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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이별했다, 이보다 가혹할 수 없었다

[리뷰] 불확실한 청춘을 그린 대만영화 <카페 6>

16.11.22 17:30최종업데이트16.11.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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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미컬한 풋내기들의 사랑을 그려내는가 싶더니 그것만이 핵심은 아니었다. 영화는 설익은 청춘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단 심정을 한 눈빛으로 주인공 관민록을 바라보게 한다.

어리고 겁 없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연인 그리고 늘 지켜주던 가족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균열. 그로 인한 민록의 선택은 불확실하고 두려운 청춘을 대변한다.

비 오는 날 밤, 마치 그 첫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그곳에 있었던 듯 밝혀진 카페의 불빛. 따스한 불빛 아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장 넘기듯, 풋풋했던 시절의 짧았던 찰나를 본다.

2년간 짝사랑한 같은 반 여학생 이심예에게 고백 한 번 못해본 수줍은 남학생 관민록. 희망 없이 꼴등을 다투는 성적일지라도 꽤 행복하다. 바라만 봐도 좋은 심예가 귀여운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웃고 있는 교실은 더 바랄 것 없는 민록의 천국이다.

직접 그린 그녀의 그림과 초콜릿을 용기 내어 전해준 처음을 계기로 심예의 관심을 얻게 된 민록. 심예의 마음을 선물처럼 얻게 되어 시작한 풋풋한 연애는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달콤했다.

우린 처음부터 달랐어

주인공 민록(동자건)과 심예(안탁령)의 학창 시절. ⓒ (주)라이크 콘텐츠


"미래는 불확실한 것투성이야."

민록이 사랑한,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여자 심예. 민록의 진심에 이끌려 연애를 시작했지만,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신분의 연애는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여겼다. 입시가 끝나고 혹여나 서로 다른 대학에 가게 되며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벌어질 상황의 변화는, 그녀의 불안 신경계를 더욱 자극했다. 예상했던 대로 결국 대학 때문에 둘의 물리적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심예가 두려워했던 불확실함이 해소되지 못한 채, 장거리 연애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심예의 인공위성이 되어 그녀 궤도 안으로 들어가야지."

사랑하기 때문에 충분히 사랑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자신의 연인을 향해 몸소 실행하는 민록. 그에게 있어 장거리 연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교감하기 위해, 매일 그녀와 같은 메뉴의 식사를 하고 통화를 했다. 대학생활의 새로운 변화는 아르바이트와 기차 이외엔 없었다. 일상의 전부를 심예를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했다. 아르바이트비의 80%를 기차표 구입에 쏟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기숙사 방보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고생스런 장거리 연애는 민록의 필사적인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연애의 시작부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던 심예와, 어떠한 두려움 없이 현실적인 장벽만을 뛰어넘고자 죽도록 노력했던 민록의 사랑은 점차 어긋나고 만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먼 곳을 보며 미래를 계획하고자 했던 심예와 달리, 지금 심예와의 사랑만이 삶 전부였던 민록. 그토록 그녀와 함께 있고자 대학생활을 내팽개치고 수없이 달려왔던 자기 시간을 통렬하게 후려치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날아온 문자는 야속하기만 했다.

"넌 내 곁에 없었어."

움직이는 남자, 움직이지 않는 여자

모든 청춘이 만나는 첫사랑 그리고 이별. 이별을 늦추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 (주)라이크 콘텐츠


설렘과 낭만이 전부였던 민록과 심예의 첫사랑이, 지칠 대로 지친 장거리 연애로 변화되는 그 과정에서 둘의 위치는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레 규정되었다. 상대를 향해 어떤 이유도 달지 않고 돌진하는 남자와 그대로 멈춰 붙박인 듯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는 여자.

연애관계에서도 습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관계의 어떤 습관이 변하지 않고 지속하면 그것이 법칙이 되어 둘 사이를 지배한다.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여력만 되면 기꺼이 움직이는 남자는 다른 생각의 겨를 없이 둘만의 사랑에 집중하게 된다. 반면 가만히 그가 와주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여자는 다른 생각에 빠지고 만다.

'지금 이 남자를 사랑하지만, 내가 이 남자와 언제까지 이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연인이 자신의 곁으로 달려와도 곁을 내주지 않던 여자는, 결국 연애를 하고 있어도 외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심예가 단 한 번만이라도 먼저 민록이 있는 곳을 향해 기차를 탔다면, 둘의 관계는 좀 달라졌을까. 어떤 법칙의 존재 없이, 고착화된 역할 없이, 서로 매 순간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연애했다면 그들 첫사랑의 유효기간은 좀 더 길어졌을까.

청춘, 이별보다 더 큰 가혹함은 없다

늘 변함없이 엄격하게 차려진 밥상. 나물 반찬 세 가지, 국 하나. 식지 않은 밥상을 민록을 위해 차려두고 일터로 떠나는 그의 엄마는, 간호사 교대근무를 하며 아들을 여태껏 혼자 키웠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남자와 새 가정을 꾸려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혼자 아들을 잘 키워내겠다고 선택한 엄마의 인생에서, 아들을 향한 '엄격한 사랑'은 남편 잃은 '가혹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사랑이었다. 남편 없는 살림에서 엄격하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자식 키워내는 일. 보통의 다른 현실적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생의 과제로 여겨지는 자식으로 인해 엄마들은 어떤 혹독한 어려움도 떨쳐내려 애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이겨낼 수 없던 엄마의 오랜 병. 아들에게 쉽게 말 못하고 견딘, 엄격하고 철저했던 엄마의 마지막은 급작스러웠다. 준비할 새 없이 찾아온 엄마와의 이별은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넘어섰다. 사랑했던 이들과의 연이은 이별로 인해 민록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글들은 울적하게 춤을 췄다. 살아있는 동안 그의 엄마가 선택했던 '엄격함'과 비등하게, 민록에게도 자신에게 닥친 가혹함을 견뎌낼 수 있을 만한 어떤 선택적인 태도가 있었더라면.

불확실한 선택을 연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시기를 사는 덜 여문 청춘 민록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은, 그의 엄마가 수용하며 살았던 현실보다 더 불행하게 여겨졌다. 청춘에게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만큼 더 큰 가혹함도 없다.

원작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자운 감독의 대만영화 <카페6>의 이야기이다. ⓒ (주)라이크 콘텐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카페6 오자운 첫사랑 대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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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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