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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박중훈 패러디 영화, 허접해도 행복해라

[공모-내 안의 덕후] 40대 중반 팬클럽 회장이라면, 이정도는 해줘야지요

17.04.01 16:40최종업데이트17.04.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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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혈액형은 B형이다. B형 남자가 구축한 철옹성 이미지는 바로 나쁜 남자다. 내가 고른 피도 아닌데, 일정 부분 억울한 면도 있지만 대략 수긍한다. 이외에도 B형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용두사미적 성격을 꼽을 수 있다. 시작은 창대하나 쉽게 싫증내고 마무리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순혈 B형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추진력은 따라올 자가 없다. 초반 투자 역시 지나치게 과하다. 창고에 쌓인 다양한 물품들은 사용설명서를 완독하기 전에 끌려들어 간 것들이 태반이다. 끝까지 한 우물만 파는 덕후의 피는 B형에게 애당초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흔 평생을 그렇게 믿고 살았다. 세상에 해보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부족한 건 의지가 아니라 시간과 돈이었다.

▲ 박중훈과 친구들 배우 박중훈, 그리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한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 이정혁


40대 중반, 박중훈 팬클럽 회장 되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났다. 여러 편의 글에서 그와 만남의 과정을 다루었으니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그의 이름은 배우 겸 감독인 박중훈이고, 나는 그의 열혈 팬이다. 그와 몇 차례 만나는 동안 충성도 면에서 마땅히 팬클럽 회장을 맡아야 함을 운명적으로 느꼈다. 전국의 수많은 팬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 지면을 통해 사과드린다. 사해와 같은 마음을 지닌 그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처음 맡아보는 회장 자리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 거는 것과 손에 장을 지지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팬클럽 회장으로써 작성한 일종의 업무 보고서다. 후대에 모범이 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모쪼록 팬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나, 라는 가이드라인 정도로 여기시라.

에피소드1. 1일 1엽서, 끼니는 걸러도 엽서는 못 걸러

▲ 박중훈의 라디오스타에 보낸 초창기 엽서-1 초기에 만든 엽서는 프로그램의 제목 정도 꾸미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도 만드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 이정혁


▲ 박중훈의 라디오스타에 보낸 초창기 엽서-2 조금씩 엽서를 꾸미는 데 드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이정혁


▲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엽서 놀이 동산에 갔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만든 엽서인데 그리고 색칠하는데 꼬박 두시간 반쯤 걸렸다. ⓒ 이정혁


▲ 최근에 보낸 엽서-1 그림과 그에 어울리는 짧은 글들을 적어 보내고 있다. 예쁜 글씨를 위해 캘리그라피도 배우는 중이다. ⓒ 이정혁


▲ 최근에 보낸 엽서-2 세월호 인양 발표후 3시간만에 연기한 정부의 발표가 있던 날 만든 엽서 ⓒ 이정혁


2017년부터 그가 라디오 디제이로 대중들 앞에 선다고 했다.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솟구쳤다. 퇴근길 라디오의 주된 청취자들은 비슷한 연배인 40, 50대라고 한다. 그 때 그 시절, 라디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엽서가 아니던가. 우리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새 라디오에 코를 박고 살았다. 운이 좋아 엽서라도 소개되는 날이면 뛰는 가슴 달래느라 잠을 설치지 않았는가?

매일 엽서를 한 통씩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깟 엽서쯤이야 하루에 열통도 가뿐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연 몇 줄 적은 평범한 엽서로는 팬클럽 회장의 품새가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좀 더 엽서를 정성스레 꾸며서 소녀 팬 같은 감수성을 듬뿍 담아보자.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 기회에 꿈 많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 보는 거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몇 장은 그저 예쁜 글씨로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 정도 적는 수준이었던 것이, 점차 스케일이 커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고 색칠을 하고. 엽서를 꾸미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균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엽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실 하루에 두 시간 짬을 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한 시간 운동하기도 힘든 것이 현대인의 고단한 삶 아니던가. 특히 나처럼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주말을 제외하고 무조건 매일 한 장이라는 원칙 하에,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전날 꼬박 두 장을 만들어야 했다. 오늘 할 일은 내일이든 모레든 하기만 하면 된다는 나의 생활신조에 예외조항이 생겼다.

