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근혜와 최순실을 사랑할 수 있을까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8] <조선상고사> 읽기 첫 번째 시간, 나부터 시작하는 민족적 성찰

등록 2016.11.14 18:06수정 2016.12.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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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대통령이 울먹이던 날, 실은 조금 통쾌했었다. 참담한 심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은근한 기대감이 더 컸다. 지지율이 주저앉았단 뉴스를 들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콘크리트 지지율에 망연자실했었는데, 막판 최순실 한방에 이렇게까지 곤두박질치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무너질까. 이참에 아주 확실하게 끝장까지 내몰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이런 호기가 또 언제 오겠나.

퇴근하고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에 참석했다. 매주 금요일 '역사-과거·현재·미래'란 주제로  동네 이웃들 하고 같이 공부하고 있다. 발걸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웠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역사 공부도 더 치열하고 통쾌하겠거니 생각했다.
  
책을 놓을 수 없는 묘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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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신채호 지음, 비봉출판사 펴냄) ⓒ 비봉출판사

11월 4일은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를 함께 읽는 첫 시간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자 역사가였던 신채호 선생은 투옥 중, 죽음을 앞둔 시점에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해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조선상고사>를 집필한다. 우리는 그 책을 4주에 걸쳐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

9~10명씩 총 일곱 모둠으로 흩어졌다. 우리 모둠에는 3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두 살배기를 업고 온 젊은 부부와 열일곱 학생도 함께했다. 다른 모둠을 보니 나이 지긋한 어른도 보이고, 3~4살 꼬마도 끼어 있었다. 모두 합하면 70여 명이 되는데, 연령대는 3세대를 넘나들었다.

돌아가면서 책 읽은 소감을 나눴다. 우선 읽기 어려웠다는 데 모두 동감했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계속 읽게 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 점에서도 모두 의견이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 힘은 뭐였을까.


"'수백 원이 있으면 묘 한 개를 파 볼 수 있고, 수천 원 혹 수만 원만 있으면 능 한 개를 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수천 년 전 고구려인들이 생활한 모습에 대한 살아있는 사진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꿈만 꾸었다." <조선상고사 50p>

이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신채호 선생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슬프다."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자 했던 선생의 노정은 <조선상고사> 곳곳에 묻어 나온다. "아, 슬프다"는 탄성이 반복될 때마다, 작은 사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매달린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며, 책을 놓기 힘든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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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서 책 읽은 소감을 나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모임 시작할 때 불렀던 노래 '그날이 오면'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우리의 소원은 단 하나. 다시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 두 손 꼭 잡고서. 기쁜 노래를 부르자.' 신채호 선생의 부르짖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우리는 만나야만 한다, 올바른 역사의 강물에서 다같이 만나서 기쁜 노래를 부르자'라고.

我!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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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我!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 시국에 이런 공부를 하게 된 건 우연이었을까. 마지막 두 구절이 의미심장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각 모둠별 나눔과 토론을 마치고 전체 모둠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4절지에 정리한 각양각색의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고 수렴하는 시간을 보냈다. 첫 모둠에서는 6개의 압축된 문장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정리했다. '아我! 지금까지 몰랐다니?, 아我! 어려운데 이 감동은 뭐지?, 아我! 이 시국에 이런 공부를. 아我! 사소한 것이 얼마나 중헌디. 아我!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 아我!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 시국에 이런 공부를 하게 된 건 우연이었을까. 마지막 두 구절이 의미심장했다.

"내 생각과 편견, 쌓아 왔던 것들을 버리고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공부는 끊임없이 우리를 버리는 과정인 것 같아요. 마지막 결론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로 모아졌어요. 최순실, 박근혜를 욕하기는 쉬운데, 그러면 끝일까.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까지 가야 할 것 같아요."

최봉실 대표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관한 나눔을 이어받았다. 대통령 담화가 있던 날 새벽 괴로웠던 마음을 담아 그 자리에서 일필휘지로 적은 시를 나누었다. 그것은 무겁고 엄중한 시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인 동시에 삶에 관한 고백이고 사랑에 관한 노래였다.

