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기 끊은 두 형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환을 향해서 ⑥] 두 형제, 영화 한 편에 인생의 나침판이 바뀌다

등록 2017.01.15 20:21수정 2017.01.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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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최대 열다섯 명까지 함께 생활했었다. 불법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사람들 가운데 함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했다
영화 한 편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을까? 두 청년 니콜라와 엉뚜완에게는 그런 것 같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사람이 바뀌더니 급기야 몇 달 만에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첩첩산중에 위치한 농장으로 자원봉사를 나섰다.

연말에 집에 잠시 들르더니 이번에는 아예 동생과 같이 길을 떠난다. 무엇이 두 형제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식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잠시 집에 들른 니콜라(21살)와 형을 따라 같이 집을 떠날 엉뚜완(18살)을 만나보았다.

벽시계를 좋아하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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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뚜완과 니콜라 동생 엉뚜완(좌)과 형 니콜라(우). ⓒ 정운례


파리 인근에 사는 니콜라는 벽시계 고치는 걸 좋아했다. 렌느(Rennes)에서 2년 유학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벽시계 장인의 아틀리에서 두 달간 연수를 받은 뒤, 아버지의 재정 지원으로 집 위층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벽시계를 주문받아 고치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사려고 파리에서 450km 떨어진 오베르뉴(Auvergne)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만난 벽시계 수리공이 그에게 '내일'이라는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다. 영화 얘기를 아주 잠깐 5초 정도 했을까.

지구가 직면한 환경적,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영화를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봤다. 현재 우리가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내가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데서 눈이 번쩍 뜨였다. 엄마를 데리고 가서 또 보고, 동생을 데리고 가서 또 봤다. 그렇게 해서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봤다.

핸드폰이든 음식이든 내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환경을 오염시키지는 않았고 않는지, 노동착취는 없었는지 등을 곰곰히 따져보니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더는 장을 볼 수가 없었다. 먼 나라에서 온 과일, 비닐에 포장되서 팔리는 야채, 제철이 아닌 먹거리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소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환경 피해가 엄청나고, 전 세계 곡류 생산량의 70%가 가축 사육에 소비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고기도 손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공장화된 사육시설에서 동물들이 무참하게 고통받는 걸 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육식을 조금 줄여볼까, 하고 시작한 게 어느덧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사흘동안 열렸던 '제로 웨이스트 축제(ZeroWaste Festival)'에 가서 배워왔다. 장을 볼 때, 비닐 포장이 없는 걸 사고, 장 볼 때 담아오는 종이봉투는 버리지 않고 쓰고 또 쓴다. 장을 보러 갈 때는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간다. 

사람이 물건 취급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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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야 농장에서 식사를 어디를 둘어봐도 산 밖에 없으니 공기가 얼마나 좋을 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늘 그렇듯이 수단과 에리트레아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과 함께 식사 준비 중. ⓒ 니콜라 로즈


그러고 나서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이 만든 다큐 영화 세 편 'Home' 'Terra' 'Planet Ocean'을 찾아서 이틀동안 연달아 봤다. 아름다운 지구를 보존하고 싶다,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껏 걸어온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삶을 거부하기로 했다. 자립하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사람이 물건 취급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러기엔 작업실에서 벽시계를 고치는 일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작업실 설치비를 갚기로 약속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우핑(WWOOFing),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며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을 떠났다. 햇볕 좋은 남쪽으로 가려고 했던 거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우핑' '자립' '퍼머컬쳐'란 단어로 검색하면 1300개 농장이 나오는데, 그중에 가축 사육하는 농장을 뻬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고  한다.

* 유투브에서 보기
영화 'Home' : https://www.youtube.com/watch?v=jqxENMKaeCU
영화 'Planet Ocean' : https://www.youtube.com/watch?v=QWn6ttf9NRg

라호야 계곡에 있는 농장에 도착하니 어디를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산중에 떨어진 밤을 줏어 연신 밤잼 만드는 일을 도왔다. 거기서 농장 일만 거들 줄 알았던 니콜라는 그때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농장이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와서 수단이나 에리트레아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이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오는데, 농장 주인 알랭과 카미유는 2년 전부터 그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이 일을 찾아 다른 데로 갈 때까지 머무는데, 니콜라가 있는 동안에 우퍼는 자기 하나였고 최대 열다섯 명까지 함께 생활했었다. 불법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사람들 가운데 함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했다.

