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토지대장에서 조선이 건국되다

[역사로 살펴보는 토지문제 ①] 토지개혁 바라는 민심이 조선 건국의 정당성

등록 2017.08.23 16:13수정 2017.08.2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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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제는 사람이 사는 모든 역사의 공간에서 언제나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의 토지 문제는 전셋값, 부동산 투기, 주택 모기지 대출 등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숱하게 다가옵니다. 토지문제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정권이 바뀌기도 하고 민생의 질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토지개혁으로 시작한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그 양상과 전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토지문제가 시대와 역사의 공간마다 어떤 문제를 야기했고 우리의 삶은 그와 얼마나 연관돼있는지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똑같은 문제 앞에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씨름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기자 말

1391년(공양왕 2년) 9월, 개경 한복판에서 큰불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고려의 모든 토지문서를 태우고 있는 불이었다. 태조실록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리하여 온 나라가 크게 기뻐하였으며 백성들의 마음이 이성계에게 더욱 쏠리게 되었다."

토지가 없어서 유리방황하며 갑절의 세금을 내야 했던 가난한 민중에게 토지문서의 소각은 새 시대,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반면 권력과 부의 기반이었던 토지의 소유권을 상실한 토지 귀족들은 주춧돌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정도전과 조준의 토지개혁이 성공한 시점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되기 약 1년 전이었다. 흔히들 조선의 세운 후 과전법 개혁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토지개혁을 통해 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토지개혁을 통해 새 시대의 희망을 품은 백성들의 민심이 전제되지 않고서 1392년 조선의 건국이 불가능했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새 나라 프로젝트의 준비 1단계로 토지개혁을 선택했다. 토지개혁의 결과는 기존 기득권의 타파와 민심의 획득으로 이어졌다. 그에 더해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여 든든한 개혁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 관료의 월급은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인 수조권을 통해 지급되었다. 지금이야 화폐를 개별 통장에 송금하면 되는 일이지만 당대의 시스템에서는 토지 수확물 중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여 관료에게 나눠주어야 했다. 모든 지주는 토지 수확물의 1/10을 조세로 국가에 내야 했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수확물을 지주에게서 걷고 다시 관료에게 분배한다면 행정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고려 전시과에서는 수조권이라 하여 관료에게 토지의 1/10을 직접 농민에게서 걷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수조권을 관료가 직접 농민에게서 걷어 행정비용을 줄이고 관료는 정직하게 일하면 서로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관료가 정년퇴임을 하면 어떻게 되나. 먹고는 살아야 한다며 수조권 행사를 지속한다. 권력과 부를 가진 관료의 탐욕은 끝이 없다. 막대한 토지의 수조권을 요구한다. 바로 겸병의 문제가 발생했다.


토지개혁으로 세운 나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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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 삼봉 정도전(1342~1398) ⓒ 김덕영


고려 말로 갈수록 국가 행정력과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토지 겸병의 문제는 심각했다. 당장 신규 관료에게 지급할 수조권이 부족했고 반면 토지소유권을 상실하고 소작농이 된 다수의 농민은 다수의 수조권 대상자에게 소작료를 내다보니 기록에 의하면 6/10 많게는 7,8/10의 소작료를 내야 했다.

죽어라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막대한 토지의 이익을 향유하는 소수의 금수저와 피땀 흘려 노력해도 그저 입에 풀칠하기 바쁜 다수의 흙수저가 나타난 것이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해지자 고려 말 마지막 개혁의 기수를 자처한 공민왕은 신돈을 통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토지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

정도전은 고려 말 비참한 백성의 삶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한 인물이다. 성리학에 입각한 자주 외교를 펼치기를 주장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은 이인임이라는 고려 말 막강한 권문세족에게 맞서다 정치적으로 축출된다. 그리고 10년을 넘게 지내게 된 곳이 천민이 살던 나주의 부곡이었다. 그곳에서 땅 없는 농민들의 힘겨운 삶을 경험한다.

척박한 민중의 삶에서 그가 꿈꾼 나라는 고대 유교 이상 국가에서 지향한 정전법의 나라, 자작농의 나라였다. 백성들이 인구수에 비례하여 모두 자기의 땅에서 땀 흘려 일하고 1/10의 세금만을 내는 '계민수전'의 나라였다. 실제 개혁과정에서는 이 정도의 개혁을 이루지는 못한다. 과전법의 개혁은 모두가 자작농의 나라가 아닌 너무 심각한 토지겸병의 문제만을 해결한 것이다.

수조권을 지급받은 관료를 감시 및 관리하기 위해 경기도에 한정하여 사전(수조권이 지급되는 땅)을 정하고 나머지 지방은 공전으로 국가가 직접 세금을 거두는 형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말의 토지 귀족들의 겸병을 일대 개혁함으로써 신진 관료에게 지급할 수 있는 과전을 마련하였고 과도한 소작농의 부담을 줄여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은 어디서 확인되어야 하는가. 권력의 정당성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도전은 그 근본을 백성에게서 찾았다.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에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찾았다. 그랬기에 민생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토지개혁이 빠질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다양한 개혁 현안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의 우선순위를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진정 나아지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개혁의 성공 여부는 무엇으로 판가름 날 것인가. 민중의 삶이 회복되고 각자의 존엄이 살아나는 개혁이어야만 한다.
#토지개혁 #과전법 #삼봉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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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믿음으로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주어진 토지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신입니다. 희년정신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토지배당,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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