온 땅에 사랑이 사무친다
이 작은 가슴에 절절한 사랑이 회오리친다
가엾고 가엾은 영혼이여
너의 비뚤어진 생이
이 땅의 처연한 역사여라
내 사무치는 깊은 사랑이
네 앞에서 연민에 통곡한다
가련하고 가련한 영혼이여
너 짓밟혀진 영혼이 이 땅을 농락하여
수많은 생명을 유린하였다
기쁨도 슬픔도 정의도 불의에도 무지몽매한
안타까운 영혼이여
기적으로 내 온몸을 사로잡은 이 뜨거운 사랑이
그 사무침으로
너 앞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내 사랑아
이 역사여
네 영혼이여

사랑이 온몸을 사로잡을 만큼 뜨겁다니, 그 사무침으로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니. 우리나라를 이렇게까지 곤두박질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할 수 있을까.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사실을 감춘 채 그 주위에서 호가호위했던 수많이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메아리쳤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도 우리도 각자의 책임에 철저히 서게 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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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는 대통령 담화가 있던 날 새벽에 지은 무겁고 엄중한 시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인 동시에 삶에 관한 고백이고 사랑 노래인 시를 나누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나)'와 '비아(非我: 나 아닌 나의 상대)'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고,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응전과 도전의 역사'라고 했다. 그런데 신채호 선생은 '나'와 '나 아닌 나의 상대' 간에 벌이는 투쟁이 곧 역사라고 했다. 그것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될 때 그것을 두고 역사라 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의해서 볼 점은 마지막에 이것을 심적 활동 상태라고 한 대목이다.

고구려의 선배제도,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진 낭가 사상, 우리 정신의 정수이다. '학문에 힘쓰며, 수박(手搏)·사예(射藝)·기마·턱견이·깨금질·씨름 등 각종 기예를 하며, 원근 산수에 탐험하며 시가와 음악을 익히며, 공동으로 한 곳에 숙식하며, 평시에는 환난 구제와 성곽·도로 등의 수축 등을 자임하고, 난시에는 전장에 나가 죽음을 영광으로 알아 공익을 위하여 일신을 희생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낭가 사상이 활동하는 상태가 바로 심적 활동 상태이다.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의 실패 이후로 사장된 이 낭가 사상을 다시 활동 상태로 회복하여 비아인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역사가였던 선생에게는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독립운동 최전선에 섰던 선생은 한국 고대사부터 우리 민족이 비아와 어떤 투쟁을 치르고 어떻게 나라를 지켜왔는지를 기록하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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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느끼게 된 민족을 향한 신채호 선생의 사랑이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이윤주 씨. ⓒ 새들생명울배움터


"투쟁은 싸움과 동시에 치열한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직한 마음으로 분별하고 성찰하며 서로 만나가는 것,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죠. 그래서 민족을 향한 신채호 선생님의 사랑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뜨거움으로, 때로는 처절함과 간절함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이윤주씨, 33세)

비단 일제 침탈의 역사뿐일까. 인류 사회의 역사는 모름지기 '내'가 '너'를 만나면서 생긴 과제들을 극복하고 투쟁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투쟁의 만남은 그저 나와 너를 가르는 것이 아니다. 신채호 선생도 '내'가 없으면 '네'가 없고,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나와 너는 나눠진 존재가 아니라 함께하는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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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만나야 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길 바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우리 역사는 오직 민족적 반성에 달렸다

"하나는 항성(恒性: 시대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성질)이고, 둘은 변성(邊城: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변하는 성질)이다. 항성은 제1의 자성(自性)이고 변성은 제2의 자성이다. 항성이 많고 변성이 적으면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여 멸절할 것이며, 항성은 적고 변성이 많으면 항성이 더 우수한 자의 정복을 받아 열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두 가지 자성의 많고 적음을 조절하고 무겁고 가벼움을 고르게 하여 그 생명을 천지와 같이 장구하게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민족적 반성 여하에 달려 있을 것이다." <조선상고사 83p>

또 다른 모둠에서는 신채호 선생이 말한 '민족적 반성'이란 단어에 주목했다. 