"우리는 갖고 싶은 걸 다 갖고 있고, 이러한 풍요 속에서도 행복을 못 느끼는 데 그들은 아주 단순한 데서 행복을 느끼는 거예요 !"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알랭과 카미유의 집엔 값나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풍요로 가득했다. 파리 인근에서 니콜라가 살던 집은 큰 정원이 딸려있고 방도 여러 개여서 자기 방을 같고 있었는데, 그보다 작은 집에서 열다섯 명이 부대끼며 살다보니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었는 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무소유의 행복, 소유의 덧없음을 터득한 것이었을까? 5주간의 우핑에서 돌아온 니콜라는 다락방에 올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어린 시절 장난감과 책을 전부 다 재활용품점에 갔다 주었다. 차에 꽉꽉 실어 두 번 왕복할 정도였다.

니콜라는 내게 프랑스법 상 불법 이민자들에게 숙식은 제공해도 되지만 차에 태워주면 처벌을 받으니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했다. 불법 이민자라 해도 미성년자라면 보호해줘야 하는데 불법 미성년 이민자를 가차 없이 본국으로 호송하는 것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저질러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니콜라는 그들의 불평등한 삶에 귀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두 형제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부모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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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야 농장 라호야 계곡의 농장 앞 전경. 이런 첩첩산중에 2헥타르의 농장이 있다. ⓒ 니콜라 로즈


무술과 명상에 관심이 많은 동생 엉뚜완은 2016년 여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형이 '내일'을 보여줬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소비습관을 바꿨다. 아마존이나 슈퍼마켓 등 기업화된 상점, 인간이 기계부품처럼 취급되는 상점에는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책은 동네 서점에서 사고, 왠만하면 다 중고를 사기로 했다. 그것도 살 게 정 필요하다면!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했는데, 육식이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걸 알고부터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채식은 식탁에서 고기만 빼는 게 아니었다. 채식을 먼저 시작한 형이 고기 대신 콩류, 견과류, 곡류를 정기적으로 다양하게 섭취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2016년 9월에 입학한 고등기술 대학교(IUT : Institutuniversitaire de technologie)에 휴학계를 내고 2017년 1월 중순, 형과 함께 우핑을 떠나기로 했다.

대를 이어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핑을 떠난다는 결심에 - 그것도 두 형제가 다-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다. 화를 내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학비를 안 대주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드라마같은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형이 우핑을 떠난다고 했을 때처럼 놀라셨지만 평소처럼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주셨고, 기차표를 끊어주셨다. 평소에도 절대 큰소리 한번 치지 않으셨고, 자식이 하는 것에 늘 관심을 기울어주셨다.

대학에 진학한 후, 둘째 아들이 점점 우울해 하고 안으로 닫혀가는 걸 안타깝게 보아왔던 어머니는 그의 새로운 선택에 오히려 매우 기뻐하셨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좋은 기회다, 그다음에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며 아들을 독려하셨다. 지금은 이혼해서 따로 사시지만 두 분 다 인자하고 이해심이 많은 부모라고 두 형제가 입을 모아 말한다.

환경문제, 먹거리, 유기농 등 몇 년 동안 아무리 말해도 안 듣더니 영화를 한 편 보고 '우리 애가 변했다'고 신이 나서 내게 말한 건 사실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지역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무직을 보시는데, 지금은 자기보다 더한 환경가로 변신한 아들이 자랑스러워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아끼지 않으신다.

반면에 니콜라의 아버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정유회사 토탈(Total)에서 근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니콜라는 생각한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기업 중 하나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 영화를 보기 두려워하시는 것 같고, 니콜라도 권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두 형제 다 먹거리와 주거를 자기 손으로 자족하고, 더불어 남을 돕고 싶다고 답한다. 엉뚜완은 한때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서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군인은 사람을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그 꿈을 접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을 그렇게 바꾸라

그들의 집을 나오면서 체 게바라가 떠올랐다. 게바라가 의대생이었을 때,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 하나로 남미를 여행한다. 체는 여행 도중 첫사랑도 경험하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극빈곤층을 접하고,노동력이 착취당하는 부당한 상황을 목격한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게바라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의대를 졸업하지만 더이상 지난 날의 에르네스토가 아니었다. 그가 남미를 여행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면, 느꼈다 하더라도 사회 불평등에 맞써 싸우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저 평범한 쿠바 의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간디 왈,'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다수의 타인이 아닌 나의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심장이 뛰는 일을 향해 돛을 펼치는 두 형제의 모험에 순풍이 함께 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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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주가를 날리던 2008년, 서버에 대한 보이콧으로 티스토리로 이주. '에꼴로'란 닉넴으로 활동하던 파워트위터러. 친환경, 유기농, 대안적인 삶, 지속가능한 사회에 관한 기사를 수 년 째 여러 온오프 매체에 기고. 사람만나고 사진찍고 글쓰고 영화보고 노래하길 즐기는 한량.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좀 진작 할껄!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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