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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친구 기억하기 위해, 그녀는 손목에 문신을 새겼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EBS <다큐프라임>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편

16.12.14 16:44최종업데이트16.12.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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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10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 5부는 '스무살, 살아남의 자의 슬픔'편에 출연한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들의 모습. 그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 EBS


"너무 물이 빨리 차서 애들이 못 나오는 거예요. 막 비명 지르고 손을 이러는(내뻗는) 거예요. 허우적대고…. 애들한테는 그게 제일 미안해요. 못 구해 준 거." (양정원 학생)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휴대폰에서 나온 영상에서는 연신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사고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이종범 학생은 구조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탑승자들보다 "전문적인 기술자"들이 배 안에 있고, 또 해경을 믿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는 사이 "살려주세요. 점점 더 기울어요"라던 단원고 학생의 119 신고 전화가 접수되기도 했지만, 뒤늦게 출동한 해경은 아이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국민도 알고, 생존자 학생들도 안다. 그래서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해경의 구조는 없었다.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EBS


"방송으로 나오더라고요.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경이 오고 있으니까." (박준혁 학생)

"솔직히 구조는 기본이니까. 저희가 구조될 줄 알았거든요. 해경이 배 안에 들어와서. 솔직히 구조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도와준 건 있지만 주된 탈출은 저희가 한 거 같아요. 구조라기보다는." (양정원 학생)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해서 뛰어내린 다음에 (그 사람이) 이렇게 물속에서 건져 준 것밖에 없으니까." (장애진 학생)

그 기본인 줄 알았던 '구조'는 없었다. 대신 '기다리고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만 계속됐다. 그러는 사이 어른들을 믿은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 안 구석을 찾아 들어갔다. 가까스로 '각자도생'한 아이들만이 살아남았다. "이대로 있으면 죽겠구나!" 싶어서 배 밖으로 구사일생 끝에 탈출한 아이들이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조사가 예정된 3차 국회 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3일 오후 10시, EBS <다큐프라임> '감정 시대' 5부는 '스무 살, 살아남의 자의 슬픔' 편(아래 <다큐프라임>)을 통해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단원고 졸업생 4인의 증언을 듣고, 그들의 현재를 조명했다. tbs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방영되던 시각이었다.

"먼저 간 친구들만이라도 좋게 기억해 주세요"

"많이 기억해주면 고맙고…. 거기까지는 안 바라고요, 그냥 나쁘게 생각하지만 않았으면. 먼저 간 친구들이 뭐라고 나쁘게 생각을 해요. 걔들은 그냥 죄 없이 그렇게 갔는데. 가끔 댓글 보면 제 친구들을 욕하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무슨 죄가 있다고. 정말 나쁘게만 생각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남아있는 친구들까지는 안 바라고, 먼저 간 친구들만이라도 좋게 생각해주고 기억해주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말과 또 말들을 들었던 걸까. 카메라 앞에선 스무 살 대학생 박준혁 군은 슬프게 웃어 보였다. 박 군은 세월호 참사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단원고 졸업생이다. 그는 생존한 친구들은 몰라도 "먼저 간 친구들"만은 좋게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또 지당한 저 부탁에, 2년 넘게 우리 사회 일각에서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할퀴었던 말과 '막말'의 상처가 스쳐 지나간다.

지난 2월 말 방송된 <SBS 스페셜>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에 출연했던 박준혁 군은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의 사진을 들고 처음 가보는 제주 땅을 밟기도 했다. 그 박준혁 군은 조금 더 차분해 보였다.

대학생이 됐고, 새로운 선배, 동기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또래 청소년과 그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다치 않고 참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리 차분하고 씩씩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250여 명의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생존자는 고작 75명뿐이다.

먼저 떠난 친구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 EBS


"진짜 착했어요. 그냥 계속 생각나고 그냥 계속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던 거 같아요. 그냥 혼자만 나왔다는 거 때문에?"

인터뷰 도중, 이종범 군이 지갑 속 사진을 보여주며 "재강이요"란 친구 이름을 발성했다. 그러자 이윽고, 고개를 떨구고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두고 먼저 객실로 내려갔던 친구는 이제 봉안당의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됐다.

"제일 소중한 친구"의 사진을 "보고 싶을 수 있으니까 굳이 뺄 필요는 없다"는 이종범 군에게가 가장 크게 남은 기억은 '미안함'일 것이다. 다른 생존자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의 빈자리는 범인들이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리라.

"별로 잘 해주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런 것이 좀 걸리고. 그냥 혼자 나왔다는 것 때문에? 그런 꿈 많고 재능 있는 애들이 갑자기 다 사라져 버렸잖아요. 그냥 그런 애들이 나왔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저보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박준혁 학생)

2년이 넘었어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

손목에 새긴 문신. 팔찌는 낡을 수 있으니까,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 EBS


"나중에 (세월호 기억) 팔찌 같은 건 잃어버릴 수도 있고 낡기도 하고 그래서. (문신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오른 팔목에 '20140416'이란 숫자가 새겨진 노란 리본을 문신한 장애진 학생은 아이들을 좋아해 유아교육과를 지망했었다. 그런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도망치는 사람이 아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응급구조학과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사건 발생 초기만 해도,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그 친구들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힘겨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모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이, 안아주며 위로를 건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합동분향소에서 고 오영석 군 어머니인 권미화씨는 장애진 학생을 떠나간 자식인 양 꼭 끌어안은 채 펑펑 울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흘렸다던 진짜 '피눈물'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생존자 학생들은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물을 무서워하게 됐고, 수면제를 매일 복용해야 했으며, 그날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사고 이후 얼마간, 집보다 병원이 더 편했다는 양정원 학생은 지난 8월 초 이전이 결정된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았다. 양정원 학생은 "원래 그동안 저희가 있었던 곳(기억교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텅 빈 표정으로 "그래도 기억이 나요"라며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봤다. "그래도 기억이 나요"라는 양정원 학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가오는 세월호 1000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아직 이들을 위로하지 못했다. ⓒ EBS


<다큐프라임>이 방영된 다음 날인 오늘(14일), 국회에서는 '세월호 7시간'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생존자 학생들은 "기억해 달라"고 했다. 또 "기억하겠다"고 했다.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을 말이다. 그러면서 "나쁘게만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그 생존자들의 '살아남은 슬픔'을 덜어주는 일은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그래서, 왜 그날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는지, 왜 당연해야 했을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는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사고였는지, 인재였는지 진상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희생자들을 오래오래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일일 것이다.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를 따라잡은 <다큐프라임>이 다 못한 말은 바로 그 슬픔 뒤로 감춘 아픈 속내였을 것이다.

이종범 학생은 출연한 계기에 대해 "악의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 도와주는 거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양애진 학생 역시 "맨날 (저희) 부모님들이 계속 활동해도, 사람들이 '(부모님들은) 당사자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셔서, 너희들이 (활동)하는 것이 더 맞다고, 그래서 그게 맞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하고, 또 직접 활동하는 것이 바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생존자들의 슬픔. 그들은 그렇게 망각과 싸우는 중이었다. <다큐프라임> 역시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억하기 위해, 망각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다큐멘터리였다.

한편, <다큐프라임>이 방송되기 직전 JTBC <뉴스룸>은 엔딩곡으로 지난해 5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부른 '네버엔딩 스토리'을 들려줬다. 그리고 오는 2017년 1월 9일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한 달이 되는 날이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세월호 다큐프라임 EBS 세월호7시간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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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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