"이 시국에 우리가 역사 공부하는 것이 뜻인 것 같아요. 저희 모둠에 있는 열여덟 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역사도 해석될 수 있으면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가 개인을 만든다는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시국은 그냥 누군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의 반성이 요구되는 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의 반성이 필요합니다."

장미진씨(33세)는 민족적 반성이란 사회적 반성과 개인적 반성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의 잘못이고,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지가 철저히 밝혀지길 원하는 것처럼 우리 개인의 문제에도 인과관계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신채호 선생도 그랬다. 작은 것 하나 철저히 고증하고 또 고증했다. 이두문자를 보며 한자의 음을 취한 것과 뜻을 취한 것을 구분하여 살폈고, 사람의 이름, 지명의 이름, 관직의 이름 하나 허투루 해석되지 않을 수 있도록 주의하고 그 연원을 살폈다. 

"이와 같이 자잘하고 상세한 고증이 무슨 역사상의 큰 일이 되느냐? 그러나 이것은 잗다란 일인 듯하나 지지(地誌)의 잘못도 이로써 바로잡을 수 있으며, 사료의 의심스러운 것도 이로써 보완할 수 있으며, 고대의 문학부터 생활상태까지 연구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자잘하고 상세한 고증(考證)이 역사상 큰일은 아니지만 도리어 역사상의 큰 사실을 발견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조선상고사 58p>

이 세상에 작고 사소한 일은 없다. 왜냐면 그것이 곧 큰일의 밑거름이 되고 큰일이 벌어진 저간의 사정을 밝힐 단서가 되기에 그렇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문제들을 정성 들여 꼼꼼하고 세세하게 다루는 태도가 쌓일 때, 결국 큰일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맞설 수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가난한 역사가 신채호가 그토록 당당한 어조로 우리 역사를 기술할 수 있었던 힘은 이런 작고 사소한 것을 중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나왔으리라.

실제로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의문만 넘쳐 나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태블릿PC에서 나온 개인의 이메일 기록 하나로 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안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던 청와대 비서관들은 휴대폰 문자, 녹음 기록이 드러나며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고백했다. 하나둘 밝혀지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정국을 풀어가는 열쇠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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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산을 위해선 우리 모두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발표한 조동휘 씨. ⓒ 새들생명울배움터


"신채호 선생님은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문헌들을 살피며 역사적 맥을 찾아가는 것을 감탄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이 천재이기에 이런 역사책을 쓸 수 있을까 다시 물으니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대를 향한 간절함, 진실을 찾고자 하는 선생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같은 간절함이 있을 때 민족적 반성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과 같이 천재가 되어야 합니다." (조동휘 씨, 33세) 

나눔을 듣고 최봉실 대표는 민족적 반성이 가능할지 역사 청산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최 대표는 역사가 청산되리라고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미래로 나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어려움은 내 어려움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가 편하다는 생각이 내 자신을 붙든다. 최 대표는 지독할 만큼, 죽기보다 싫을 만큼 현재 한계를 넘어가기 싫은 것이 우리 본성이라고 했다. 역사 청산은 내 문제가 아니며 나는 일말의 책임이 없다는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사는 청산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우리 책임은 없는 것일까 최 대표는 지금은 '역사 청산'이라는 선언이 중요한 때가 아니라고 했다. 선언에만 그쳐선 안 되고 구체적인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역사 청산의 문제가 내 문제와 동일한 무게로 뼈아프게 다가와야 한다.

"'박정희'로부터 내려온 역사적 한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철저하게 짓밟아도 된다는 현 주류 문화의 권력화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역사적, 개인적 한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이때를 놓치면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 대표는 박근혜라는 개인이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침묵하고 오히려 이를 이용한 세력에 있다고 했다.