그의 라디오 방송이 70일 넘게 전파를 탔다. 끼니는 걸러도 엽서는 거른 적이 없었다. 그간 만들어 보낸 엽서가 50여 장이 넘는다. ⓒ 이정민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나니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소재의 고갈이었다. 매일 다른 내용으로 보내야하므로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자나 깨나 엽서 생각만 하게 되었다. 당구 배울 때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더니, 딱 그 상황이 벌어졌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머릿속은 온통 엽서뿐이었다. 한 사람의 덕후가 막 태어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의 라디오 방송이 70일 넘게 전파를 탔다. 끼니는 걸러도 엽서는 거른 적이 없었다. 그간 만들어 보낸 엽서가 50여 장이 넘는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면 진즉에 중단했을 것이다. 엽서에 그림을 그리고 어울리는 글을 쓰고, 색칠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된다. 의무감에 시작한 엽서쓰기가 일상의 취미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가 라디오를 그만 둘 때까지 나의 엽서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마도.

▲ 그간 보낸 엽서들 그동안 보냈던 엽서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두었다 ⓒ 이정혁


에피소드2. 박중훈 형님의 생일, 헌정 영화를 바치다

얼마 전, 박중훈 형님의 생일이었다. 팬클럽 회장으로써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솔선수범이 필요했다. 남들 다하는 꽃다발이나 케이크 배달과는 차원이 다른 선물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 고민 끝에 그가 찍은 영화 중 명장면을 따라 찍어보기로 했다. 일명 헌정 영화. 장면에 맞게 연기를 하고 거기에 원작의 목소리를 덧씌우는 일종의 립싱크였다.

팬클럽 회원 몇 명을 자진해서 모았다. 영화 촬영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모여 영화같은 영상을 찍는 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저 유명한 <게임의 법칙>과 <라디오스타>의 엔딩신은 흉내 내기조차 힘든 명장면 들이다. 하지만 나와 우리들에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열렬한 팬심이 존재했다. 박중훈,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 박중훈 헌정 영화 촬영 장면 박중훈 형님을 추종하는 몇몇이 모여 즐겁게 영화를 촬영했다. 생각보다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 이정혁


영화를 돌려보며 대사를 적고 외우기 시작했다. 원작과 최대한 비슷한 의상을 준비하려고 장롱을 뒤집었다. 라디오 방송용 마이크를 대신해 아이들의 뽀로로 마이크가 희생되었고, 권총 대신 물총도 준비했다. 억지 눈물을 위한 안약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주방용 호일로 반사판을 만들고 캠핑용 조명도 빌려왔다. 촬영 준비 과정은 순조로웠다.

하루 저녁을 꼬박 들여서 간신히 영상을 만들었다. 서로 웃느라 엔지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저마다 최선을 다했다. 피 대신 케찹을 뒤집어쓰고, 수시로 안약을 뿌리며 나름의 인생연기를 펼쳤다. 허나 발연기는 발연기일 뿐, 찍어 둔 영상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우리는 배우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허탈한 마음은 편집에 기대를 걸게 했다. 다음날 깨달았다. 편집은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한 사람을 생각하며 똘똘 뭉쳐 땀 흘린 시간이 행복했다. 팬심은 이런 것이다. 뭘 주어도 아깝지 않은. 영화를 함께 찍었던 팬클럽 회원 한명의 아내가 H.O.T.의 열혈 팬이었다고 한다. 집 앞에서 며칠 씩 밤새는 건 기본이었고, 지금도 노래방에서 노래와 안무를 그대로 재현해 낸다. 그런 그의 아내가 영상을 보고는 한 마디 했다. "나도 이 정도까지는 안했다. 쯧쯧."

▲ 영화 '게임의 법칙' 패러디 박중훈 형님의 주옥 같은 명작인 '게임의 법칙'의 마지막 장면 패러디. 흘러내리는 피눈물은 토마토 케찹이다. ⓒ 이정혁


나는 자랑스러운 '박중훈 팬클럽'의 회장이다. 앞으로 있을 그의 데뷔 기념일, 결혼 기념일, 라디오 1주년, 환갑잔치 등등의 행사 때마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 덕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중년을 넘긴 나이에 깨달았다. 물론 나는 덕후가 아니다. 덕후라 불리기엔 아직 이도 안 났다. 그저 소소한 팬심을 지닌 일개 팬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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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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