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농부도 얼마든지 투기꾼이 될 수 있다

세종시 덕분에 돈 좀 남기고 땅 팔았더니...

등록 2017.01.18 10:18수정 2017.01.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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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귀엽다고?"
"아뇨, 할아버지. '귀연'이라고요."


2007~2008년 아이 엄마와 함께 매달 잦게는 서너 차례씩 전국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32살 때 작심한 시골생활을 실천할 터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만 2년 동안 북으로는 강원도에서 남해안까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총 50번쯤 전국 시골 각지로 답사를 갔던 거 같다. 2년의 원정 답사 끝에 2008년 12월 현재 살고 있는 충남 공주의 시골 마을을 정착지로 정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류인 시골 마을의 기준으로는 꽤 젊은 40대 후반의 부부가 도시에서 이사 오겠다 하니, 당시 의아들 하셨던 모양이다. 그때만해도 이른바 귀농이 지금처럼 두드러지기 전이었다.

산업화 시대 우리 사회 특징이었던 이촌향도와는 정반대 흐름, 그러니까 이도향촌을 언론 등에서는 보통 '귀농'으로 불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귀촌' 개념이 생겼는데,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그때 귀농 귀촌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편이었는데, 귀연이라니 무슨 뜻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셨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귀연은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27살 때 시작한 서울 직장생활, 그로부터 5년쯤...


잡초와 수도전 매각 부지에 난 잡초들. 앞 파란 플라스틱은 수도관 덮개. 수도관 인입비용으로 100만원 가량이 지출됐다. ⓒ 김창엽


27살 때던 1988년 가을, 서울에서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대략 5년쯤이흐른 1993년 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이론적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도시 생활이 (섭리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석유화학 산업의 부산물과 콘크리트로 가득 찬 서울을 떠나 보다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겨우 제 발로 걸을 수 있었던 딸과 아들, 아이 엄마, 더불어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동생 셋에 나까지를 포함해 정확히 10명 식구의 생계가 거의 오롯이 내 어깨에 달려 있었다. 1993년 귀연을 결심했지만, 2008년 실천까지 정확히 15년이 걸렸던 것이다.

나로서는 틈만 나면 최대한 빨리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즉 시골 생활을 개시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기초 여건만 갖춰지면 서울을 떠나려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딸과 아들이 여차하면 노동 전선에 뛰어들 수 있을 나이가 되면, 웬만하면 시골로 떠나려했다. 2009년은 막내인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시점, 즉 사실상 성인으로 취급할 수 있는 나이였다.

정착 후보지를 물색하려 전국을 돌면서 최종적으로 마음이 끌리던 곳은 강원도, 그 가운데서도 해발 1000m 안팎의 홍천 고원지대 일대였다. 하지만 막판에 현재의 공주로 낙착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홍천으로 갈 경우 결혼 이후 동거보다는 별거기간이 훨씬 길었던 아이 엄마와 또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아이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전에서 일한다. 다른 하나는 연로한 어머니 아버지가 겨울이 길게는 연중 절반 가량인 강원도 산간 오지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자연스런' 농사는 상상했을 때보다 실전에서 훨씬 힘들었다

감자 맞아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일체 주지 않다 보니 풀은 우거지고 감자 알은 과장하면 콩알과 크기를 견줄만큼 알들이 작았다. 자연 농법 참 어렵다. ⓒ 김창엽


공주는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면적이 손꼽히게 큰 곳 가운데 하나다. 이중 우리 식구들이 정착한 현재의 시골 마을은 세종시와 경계가 10km 정도로 가까운 편이다.

2008년 말 당시는 세종시에 새 수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확정적으로 백지화 된 때였다. 한때 치솟았던 세종시 인근의 땅값은 다시 거의 원위치했지만, 여전히 토지거래 허가 지역으로 묶여있었다. 이듬해인가 풀린 토지거래규제로 인해 땅값을 제외하고, 내 입장에서는 훗날 세금으로만 총 1500만~2000만 원 정도의 손해를 봐야 했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만큼 우리 시골 마을은 귀연 정착지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가볍게 혹은 우습게 보고 구입했던 시골 땅 약 750평은 간단한 게 아니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가능하면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는 방식의 '자연스런' 농사는 상상했을 때보다 실전에선 훨씬 힘이 들었다. 집과 집터를 제외한 순수 경작 면적은 450평 정도였는데, 서너 해 풀과 싸워본 뒤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X, 이X, 이것들을 다 XX버리고 싶어."

지지난해 여름 풀과 싸움을 벌일 때, 입에서 욕이 절로 끊이지 않고 튀어 나오곤했다. 평소 육두문자를 거의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화를 가라 앉히기 힘들었다.

"아니 풀들이 무슨 사람 말을 알아들을까요? 화 내봐야 당신만 손해지."

아이 엄마는 반쯤은 놀리듯 날 진정시키곤 했다. 결국 풀과의 싸움에서는 난 손을 들고 말았다. 제명에 못살 것만 같았다.

만 8년 만에 거둔 40%의 순익

매각 부지와 옹벽 최근 매각한 부지(옹벽 앞쪽)와 옹벽. 저 옹벽 공사에 370만원 들었다. ⓒ 김창엽


결국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15년말, 또 지난해 10월 말 마당과 붙어 있는 조그만 밭하나를 빼고 두 필지를 팔아 치우고 말았다. 다른 어떤 이유에 앞서 풀들 꼴 보기 싫어서였다.

땅을 내놓기 전에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몇몇 분에게 매각 의사를 전달했다. 그때 알게 된 거지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은근한' 관심사는 첫째도 둘째도 매각 가격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확히 구입 당시 두 배 안팎의 가격에 팔아 치웠다. 시쳇말로 땅으로 '배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요하게 추진했던 세종시의 기업도시화가 좌절된 덕분이었다. 바꿔 말해, 세종시가 행정도시로 자리를 굳힌 게 주변 지역 땅값을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했다.

구입한 지 각각 만 7년과 만 8년된 땅을 매입가의 두 배로 팔았다고 했더니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그래~" 혹은 "그랬어?"하며 그저그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두 사람은 "비싸게 팔았다"며 질시 섞인 비난의 뒷담화를 날렸다.

졸지에 세종시 부동산 경기를 등에 업은 투기꾼 비슷하게 취급되기도 한 것이다. 사실 만 8년 만에 2배의 순수익을 거둬들였다면 나 자신은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매각가격이 매입가격의 2배라는 점이 내가 거둬들인 순익이 2배라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매입 때 취득세, 법무사와 중개사 보수료, 매각 때 양도세와 중개사보수료, 게다가 내 경우 옹벽 성토 공사, 상수도 인입, 토지분할 비용 등으로만 1000만 원도 훨씬 넘는 돈을 지출한 터였다. 차분히 영수증을 모아 계산해 보니, 순익은 매입 가격의 40% 수준이었다.

만 8년 만에 거둔 40%의 순익도 어쩌면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정기 예적금 등에 비하면 확실히 남는 재테크일 수도 있겠다. 시골 생활초기, '귀여운(귀연)' 농부라는 인식에서 땅 투기에도 소질이 있다는,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쪽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생겼더라도 말이다.

측량과 매각 팔려고 내놨던 땅의 경계를 측량하고 있다. 퇴비 포대들 주변으로 잡초가 우거져 있다. 징그런 풀들이다. ⓒ 김창엽


덧붙이는 글 땅과 사는 이야기를 담은 카페(cafe.daum.net/yourlot)에도 실렸습니다.
#공주 #세종 #투기 #귀연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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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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