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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랑, 사라진 아내... 30년 뒤 마주한 진실

[한뼘리뷰] 사랑과 변절, 그리고 남은 자들의 상처에 대하여 <폴링 스노우>

17.02.01 14:49최종업데이트17.02.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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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스노우>의 한장면 ⓒ (주)디씨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인 1961년. 소련 외교부에서 일하는 사샤(샘 리드 분)는 사절단으로 파견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한다. 아내 카티야(레베카 퍼거슨 분)와 함께 남몰래 미국행을 준비해 온 그는 일행에게서 벗어나 망명에 성공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내가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홀로 미국에 남게 된다. 30여 년 후, 뉴욕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노년을 보내고 있던 사샤 앞에 소련 해체 소식이 들려오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초청돼 미술 전시를 열게 된 조카 로렌(레베카 퍼거슨 분)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폴링 스노우>는 냉전으로 인한 연인의 이별과 상처를 다룬 로맨스 영화다. 스파이물과 로맨스를 엮어냈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한 <얼라이드>와도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 스파이의 사랑을 다룬 <얼라이드>와 달리 <폴링 스노우>의 서사는 미국과 소련 간의 첩보전 속에 피어난 로맨스에 대한 것이다.

<폴링 스노우>의 한장면 ⓒ (주)디씨드


사샤와 카티야의 이별을 시작으로 앞뒤로 뻗어나가는 플롯 구성은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지점이다. 영화는 과거의 사샤가 미국 망명을 결정한 이유를 조금씩 드러내는 한편 현재(소련 해체 이후)의 사샤가 몰랐던 진실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양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카티야에 대한 샤샤의 기억을 돌이키고, 그 와중에 상처를 입은 제3자들을 현재에 이르러 소환한다. 빈 칸들이 모여 긴장감을 쌓아 올린 끝에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맞닿는 영화의 플롯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기에 부족함이 없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이자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캐릭터는 다름아닌 로렌이다. 부모를 잃고 고모부 사샤 슬하에서 자란 그는 냉전이 만들어낸 비극의 산물이자 사샤에게 있어 잃어버린 카티야를 투영할 유일한 존재다. 작가인 로렌이 모스크바 갤러리에 카티야의 초상화를 내걸고, 러시아 기자 마리나(안체 트라우 분)를 통해 사샤와 카티야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들 연인의 과거 에피소드와 교차되며 기시감을 자아낸다. 특히 카티야와 로렌 두 인물을 맡아 1인 2역을 선보인 배우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는 영화 안팎에서 깊이 각인된다.

<폴링 스노우>의 한장면 ⓒ (주)디씨드


소련에 남은 사샤의 친구 미샤(안소니 헤드), 아버지를 잃은 마리나 등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영화를 단순한 스파이 로맨스물 이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 변절을 낳고, 이것이 또 다른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은 '국가'와 '안보'라는 이름의 폭력성을 효과적으로 상기시킨다. 여기에 사샤와 로렌, 마리나의 삼자대면 이후 밝혀지는 진실은 카티야를 향한 사샤 개인의 기억을 '남은 이들'의 치유와 용서로 치환하기에 이른다.

과거와 현재 두 줄기로 흐르는 플롯이 재차 연인, 친구, 동료, 가족 관계로 지나치게 파편화된 점은 못내 아쉬운 지점이다. 과거의 사샤-카티야-미샤, 현재의 로렌-마리나 다섯 인물의 심리가 서사에 매몰돼 좀처럼 깊이있게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한두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대신 폭넓게 분배된 캐릭터 설정은 10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 속에서 일견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꿈꾸었던 삶을 대신해 충실히 살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만큼은 유의미하다. 앞서 언급한 <얼라이드>와 나란하게 <폴링 스노우>가 남기는 숙제는 거기에 있다. 오는 2월 9일 개봉.

폴링스노우 얼라이드 소련 냉전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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