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소송·원전·방산비리, 내부고발 필요하다"

[내부고발자, 이제는 사회가 감싸줄 때 ①]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

등록 2017.06.02 11:03수정 2017.06.02 11:03
0
원고료로 응원
내부고발은 조직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범죄나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내부 제보자의 결정적 한 마디에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들의 이후는 순탄치 못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제보한 이들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내부고발의 주역들이 의기투합해 '내부제보실천운동'이란 단체를 꾸렸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권력형 비리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양심을 걸고 내부의 진실을 고발하는 의인들을 보호하는 한편, 내부고발자 보호법 제정을 위해 다른 시민단체, 종교계 등과 연대해 나가고 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의 협조를 얻어 내부고발자들을 만나 최순실 국정 농단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주제로 연속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한다. - 기자 말

a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공동대표 ⓒ 지유석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대표는 1992년 3월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행위를 폭로한 주인공이다. 그는 내부고발 이후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진로 고민을 하다 반부패 운동,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활동에 매진해 왔다. 내부제보실천운동에서도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모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먼저 내부고발자로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최순실 국정 농단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묻고 싶다. 최순실 국정 농단은 노승일·고영태 등 내부고발자들에 의해 일단이 드러났으니까 말이다. 
"이분들은 내부공익제보자다. 조직 내부에 있으면서 공익 차원에서 제보를 했으니까. 노승일·고영태는 최순실 국정 농단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가장 큰 파장을 던져준 내부고발로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세포 조작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그리고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등을 꼽는다."

- 내부고발이 엄청난 비리를 드러나게 했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판단이다. 노승일·고영태의 폭로 역시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초리들이 많다. 
"공공기관에서 공익제보 관련 강의를 자주 진행하는데, 노승일·고영태를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시민들의 품고 있는 정서가 표출된 것으로 본다. '내부공익제보'는 좋고 나쁨을 떠나 조직의 내부자가 공익을 위해 제보하면 이뤄지는 것이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사회엔 내부 제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하다.

먼저 누군가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하면 우리 사회는 '잘못을 고발하는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냐? 얼마나 바르게 살아왔냐?'며 고발자의 윤리 문제를 끄집어낸다. 다른 한편으로 '꼭 이런 걸 들춰내야 하냐?'는 식의 불만도 제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월 육사생도 3명이 졸업을 하루 앞두고 성매매가 발각되면서 퇴교 당한 일이다.

이 사건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 사건을 전한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이 "성매매는 잘못이지만, 이를 들춰 장교 임관을 앞둔 생도의 인생을 망쳐야 하냐"는 식이었다. 우리 사회에 정이나 의리 문화가 강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지적했듯 부정적 인식은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다. 내부고발은 다른 게 아니다. 내가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있다 하더라도, 교도관들의 비리를 포착하면 고발할 수 있다. 즉,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부고발로 제삼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인정을 해야 한다.

한편 조직은 내부고발로 치부가 드러나면, 드러난 치부를 부정하고 내부고발자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내부고발자가 폭로한 내용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내용인지의 여부다.

내부고발이란 밖에서 모르는 조직 내부의 사정을 폭로하는 일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나 비리를 제삼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내부의 일에 연루되어야 알 수 있고, 내부고발자는 직·간접적으로 연루될 수밖엔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내부고발자가 비리에 연루됐다고 해서 고발 내용마저 부정하면 내부고발은 이뤄질 수 없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노승일·고영태는 국정 농단과 일정 수준 연루돼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부고발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 개별적인 일을 두고 비난하면 누구든 내부고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 최근 노승일 부장이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에게 피소 당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금 고영태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일들이 내부고발자에 가해지는 보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에 비해 세상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고발에 나섰던 1992년에는 내부고발이라는 말도 없었고, 당연히 법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1990년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이병, 그리고 1992년 한준수 군수 등 초기 내부고발자들은 하나같이 구속, 파면, 수배생활 등의 고초를 겪었다.

물론 그때는 법도 없었지만 아직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보니 사회가 지금보다 강압적인 측면도 있었기에 내부고발자, 특히 정부·여당이 불편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보호가 불가능했다. 현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연대 시절 내부고발자 보호 입법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고 김대중 대통령 집권하면서 2002년부터 부패방지법(현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또 주무 국가기관으로서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도 출범해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 및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 2011년 9월부터는 공익 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중이다. 분명 이들 법을 통해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원상회복, 보상 등 혜택을 입었다. 법 제정 이후 한계 등을 보완해 법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있다. 고영태·노승일 이 두 사람은 현재 법에 따른 부패행위 신고자나 공익신고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욱이 내부고발과 무관한 범죄행위까지 감면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 등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강력한 보호법이 요청된다."

