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문자 못 받은 기자, '송송커플' 의심하다

[取중眞담] 법정 밖에서도 분주한 삼성... 자료 뿌리고, 기자들 관리하고

등록 2017.07.11 20:47수정 2017.07.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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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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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오전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 이희훈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 '국정농단'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에게 강백신 검사가 물었다.

"라우싱 반입사실에 대해 6월 20일 삼성 홍보팀이 일부 언론사들을 제외한 언론사를 상대로 홍보 문자를 보낸 사실을 특검에서 우연히 확인했다. 아는 바가 있나?"

6월 20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사건 30차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재판부는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과 유상현 전 국민연금공단 해외대체투자실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특검과 변호인단은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까닭을 두고 신문 내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두 증인의 진술 자체는 크게 새로운 내용이 없어 관련 기사가 많지 않았다.

쏟아진 라우싱 기사, 수수께끼가 풀리다

그런데 오후 4시쯤부터 '라우싱'이란 단어가 담긴 뉴스 수십 건이 쏟아졌다.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쪽에 뇌물로 줬다던 말이 귀국했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기사들은 대부분 '특검 주장대로 말 소유권이 삼성에서 최씨로 넘어갔다면 절대 말이 한국에 들어올 일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재판 때 변호인이 강조한 대목이었다. 당시 '수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10일 강 검사의 질문을 들으니 수수께끼가 풀렸다.

좀 더 상황을 알아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삼성은 단지 '홍보 문자'를 뿌린 게 아니었다. 이날 연락받은 기자들에게는 라우싱 입국 관련 쟁점을 매우 상세하게 정리한 자료가 도착했다. 여기에는 그림 자료와 일지까지 첨부됐다. 삼성 쪽은 또 "금일 오후 서증을 통해 특검이 줄기차게 '말 교환계약'이라 주장했던 말들의 소유권 해제 확인서가 공개됐다, 라우싱 입국 근거가 된 문서가 현출돼 의미 있어 보인다"며 무엇이 '핵심'인지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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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최순실씨쪽에 뇌물로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말 '라우싱' 관련해 6월 20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 ⓒ 오마이뉴스


5월 19일에는 "일성신약 측 증인 신청에 취재진이 의아함 표출, 뇌물죄 재판과 무슨 연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이란 글이 돌았다. "굳이 부른 이유는 삼성물산 합병 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연금에 대한 압박이 필요했다는 점 입증" 등 특검 주장을 설명한 대목이 더해지긴 했지만 주요 내용은 역시 '뇌물죄와 무관하다'는 삼성 논리였다.


삼성은 꼼꼼했다. 홍보팀은 6월 30일 <특검과 변호인간 일정 진행에 대한 이견>이란 제목으로 SK·롯데 관계자 증인 신청 문제, 특검의 특별기일 요청 등을 정리해 기자들에게 넘겼다. 7월 6일에는 "관심을 모았던 안종범 수첩 증거 채택여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다른 재판부가 결정한 것처럼 간접사실로써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겠다고 했다"며 특검과 변호인의 종합의견을 덧붙여 배포했다.

지난 4월부터 이재용 부회장 재판을 취재하며 법정 곳곳에서 열심히 메모하는 삼성 관계자들을 목격하긴 했지만 그 기록이 이런 용도일 줄은 생각 못했다. 자료 배포는 주로 삼성을 담당하는 산업부 기자들이 대상이었다. A기자는 "이런 자료를 매번 받고 있다"며 "삼성이 '야마(기사의 주제를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도 잡아주는 셈"이라고 했다. 다만 "이 야마로 쓰라고 종용하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물 관리'도 이뤄졌다. B기자는 6월 20일 삼성이 배포한 라우싱 자료를 받지 못했다. 그는 "거기(삼성)에서 재판 자주 챙기는 언론사, 유리하게 써준 기자들 이름도 따로 체크한다"고 말했다. 법조 출입 C기자는 "삼성에서 '산업부가 재판 취재를 했으면 좋겠다, 왜 우리 주장을 충실히 담아주지 않냐'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아예 산업부가 이 부회장 재판을 챙기는 매체도 있다.

언론 대응이라지만... 법정 공방만으로는 부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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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삼성 재판 직접 등판하는 특검팀 특별검사팀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수사팀장이 4월 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기업이 자신들의 현안을, 그것도 차기 총수가 걸린 사안을 두고 언론대응하는 것 자체는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궁금하다면 포털사이트에서 '이재용 재판'이라고 검색해보시라. 삼성에겐 유리하고 특검에는 불리한 기사가 줄줄이 나온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이 '간접증거'로 채택된 날은 '이 기자들과 같은 재판을 본 게 맞나' 싶었다.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적은 것이라 애당초 간접증거일 수밖에 없던 자료였다. 먼저 수첩을 증거로 채택한 다른 재판부 판단 역시 동일했다. 그럼에도 '뇌물죄 향방이 달라지나, 맹탕 안종범 수첩' 식의 기사가 쏟아지는 광경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비슷한 시기 터진 '송송커플(배우 송혜교·송중기씨)' 결혼 소식을 의심하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갔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재판부는 7월 말 심리 종료, 8월 중 선고를 목표로 잡았다. 재판이 점점 막바지에 이를수록 특검의 창과 변호인의 방패도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그들의 팽팽한 대결을 혀를 내두르며 볼 때도 많다. 하지만 삼성에겐 법정 공방만으론 부족했을까? "빈총도 계속 맞으니 아프다"던 특검 관계자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이재용 #최순실 #박근혜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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