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글에 감동받은 학생들의 시, 세대를 잇는 책"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⑮] 전주독서대전에서 84세 한상현 작가의 <소풍>을 만나다

등록 2017.09.04 09:28수정 2017.09.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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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동란이라는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네 평범한 어머니. 할머니의 속살거리는 이야기가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돼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리고 있는 2017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9월 2일 첫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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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 소녀작가 한상현의 '소풍' 표지 속살거리는 우리네 평범한 할머니 어머니의 이야기를 여고 소녀들의 글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기획으로 탄생한 어릴적 소풍같은 책 '소풍'의 표지 ⓒ 인포피아

화제의 책은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의 출판문화를 선도하는 ㈜인포피아에서 출간된 <소풍>.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내느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84세의 저자 한상현(전주시 진북동)씨와 '연탄불 시인' 안도현씨의 사인회가 2017독서대전에서 열렸다.


평범하기만 했던 저자가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60대부터 귀가 어두워져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을 안타깝게 여긴 손녀딸 권민경(30, 전주시 중노송동)씨가 스마트폰 메신저를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선물하고 가르쳐 드린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던 스마트폰을 손녀의 애정 어린 지도로 익혀 오남매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스마트폰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녀들을 비롯한 사람들과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면서 교수 출신 남편과 생활하며 가져야 했던 지적 허기를 채워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소유하고 누리게 되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귀가 어두워 소통이 어려웠던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 책에 실린 유일여고 희망나비 정현선 양의 다음 시로 알 수 있다.

스마트폰

너는 내게로 와 귀가 되었네.
가족의 말소리를 들어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어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네.
고목나무에 꽃이 피어
사랑하는 가족에 웃음꽃이 피어

너는 내게로 와 행복이 되었네
너로 인해 글을 쓸 수 있어
소녀의 마음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어

너는 나의 햇살이 되어
얼어있던 말들을 녹이고
행복이라는 씨앗을
싹 틔우게 했네.
- 정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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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의 저자 한상현, 연탄불의 시인 안도현 이자리를 기획해낸 박재관 대표 이날 106개 부스중 가장 큰 성황을 이룬 (주)인포피아 부스에서 열린 사인회에서 함께 한 이날의 주인공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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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어두운 할머니의 시중을 세심하게 드는 민경양 할머니에게 스마트폰을 알려주며 메신저로 소통을 하게되면서 그저 막연한 존재였던 할머니가 인생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손녀딸 민경씨는 귀가 어두운 할머니의 곁을 밀착마크하며 시중을 들었다. ⓒ 서치식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의 내면을 깊이 알게 된 민경씨는 처음에는 주옥같은 할머니의 글들이 사라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만으로 저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차 저장한 글이 많아지자 막연히 책으로 출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우연한 기회에 전주한옥마을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그림 전시회, 인디밴드 공연 등 문화이벤트를 하던 박재관(50, 인포피아 대표)를 알게 되어 어렵게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게 된 민경씨. 박 대표의 참신한 기획으로 전주 유일여고 학생들의 글이 더해져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세대를 잇는 브릿지가 있다. 할머니의 글을 읽고 유일여고 희망나비 학생들이 글을 썼다. 할머니의 감성에 어린 소녀들의 감동이 더해졌다. 학생들이 할머니 글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할머니의 마음에 들어가 시를 썼다. 이 책은 세대 간 소통이자 세대 간 컬래버레이션의 결과이다."

박 대표의 이 말은 평범하기만 했던 여든 넷의 할머니와 증손녀 뻘의 소녀들의 '소풍' 같았던 책의 제작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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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친필 사인을 받는 안도현 시인 전업작가가 아닌 저자의 사인을 받은 책을 계산하고 소중하게 갈무리하는 시인의 모습은 경건하기조차 했다. ⓒ 서치식


'이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은 매우 각별하고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이 오붓한 기록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가슴에 쌓인 서러운 시간들을 어떻게든 가꾸고 보듬으려는 할머니의 따스한 세계관이 거기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할머니의 개인사를 넘어 동시대를 함께해 온 분들의 역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연탄불의 시인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의 위 글은 전업 작가가 아닌 평범하기만 한 저자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목련화처럼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내 인생 끝나는 그날까지
아름답게 아름답게 살리라. 때가 되면 오던 길 되돌아서
아장아장 엄마 만나러 넓고 넓은 하늘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가리라."

여든 넷의 나이에도 소녀 같은 감성으로 늘 새로운 내일을 계획하는 저자의 다음 책에 실리게 될 예정이라는 저 글만으로도 우리는 이제 막 첫 책을 출간한 여든 넷 작가의 다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덧붙이는 글 페이스북에도 게시합니다.

소풍 - 여든넷 소녀의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

한상현 지음, 유기준 그림,
인포피아, 2017


#2017독서대전 #한상현 #인포피아 #박재관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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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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