정, 의리 중시하는 문화가 내부고발 어렵게 해 

a

이지문 대표는 내부제보가 조직의 비리를 드러내는 파괴력을 지녔지만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지유석


- 내부고발자는 어디에서도 힘든 일을 겪는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적 도·감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위협은 한국이 유독 심하다고 할 수 있는가?

"유럽의 경우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없다고 해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이 우리보다 더 많을까? 그렇지 않다. 법이 없어도 다른 노동법령 등을 통해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발생하는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담배 회사 비리를 고발하는 부사장에 대한 협박, 유럽 평화유지군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 등등. 외국도 내부고발자를 가혹하게 다루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이들 나라의 경우 일반 국민들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필요성이나 인식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경우 그러한 위협, 협박, 보복이 가능한 것은 문화와 관련성이 높다. 정과 의리를 중요시하고, 조직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내부고발자는 배신자, 배반자로 치부되다 보니 보복에 더 노출되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 법적 보호와 인식 전환이 함께 요청되는 것이다."

- 내부고발의 힘은 강력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내부고발을 꺼린다. 아무래도 신변보호를 받지 못하고,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본다. 이젠 법적, 제도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떤 법적 장치가 가장 최우선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 2002년 부패방지법(현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공공부문 부패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호 및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2011년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되어 민간분야 공익침해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호 등이 제공되고 있다.

법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체계적이고 앞선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법의 핵심이 신분보장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부고발해서 불이익을 당할 경우 권익위가 원상회복 등을 통해 신분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이 해당 법의 핵심 뼈대다. 물론 보상금이 있지만 공직자는 자기 직무와 관련되어 알게 된 부패행위나 공익침해행위는 신고하더라도 감액 또는 미지급될 수 있다. 또 몰수·과태료 등 회복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보상금으로 주는 방식이다 보니 심한 경우 한 달치 월급도 안 되는 보상금 수준이 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신분보장의 경우 설령 신분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조직에서 누가 내부고발자인지 다 아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승진 누락을 시킨다거나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은 다음 저평가를 내리기 일쑤다. 아니면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가혹한 징계를 가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료들의 경우도 괜히 내부고발자하고 친하게 지내면 자신도 불이익이 있을까 싶어 관계를 기피한다. 그러나 내부고발자의 경우 그만두고 싶어도 생계 때문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신분보장을 핵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보상, 취업알선(제공)을 핵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을 하다가 산재를 당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을 진다. 그렇다면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부패행위,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할 경우에는 산재만큼은 보상 등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내부고발자의 당시 연령, 연봉 수준, 신고의 경제적 가치, 재취업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상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또는 사립학교 비리를 신고한 교사 경우 공립학교 특별채용 같은 식의 방식이 요청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적 보호 이상으로 시민들이 내부 제보자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배신자, 배반자가 아닌 우리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고발이 없었다면 나나 우리 가족이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a

이지문 대표는 내부고발이 있었을 때 고발자가 누구인지 보다 고발한 내용이 사회에 유익이 되는지 따져볼 것을 주문했다. ⓒ 지유석


- 이 대표께서는 줄곧 법적, 제도적 허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다. 마침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새 정부에서 내부 제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소속 공익제보지원위원회를 두었다. 대선후보 중 유일하게 공익제보 관련 조직을 선대위에 두었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조기 대선 역시 대통령 탄핵으로 이뤄졌고, 이는 결국 내부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4년 가까이 국정 농단이 있었지만 공무원들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는 점에서 필요성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새 정부에서는 내부 제보자 보호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민사회에서는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안을 마련하는 등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런 이유로 내부고발자 보호가 이전보다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부고발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그리고 혹시 꼭 내부고발을 해줬으면 하고 주시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면 말해달라.

"내부 고발에 나서는 분들 대다수는 준비가 없이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 그리고 알고 있는 사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직은 적극적으로 고발 내용을 부정하고 고발자 개인을 향해 인신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내부고발을 생각하는 경우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미리 관련 시민단체나 변호사 등을 만나 충분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반박할 수 없는 증거자료, 녹취 등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조직으로부터 흠집을 잡히지 않도록 근태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 내 컴퓨터나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고발하거나 상담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내부고발이 나오고 있고, 담배 소송도 벌어지고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된 내부고발을 기대한다. 그리고 원전 사업, 방산비리 등도 내부고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지문 #노승일 #고영태 #최순실 국정농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