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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고 기분 좋았다는 엘, 그에게 가장 아팠던 댓글

[inter:view] '우려' 불식시킨 엘의 첫 사극 <군주> 도전기 "아직 장점보다 단점 많지만..."

17.07.15 18:43최종업데이트17.07.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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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이선이는 분명 억울한 구석이 있다. 세자(유승호 분)의 자리를 빼앗을 마음도, 엉겁결에 앉은 왕좌를 지키기 위한 탐욕도 없었다. 세자를 약점 없는 훌륭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독을 먹었을 뿐이고, 이후에는 목숨 부지를 위해 허수아비 왕이 되었을 뿐이다.

이선이를 망가뜨린 건 열등감과 패배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은 아씨'(김소현 분)를 짝사랑했지만, 신분의 벽은 높고 높아서, 감히 천민인 그가 넘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왕좌에 앉아 다시 만난 아씨는, 왕인 자신보다 고작 보부상 두령일 뿐인 사내를 사랑한단다. 보부상 두령이 실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세자였고, 과거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선이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려' 불식시킨 사극 도전

MBC <군주>에서 천민 이선 역의 배우 김명수(인피니트 엘)가 11일 오후 서울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MBC 수목드라마 <군주>의 종영을 앞둔 지난 11일. 이선, 아니 엘(김명수)을 만났다. 앉자마자 이선이는 어찌 됐느냐고 물었더니 밝게 웃으며 "죽어요. 많은 분이 빨리 가짜 왕 사약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가은이를 지키다 죽습니다. 하하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드라마 종영 뒤로 엠바고가 걸려있어 미리 들을 수 있었던 결말이다. 그는 세자와 가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죽은 엔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엘이 <군주>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인피니트의 멤버로, 아이돌 경력은 8년 차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 앞서 <닥치고 꽃미남 밴드> <앙큼한 돌싱녀>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키워왔지만, 배우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기엔 충분치 않았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사극'이라는 장르와 감정 변화의 폭이 넓은 '이선'이라는 역할은, 모두 도전이었다.

"사실 이선이는 주요 캐릭터 중 변화가 제일 심해요. 신분도 천민에서 왕이 되고, 초반엔 아역의 모습이었다가 뒤에는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죠. 감독님과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1인 2역은 아니었지만 <광해>를 여러 번 보면서 참고하기도 했단다. 그러고 보니 이선이는 영화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광해군과 천민 하선을 합쳐놓은 것 같기도 하다. 사극 첫 도전만도 큰일인데, 그 안에서 이렇게 큰 폭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어디 쉬웠을까. 하지만 부담감보다는, 이런 흔치 않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고 한다. 엘은 자신을 "욕심도 많고, 성취욕이 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열등감

엘은 아이돌 경력 8년 차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 그런 그에게 온 첫 사극, 게다가 변화의 폭이 넓은 <군주>의 이선은 큰 도전이었다. ⓒ 이정민


이선이의 감정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요인은 열등감이었다. 작품 속 캐릭터가 되어 그 인물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연기. 때문에 자신이 연기하게 될 캐릭터의 고민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하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데뷔 전부터 꽃미남으로 유명했고, 데뷔하자마자 아이돌로도 성공한 그에게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있을까? "데뷔 전 엘을 보기 위해 인근 여고생들이 몰려오기도 했었다던데"라며 질문을 던지자, "과장된 소문을 들으신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열등감은 당연히 있죠. 노래를 처음 했을 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저는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근데 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어요. 바람이 늘 제 현실에 미치지 못했죠. 잘하고 싶은 욕심, 아쉬움, 성취욕…. 이번 작품의 경우에도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듣긴 했지만, 저와 <군주>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을 보세요. 전 아직 한계가 분명하잖아요. 이런 제가 그분들과 연기하는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웃음)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기대하면서 버티는 거예요."

스스로 만족하는 장면도 있지 않을까?

"물고문하는 장면이요. 이선이의 광기가 처음으로 표출되는 장면이잖아요. 허준호 선배님이 매 신, 배우가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호흡을 잘 관리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연기했는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모니터할 때는 생각만큼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지만요. 만족스럽기도 하고, 그만큼 아쉬운 마음도 드는 장면이에요."

