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특성화된 지역 거점 교육센터로 전환해야

[주장] 특목고 해체를 위한 현실적 제안

등록 2017.06.15 17:19수정 2017.06.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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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나면서 정부의 정치, 사회, 경제 개혁에 대한 방향성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성은 지난 보수 정부의 비정상적 정책을 되돌려 놓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보수 정부가 늘여놓은 정책들이 9년에 걸쳐 구조화되면서 그것을 정상적으로 혹은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으로 개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개혁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안일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한 개혁 정부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 틀을 안착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교육개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가장 관심을 끄는 교육 개혁 현안은 자사고, 특목고 문제다. 본래 특목고의 설립은 많은 학생에게 자신의 필요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특목고 제도는 입시 학원화된 고교 체계로 귀결되었고 이는 교육 전반에 입시 교육을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자사고, 특목고 등 다양한 '학교' 형태를 만들어 고교 입시를 강화함으로써 입시 열풍은 중학교로, 나아가 초등학교로 내려가 학교를 난잡한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특목고의 해체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과학고를 포함하여 서열화된 고교 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자사고와 외고 및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언급했다. 하지만 과학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과학고가 고교 서열화의 원흉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과학고가 만들어지면서 인문사회분야에서도 특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며 나타난 게 외고 및 국제고였다. 더불어 일반고의 위축이 나타나고 일반고 중에서 자사고, 자공고를 만들어 서열화가 경쟁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시 과학고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제2과학고가 설립되고, 일부 과학고는 영재학교로 전환되어 과학고 위에 더 높은 탑을 쌓았다. 일반고는 거기에 따라가기 위해 과학중점학교로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하면서 고교 체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위계가 만들어 졌다. 

고교 체계가 극도로 위계화 되면서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한 불안감을 학원에서 자극한 탓에 초등학교부터 고교 입시를 준비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에서부터 선행 학습이 유행처럼 번져 초등학생이 수학 정석을 공부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선행 학습 역시 과학고가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과학고 입시를 대비하기 위해 수학과목의 경우 최소 2년에서 최대 3년의 교육과정을 선행하고, 국제고나 외고의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 1년에서 2년의 선행 학습이 필수가 되었다. 영어 과목으로 선발되는 외고와 국제고에 들어가려는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토익, 토플단어를 암기하고 중학교 내신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의 학원에서 실시하는 선행학습 프로그램에 목을 맨다.

중학교에 들어서면 학생과 학부모는 더 힘들어진다. 외고와 국제고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은 영어 과목에 목숨을 걸고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수학과 과학에 자기 운명을 걸었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입시 관련 과목의 내신에서 문제 한 두 개가 틀려 등급이 떨어지고 그래서 특목고 입시에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특목고 입학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강요받았던 학생들은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만들었다. 우리 아이는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달려왔던 학부모들은 이 미친 경쟁 체제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강남의 학부모들조차 초등학교 시절부터 밀어 붙인 이런 교육투자가 정말 아이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인지, 나아가 미래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줄지 근원적인 회의감이 든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목고 입시에 성공한 학생들은 정작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을 받고 또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적 인력이 되었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특목고 자체가 거대한 입시 교육 체계 안에 복속되어 설립 취지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학교 자체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대학 입시에 가장 걸 맞는 국영수 위주의 교육과정을 편성했을 뿐이다. 외고와 국제고도 예외는 아니다. 외고와 국제고는 어학계열과 국제전문교과를 편성했지만 이들 교과는 학교 현장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외고에서 독일어반이나 프랑스어반 학생은 대학 입시에 유리한 아랍어나 베트남어를 별도로 공부한다. 국제고는 국제 계열 과목의 취지를 버리고 실질적으로는 수능 사탐 선택 과목으로 대체하여 운영한다. 과학고는 수학과 과학 이외에 다른 과목들을 형식적으로만 운영한다. 새로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융합형 인재의 육성은 이제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특목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단련된 학습 역량을 대학에서 발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학 특기를 지닌 외고 학생이 어문계열에 진학하지 않고 국제 정치 경제를 공부한 국제고 학생들이 국제 계열에서 자기 진로를 찾는 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고 출신의 학생들이 과학 영재로서 대학에서 학점을 더 잘 받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과학고 출신이 입시학원, 과외 시장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아가 특목고 졸업생은 대학 입시에 특권적 지위를 누리면서 특권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교육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특목고 출신은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 되어 패권화 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만우절에 자신의 출신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모임을 갖는 일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서울 주요 대학에서는 특목고 출신들이 교복을 입고 떼를 지어 자신의 위력을 뽐내며 캠퍼스에서 위압감을 조성한다.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일자 이들은 자신의 출신 고교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특권을 누리며 단맛을 본 그들은 학연을 자신의 권력 자원으로 삼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제 '불멸의 신성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특권 의식은 대학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이를테면 특정 특목고 출신이 로스쿨과 판검사 임용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지배 블록을 정착 시켰다.

