업도 끝날 테니 신입사원들은 크게 마음 쓰지 말라는 말을 했었다.

그보다는 사실, 정말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입사 이후에 대한 고민도 막연할 일이었다. 어찌어찌 가게 된 최종면접 전날에는, 너무 싫은 김재철 사장이 면접장에 나올 텐데 표정관리 못 하는 나는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 면접 당일, 정말 표정 관리가 안 됐는지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MBC는 좋은 회사야. 권성민씨 같은 사람이 내가 싫으면 나가라고 싸울 수도 있는 회사라고"라는 말부터 했다. 속마음이 보였나 뜨끔 했는데, 그러고도 어떻게 합격을 했다. 그 말을 했던 김재철 사장은 정말로 자기 나가라고 싸운 조합원들을 자르고 쫓아내고 징계했지만.

그렇게 누군가는 해고되어 있고, 누군가는 유배되어 있고, 누군가는 정직을 받으며 계속 싸우고 있는 MBC에서 내 첫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그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또 누군가는 유배되고, 누군가는 정직을 받으며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 권우성


그 모든 시간이 답답하고 슬퍼서, 답답하고 슬프다고 얘기한 2014년 5월, 이번에는 내가 6개월 정직을 받았다. 정직이 끝난 같은 해 12월에는 수원의 비제작부서로 다시 쫓겨났다. 매일 아침 9시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수원의 사무실에 가서, 아무런 업무 지시도 없는 빈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2015년 1월 해고되었고, 이듬해 5월 1년 반 만에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했다.

그리고 2017년 9월,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5년 전보다 더 높은 강도로.

6개월 정직, 비제작부서, 해고, 복직... 그리고 다시 파업

수원으로 유배되어 있을 때, 보도국에 있다가 쫓겨난 기자 선배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밖에서 내가 보아온, 빛나는 MBC를 만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그 선배처럼 쫓겨나 있었다. 참담하게 망가진 뉴스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 일상이 된 지도 몇 년째였다. 나는 그 선배가 기자로서 망가진 자존심을 토로할 줄 알았다. 앞서가는 뉴스를 이끌었던 주역으로서 회한을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선배의 괴로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그 자리에서 제대로 보도를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 생각에 짓눌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빼앗긴 마이크는 망가진 자존심이 아니라 지독한 부채감이었다.

내가 해고자의 신분으로 지내는 동안, 그 '해고자'라는 이름 덕분에 이런저런 일들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해고자'라는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코 같은 무게의 '해고자'가 아니었다. 나의 해고는 크고 튼튼한 노동조합이 법정 싸움도 함께 해주고 사회의 관심도 받았지만, 대부분의 해고자는 부당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고 함께 싸워줄 노동조합도 없었다. 같은 '해고자'로 불린다는 사실이 더없이 무거웠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다시 파업에 임하는 우리의 싸움도 그렇게 무겁다. 이 사회에는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싸움들이 있다. 그 싸움의 대부분은 외롭다. 거리에 앉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쳐도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노동조합처럼 함께 싸울 이들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더 많은 이들은 홀로 그 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조용히 침묵을 삼킨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싸움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

나의 해고가 받은 관심도, 우리의 싸움이 받는 응원도, 단순히 이름이 잘 알려진 큰 방송사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렇게 부당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그 부당함을 겪은 이들이 제대로 맞서지 못할 만큼 기울고 구멍 난 이 사회를, 언론이 대신 감시하고 대신 찾아가 달라는 사람들의 명령이다. 그러니 우리가 받는 관심과 응원은, 그 무게만큼의 부담이고 책임감이다.

쫓겨난 기자 선배의 빼앗긴 마이크가 망가진 자존심이 아니라 지독한 부채감이었던 것처럼, 지난 5년 동안 MBC 구성원 각자가 버티며 겪어온 절망과 분노는 하나하나 새 싸움의 발판으로 쌓여왔다. 거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응원의 무게까지 끌어안고 파업을 한다. 이길 것이다. 

MBC예능국 권성민 PD. ⓒ 권우성


* 권성민 PD는 2012년 MBC에 입사해 <섹션TV연예통신><위대한 탄생 시즌3><무릎팍도사><나는 가수다> 등의 조연출로 일했다. 2014년 6월, 커뮤니티 게시판에 MBC의 세월호 보도를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6개월 정직 징계를 받았고, 2015년 1월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명 '유배툰'을 올렸다가 해고됐다. '정직 및 해고 무효소송'에서 승소해 2016년 6월 복직한 후에는 <듀엣가요제><오지의 마법사> 등을 담당해왔다.

MBC 총파업 권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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