엘은 별운검 현석(송인국 분)을 제외하고는, 허준호(대목 역)와의 호흡이 가장 많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대선배라 위축되진 않았는지 물으니 "연기할 땐 위압감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카메라 밖에서의 허준호 선배님은 너무 밝으시고 잘 챙겨주셨다"고 설명했다. 앵글에 함께 잡히지 않더라도 엘이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움도 많이 줬다고.

함께 연기한 유승호와 김소현 역시 나이는 엘보다 어리지만, 모두 아역 출신이라 연기에 있어서는 베테랑들. 사극 경험도 많다. 엘은 "배울 게 많았다. 모두 자기들만의 연기 노하우가 있더라"고 감탄했다. 그들의 분위기, 흐름에 함께 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유승호와는 촬영 전부터 따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실은, <군주>보다 더 특별한 공통점이 있어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저희 둘 다 고양이를 길러요. 요즘 일본에 어떤 고양이 간식이 나왔는데 좋다, 모래 뭐 쓰냐, 털갈이는 했냐.... 하하하. 만나면 연기,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고양이 이야기를 많이 했죠."

연예인 '엘'이 아닌, 그냥 김명수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청소'라는 다소 생뚱맞은 답이 돌아왔다. 밀린 인터뷰와 화보 촬영 등을 마치고 나면, 당분간은 고양이와 놀며 밀린 정리와 청소를 할 예정이란다.

"여행도 좋아해요. 주로 일본을 많이 가는데, 인피니트 스케줄 때문에 자주 가기도 하고, 예전에 일본에서 활동한 적도 있어서 아무래도 익숙하죠. 도쿄에 가면 지우가오카 같은 데 가서 커피숍에 온종일 앉아있다 오기도 해요. 종일 커피숍에만 있을 거면, 여기나 거기나 상관없지만, 그냥 서울이 아니라는 느낌, 외국이라는 분위기가 좋아요."

아이돌이 견뎌야할 것들

<군주>에서 호흡을 맞춘 유승호와는 촬영 전부터 따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둘은 어떤 공통점 때문에 더 돈독해질 수 있었다. ⓒ 이정민


끼 넘치는 아이돌이라, 당연히 외향적인 성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정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때로 구설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연예인,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꽤나 곤혹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데뷔 초기에는 사실 감정 콘트롤이 잘 안 됐어요. 근데 점점 이 생활에 대해 알아가고, 적응되고, 내성도 생겼어요. 지금은 화나는 일도 잘 없어요. 댓글도 저는 1000개가 달려있으면 1000개 다 읽거든요. 그런 악플을 봐도 이제는 구분하는 능력이 생겨서 그런지 상처받지 않아요."

굳이 왜 그 많은 댓글을 다 읽느냐 물으니 "말도 안 되는 비난도 있지만,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비판도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수로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조언도 있고, 때론 자극도 된다고. 그래서 가장 아픈 댓글은 "그냥 싫다"다. 그냥 싫다는 사람을 위해, 그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돌이 참여하지 않는 분야가 없잖아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에요. 데뷔도 어렵고, 살아남기는 더 어려워요. 시기, 질투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죠. 결국 제 노력에 달린 것 같아요. 작품에 누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아직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배우지만, 성장할 거라 믿어요. 언젠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도 하고 싶고요."

지금까지는 회사가 추천해주는 작품에 출연해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제는 능동적으로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작품과 배역을 선택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군주> 역시, 회사의 제안이 있기도 했지만, 스스로 너무 끌렸던 작품이었다고.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는지 묻자, "OCN이나 tvN의 장르물에 출연하고 싶다"면서 "사연 있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극과 극의 감정과 상황을 오간 이선이를 현대극의 설정에서 연기해 보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이선이를 욕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이선이를 잘 표현했다는 칭찬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엘, 김명수, 이런 제 이름이 아니라, 극 중 캐릭터로 불리고 싶어요."

"OCN이나 tvN 장르물에 출연하고 싶어요. 사연있는 캐릭터,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그간 회사가 추천해주는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작품과 배역을 선택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 이정민



군주 인피니트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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