"자기 잇속을 철저하게 누리고 있었던 존재들은 지금까지 청산되지 않았던, 청산되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핵심입니다. '박근혜'라는 개인은 통시적으로 흘러 내려온 우리 역사의 과제를 모두 담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 상징적인 존재를 둘러싸고 잇속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던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이 점을 짚어야 하고 물어야 하고, 역사 청산의 과제로 가져가야 합니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하나씩 하나씩 열릴 때마다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어떻게 지금껏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선거의 여왕이어서? 박정희의 딸이어서? 물론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암묵적 묵인 또는 집단적 합의였다.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의 이 시국이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온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역사의 크나큰 모순이라는 점을 서서히 그리고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박근혜'가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중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고 퇴장할 테지만, '박근혜'로 상징되는 역사의 흐름은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묵인하고 있는 우리가 더 '중허다'. 역사는 우리의 침묵과 외면으로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 자식들에게 그대로 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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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주도한 모둠에서 정리한 내용. ⓒ 새들생명울배움터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모둠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청소년 모둠은 나눠준 종이에다가 나무의 뿌리를 그려 넣었다. 뿌리는 신채호 선생님이 말한 역사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상속성의 역사, 보편성의 역사. 두 가지 질문이 이 어린 친구들의 공부를 자극했다. '왜 역사는 진실 되게 상속되지 않는가?', '진실한 역사를 쓴다는 것은 가능한가?'. 이 난제들을 통과하면서 이들이 내린 귀결점은 '중심을 지키는 양심', 곧 충忠이었다. 충심(忠心)을 지키는 것, 신채호 선생님의 삶과도 잇닿아 있는 고백이었다.

기도하고 기록하고 잘 계승하자

진실된 역사를 써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최봉실 대표는 '기도'를 들었다. 역사 청산이 되길, 내 자신이 변하길, 마땅히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이들이 책임을 감당하길 간절히 바라야 한다고 했다.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종교가 없는 분들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문 볼 때마다 기도하고, 수많은 정보들 앞에서 분별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언론이 제대로 된 방향을 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검찰, 정치인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담대하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구해야 합니다. 기도할 게 너무 많습니다. 그것부터 하면 우리도 다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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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는 역사 청산의 문제가 내 문제와 동일한 무게로 뼈아프게 다가와야 한다고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그리고 철저히 기록하자고 했다. 잘못된 기록은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 신채호 선생님이 <조선상고사>를 기록하실 때 왜곡된 역사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가. 그 왜곡된 역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우리 삶을 얼마나 왜곡되게 하였는가. 최봉실 대표는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제대로 계승할 수 있다며 개인이 쓸 수 있는 게 일기뿐이더라도 정직하고 명확하게 쓰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해갈 때 우리가 하는 공부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철저한 거짓과 속임이 한 나라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먼저 내 삶에 투명하고 정직한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약해질수록 거짓말하기가 쉽습니다. 자기변명과 기만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갈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유혹의 순간 약해집니다. 취약한 사람들이 불의를 저지릅니다. 그 사람들이 헛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권력을 부여하고 악을 조장합니다.

공자는 옛 것을 배우는 것을 배움의 가장 큰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옛 것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아주 좋은 것, 그것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좋은 것을 계승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만과 속임으로 점철된 역사는 후세대에게 전해줄 것이 없습니다. 정직과 투명, 정의를 계승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정신을 쇠하게 만들지 않도록 지금 맺고 있는 관계에서 정직하고 투명하고 정의롭게 만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지난 11월 4일은 나에게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에게도 특별하게 기억될 날이었다. 이날 있었던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시국 사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은 특정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3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열일곱 살 이제 한창 꿈을 키우며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역사의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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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가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그려 보자고 종이를 건넸더니 달로 시계를 그렸다. 역사를 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공부 모임의 끄트머리에 처음 시작할 때 불렀던 <그날이 오면>을 다시 불렀다. '우리는 만나야만 한다.' 나는 지금 누구를 만날 것인가. 사실 '박근혜'를 전면에 내세웠던 책임자들을 소환해 내다보면, 그 경계 어느 언저리에서 나 또한 그 책임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흘러 내려온 역사의 굴레에 나도 여지없이 지배받아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청산은 그래서 나의 삶의 변혁을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역사의 새 흐름을 시간적으로 발전시키고 공간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다면, 신채호 선생이 그렇게 간절히 꿈꿨던 진정 올바른 역사를 우리의 민족적 성찰로써 새로 적어 내려갈 수 있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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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시작할 때 ‘그날이 오면'을 함께 불렀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142)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새들생명울배움터 #배움터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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