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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실종됐다, 가족들은 웃음을 잃었다

[한뼘리뷰] 카슈미르의 슬픈 자화상... 인도 영화 <가을>

17.01.07 11:56최종업데이트17.01.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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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 Chasingtales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으로, 이곳을 두고 몇 차례 전쟁까지 치른 두 나라가 분할 통치하고 있다. 이런 대립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1980년대 후반 인도가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 남동부 지역에서는 분리·독립주의자들이 궐기하기 시작했으며, 지금 이곳은 기존 영토분쟁에 '내전'과 '테러' 양상까지 더해지면서 갈등 구도가 한층 복잡해졌다.

<가을>(Harud, 아미르 바쉬르 감독, 2010)은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며, 그곳에 사는 한 청년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과 친구들 이야기를 통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화된 카슈미르 사람들의 삶을 포착한 작품이다.

형이 실종된 이후 청년 라피크의 가족은 웃음을 잃었다. 교통경찰인 아버지는 라피크마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됐으며, 인도 군부가 아들을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진상규명 활동을 하며 슬픔을 삭이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숨 막히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날 기회만 엿보는 라피크. 그러나 폭탄 테러를 묵인했던 아버지가 자책감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서 라피크는 곤란한 지경에 놓인다.

카슈미르의 현실은, 이 땅을 터전으로 삼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 Chasingtales


이 영화에서 주목하게 되는 건 억압받고 있는 카슈미르의 현실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사건이나 각종 언급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특정 이미지가 반복되고 쌓이면서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카슈미르의 분위기다.

이 영화에는 감시와 통제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카메라는 라피크를 비롯한 카슈미르 남자들이 검문검색을 받거나 난데없는 소집명령에 순응하는 모습을 길게 보여주고, 주요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철조망, 초소, 총부리, 총을 든 인도 군인의 모습 등을 배경으로 배치하거나 인서트 숏, 시점 숏 등으로 집요하게 담아낸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곳에서 탈출을 희구하는 라피크의 심리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또 이 영화는 인서트 숏으로 잡은 단풍잎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질 단풍잎의 고유 이미지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라피크의 절박함, 쇠락해가고 있는 카슈미르 사람들의 기운 등을 제대로 대변한다. 이 영화가 현대 카슈미르의 슬픈 자화상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고, 언제라도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집마저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이 일상이 된다면 과연 그곳에서 사람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이런 환경에서 사람은 늘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유를 갈망하며 변화를 모색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체념하거나 다만 익숙해질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 길들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함은 때로 순응을 의미하며, 순응은 무기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길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슈미르 사람들처럼 인위적으로 분단된 땅에 사는 한국인들 또한 이산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상황에 길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인도 영화 <가을>의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 Chasing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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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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