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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돌> 자막 논란... 켈리 교수 가족에게 왜들 그러세요?

[기획] '한국어 패치'만 붙으면 아내는 존댓말, 남편은 반말하는 이상한 번역

17.06.15 09:32최종업데이트17.06.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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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뒤늦게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래 슈돌)에는 BBC 생방송 인터뷰 도중 자녀들이 깜짝 등장하는 귀여운 방송사고로 화제를 모은 부산대학교 로버트 켈리 교수(정치외교학과) 가족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는 깜찍한 '두둠칫 댄스'를 선보였던 메리언 예나를 비롯, 보행기를 타고 아빠에게 달려갔던 제임스 유섭, 그리고 깜짝 놀라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아내 김정아씨까지 모두 출연해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공개했다.

남→여 '반말', 여→남 '존댓말' 되는 '한국어 패치'

로버트 켈리 교수와, 아내 김정아씨의 영어 대화에 '한국어 패치'가 붙자 각각 '반말'과 '존댓말'로 번역됐다. ⓒ KBS


논란을 빚은 부분은 김정아씨와 켈리 교수의 대화다. 켈리 교수는 현관문을 향해 힘차게 기어가는 아들 유섭을 보고는, 아내를 향해 "집을 나가려나 본데? 중요한 일이 있나 봐"라고 말한다. 이에 "유섭이가 거기서 노는 걸 좋아해요"라고 답하는 아내. 문제는 이들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둘의 본 대화는 이랬다.

로버트 켈리 "I think he is just leaving a house. He's found the important things to do."
김정아씨 "He likes to play over there."

영어에도 경어 표현은 있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대화에는 한 사람의 말만 존댓말로, 혹은 반말로 번역할 만한 표현은 없었다. 그런데도 자막은 뜬금없이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이다. '부부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성차별적 인식에 따른 것일까? 아니면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여 '나이에 따른 위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문제는 또 있다. <슈돌>은 여러 인물의 대화를 자막으로 옮긴다. 이날 방송 역시 '아빠 켈리', '예나 엄마', '예나', '아빠 샘'. 자막마다 누구의 말인지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이름이 없었던 출연자는 '예나 엄마'뿐. 아직 아기인 유섭과 윌리엄의 행동과 옹알거림을 표현하는 데도 각자의 이름이 쓰였지만, 김정아씨는 그저 '예나 엄마'였다. 심지어 처음 가족을 소개할 때도, 그저 '한국인 아내'. '김정아'는 온데간데없고, 켈리 교수의 '한국인 아내'이자, 예나의 '엄마'인 한 여성만 있었다.

반말 쓰는 여성 캐릭터 '기세다' 오해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김정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켈리 교수의 '한국인 아내'이자, '예나의 엄마'인 한 여성만 있었다. ⓒ KBS


누리꾼들은 이 같은 <슈돌>의 성차별 자막을 '한국어 패치'라고 지적한다. 여러 외국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번역될 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어 패치는 존댓말과 반말이 존재하는 일본 작품이 번역될 때도 제멋대로 작동한다. 일본판 <크레용 신짱>의 미사에와 히로시는 서로에게 반말하지만, 한국판인 <짱구는 못말려>의 봉미선은 신영식에게 존댓말을 하고, 신영식은 봉미선에게 반말한다. 원작과 상관없이, 반말과 존댓말로 남편을 아내의 윗사람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은 설정은 가장 최근 시즌인 <짱구는 못말려 16>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예고편에서 할리퀸이 "왜요?"라는 존댓말과 "이 오빠 마음에 들어"와 같은 적절하지 않은 호칭을 썼다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고, 영화 <라라랜드>는 'A Lovely Night'를 부르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말을 각각 존댓말과 반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캡틴 아메리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 인물 간의 관계나 성격과 상관없이, 여성 캐릭터들은 배우자나 연인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나마 여성 관객들의 꾸준한 지적에, 많이 나아졌다. 그래서 이 정도다.

이와 관련 강동훈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연구원은 "번역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할 수밖에 없다. 여자만 존댓말로 번역하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둘 다 반말로 번역하면 사람들이 여성 캐릭터를 '기센' 성격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원은 이어 "요즘은 둘 다 반말, 혹은 둘 다 존댓말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남자가 연장자인 경우에는 편집 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며 "소비자 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캐릭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아씨에게 왜들 이러세요

짧은 분량에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듬뿍 느껴지던 켈리 가족. 이들에게 미디어는 왜들 그러는 것일까? ⓒ KBS


김정아씨가 '차별 논란'의 주인공이 된 건, <슈돌>이 처음이 아니다. BBC 영상이 화제가 됐을 때도, 황급히 아이들을 수습하는 김씨를 '보모'로 인식한 보도와 반응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의 아이들을 돌보는 '동양인 여성'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추측한,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성차별'이었다.

BBC 방송사고 영상이 화제를 모은 뒤 이어진 인터뷰 요청에 켈리 가족은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켈리 교수는 "성차별,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을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영상 속 여성이 보모가 아닌 아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내 김정아씨 역시 "과거에도 그런 (오해를 받은) 경험이 있어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편견이 조금은 깨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슈돌>팀은 이번 자막 논란을 계기로 자신들의 편견을 깨트릴 수 있을까? 제작진이 켈리 가족을 프로그램에 초대하며, 부부의 기자회견 내용이라도 세심하게 살폈다면, 이 같은 불필요한 논란이 반복됐을 리 만무하다. 굳이 다시 켈리 가족을 '반성의 계기'로 삼을 필요는 없었다.

방송사고 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미국의 유명 토크쇼 <엘렌 쇼> 출연 요청도 거절했다는 켈리 교수. 그는 '<슈돌>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묻는 샘 해밍턴에게 "지금은 많이 안정되기도 했고, <슈돌>은 가장 가족적인 쇼니까"라고 답했다. 짧은 분량에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듬뿍 느껴지던 켈리 가족. 보모 논란부터 자막 논란까지, 여러 차별 논란 어디에도 그들의 잘못은 없었다. 도대체 왜 미디어는, 이들에게 자꾸 '차별 논란'을 씌우는 것일까?


켈리 김정아 슈퍼맨이 돌아왔다 슈돌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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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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