반면에 일반고는 돈 없고 빽 없는 학생들의 집합처가 되어 가고 있다. 학교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일반고에서는 수업 시간마다 잠자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도대체 교육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게 되었다. 일반고 학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신분 상승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특목고로 인해 서열화된 고교 체계는 다시 일반고의 세분화된 서열화를 재촉했다. 그리하여 저소득 계층이 모여 있는 지역을 떠나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서 대도시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학교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대 합격률의 지역별 격차를 줄이겠다며 실시한 제도 중 가장 우스운 것은 특목고의 지역별 분산 설립이다. 낙후된 지역에 특목고를 설립하여 지역별 서울대 합격률은 분산되어 나타날지라도 실제 특목고를 구성하는 인자들은 이미 부유한 계층 혹은 지역의 학생이 이동하여 채웠을 뿐이다.

특목고를 특성화된 지역 거점 교육센터로 전환시키자.

원칙적으로 모든 특목고는 해체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교육 개혁이 그러하듯이 특목고 개혁에서 우리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교육 개혁의 방향을 찾자면 자사고는 예외나 유예 없이 폐지되어 일반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특수한 설립 목적 자체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고를 포함한 특목고의 문제다. 이들을 개혁하는 것은 특수 설립 목적이라는 명분 및 필요성과 관련되어 논란이 있고, 개혁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다.

모든 특목고의 해체가 불가능하다면 대안으로 제시해볼만한 것이 특목고를 특성화된 교육 센터(지역 거점 교육 센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제안을 하는 이유는 우선 기존 특목고가 '학교'라는 형식을 갖는 한 설립 목적을 절대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각해져가는 사회적 패권 구조를 타파하고 학연을 활용한 지배 구조의 형성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특목고에 갖춰진 특별한 시설물의 현실적 활용방안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실습실이나 기숙사 시설과 같은 특수한 교육에 맞게 최적화된 환경을 폐기 처분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특목고에 투입된 매몰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활용방안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지역 거점 교육 센터의 운영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특정한 인원을 일정하게 할당하여 선발하고 일정한 기간(2학년 혹은 3학년 때 자유학기제 기간을 두어 운영) 동안 위탁교육을 하는 것이다. 위탁교육은 지역교육청 단위의 영재 교육원과 비슷할 수 있다. 이는 고교 학점제와 병행하여 실시함으로써 원적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특별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된다.

선발과정에서 보면 고등학교 내에서 할당된 인원에 대해서만 위탁교육 대상자를 선발하므로 각 학교 단위의 공부에 충실하도록 유도하여 일반고를 진실로 살려낼 수 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의 강남이나 부산의 동구처럼 특정 지역으로 몰리지 않고 각 지역 단위 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들이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로써 지역 학교 공동화 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물론 일반 학교 내에서 소외 받는 다수의 학생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거점 교육 센터의 교육 대상자로 선발되지 못한 다수의 학생들을 위해 단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모색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기존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하더라도 자체적으로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일반고로의 전환에 따른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지역 거점 교육센터는 실질적이고 집중적으로 특수 목적의 교육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과학교육센터는 과학만 가르치고, 국제교육센터는 국제전문교과만 가르치는 것이다. 이들 지역 거점 교육 센터는 입시 교육에 영향을 받지 않고 파행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특목고 설립 취지의 본연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동력이다.

물론 이 같은 제안은 타협적인 것으로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금보다는 약화될지 몰라도 또 다른 서열화가 될 수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올바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묘책이 누군들 확신할 수 있겠는가?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해 알면서도 이 정도의 제안을 하는 것에 그쳐야 하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타협적 제안이라도 성공하면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조차 성공하기 쉽지 않다. 성공의 열쇠는 정치적 힘의 역학관계에 달려 있다. 개혁정책은 집권 초기에 달성하지 못하면 개혁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만일 자사고의 재지정(2019년), 외고특목고의 재지정 평가(2020년)에 따라 순차적으로 할 경우 평가 성적이 나쁘지 않은 소수의 자사고와 특목고는 살아남아 개혁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이즈음 문재인 정부는 3년차를 넘어 더 이상의 개혁 조치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올해 당장 자사고와 특목고의 선발방식을 추첨으로 완전 전환하고 2018년 준비 기간을 거쳐 2019년에는 지역거점 교육센터가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최소 2년간 안착시켜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기존 기득권을 갖는 자사고와 특목고 관계자들이 반발할 수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입시 교육에 고통 받는 학생과 학부모를 믿고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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