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기도발' 잘 받는 바위가 있다고?

선바위와 국사당을 품고 있는 인왕산

등록 2017.01.26 10:29수정 2017.01.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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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인왕산 중턱에 있다. ⓒ 곽동운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인왕산은 그 자체가 절경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인왕산에 대한 애정 공세는 오늘날에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성곽길을 탐방하는 도보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왕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모두 성곽길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성곽길 트레킹이 아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인왕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속인일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일반 시민일 수도 있다. 필자와 같이 역사 트레킹을 즐겨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그들은 어디를 가서 기원을 드릴까. 대충 아무 곳이나 가서 돗자리 펴고 절을 올리는 것일까.


선바위 누군가 간절히 기원을 드리고 있다. ⓒ 곽동운


승복을 입은 바위?
 
그들이 기원을 드리는 곳은 인왕산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선바위라는 곳이다. 선바위는 높이 7미터, 가로 10미터 정도가 되는 바위로 산 중턱에 불쑥 솟아 있다. 그렇게 바위의 규모가 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국사당 인왕산 선바위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국사당과 산악신앙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신사를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사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그렇게 아래쪽에 국사당이 자리 잡게 되니 선바위는 거석숭배문화에다 산악신앙까지 더해지게 된다. 선바위에서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이 국사당 앞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됐다는 것이다.  

선바위의 뒤태 선바위의 뒷모습.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닮았다. 그래서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 곽동운


무학대사와 정도전, 선바위를 두고 맞서다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왕산은 그 자체가 매력적인 산이다. 또한 그 안에 선바위와 국사당 같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잘 간직해온 산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풍광과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산이 서울 중심가에 '떡'하고 위치해 있는 것이다.

선바위 선바위는 정도전을 위시한 유교세력들에 의해 한양도성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에서보듯 선바위는 한양도성과 무척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 곽동운


백문이 불여일견! 인왕산에 직접 가서 선바위와 국사당을 탐방하고 오는 건 어떨까. 선바위가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기원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살짝 뒤로 돌아 선바위의 '뒤태'도 살펴보자. 앞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왔던 사오정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거기에 더해 유명한 수성동 계곡에도 가보자. 수성동계곡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은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인왕산에 올라 '기도발'도 세워보고, 유명한 수성동 계곡도 탐방하고. 그 아래 서촌에 들러 배도 채우고! 참 서울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 같다.


여행정보
1.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1번 출구 하차. 표지판을 따라 8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선바위에 도착함.
2. 추천이동경로: 선바위(국사당) ▶ 인왕산 성곽구간 ▶ 수성동계곡 ▶ 서촌




수성동계곡 수성동계곡에서 바라본 인왕산.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모습이다. ⓒ 곽동운


덧붙이는 글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인왕산 #선바위 #국사당 #무학대사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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